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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醒 朴致馥의 南冥學 繼承樣相 KCI 등재

The Inheriting Aspect of the Study of Nam-myeong by Man-seong(晩醒) Park, Chi-bok(朴致馥)

만성 박치복의 남명학 계승양상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1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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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이 글은 19세기 江右地域의 대학자 晩醒 朴致馥의 남명학 계승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 것이다. 본고는 만성의 학문이 定齋 柳致明을 통한 퇴계학파의 학설을 수용한 점과 性齋 許傳를 통해 근기 남인계 星湖學의 實用主義를 수용 한 점에 주목하여, 만성이 이 두 학문을 겸함으로써 전통의 학설을 바탕으로 하 면서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致用의 학문을 한 것으로 평가하였 다. 이런 점에서 그의 학문성향은 寒洲 李震相의 心卽理說이나 蘆沙 奇正鎭의 主理論이 전통의 성리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설을 전개한 것과 다르다. 또한 양 자를 兼取하였다는 점에서 퇴계학파나 성호학파의 학문성향과도 변별된다. 그 리고 학문이 침체되었던 강우지역에서 새로운 학문을 선도하였다는 점에서 학 술사적 의의가 크다. 본고에서 논한 만성의 남명학 계승양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만성의 南冥遺蹟 探訪과 追崇事業으로는, 山天齋・白雲洞 등 남명유적을 찾아 추모한 것과 산해정 중건 기문을 지은 것을 들 수 있다. 둘째, 南冥의 文廟從祀 를 위한 노력으로는, 만성이 1888년 疏頭가 되어 상소문을 올린 것을 들 수 있 다. 셋째, 만성은 許眉叟의 문집 󰡔記言󰡕에 남명을 사실과 다르게 폄하한 「答學 者書」를 삭제해 줄 것과 「德山碑」의 개정을 요청하였고, 󰡔南冥集󰡕 重刊을 위해 교감을 보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넷째, 만성의 現實認識의 측면에서 본 南冥精 神 繼承으로는, 「上時弊疏」에 나타난 현실인식과 민생구제정신이 남명의 상소 와 유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섯째, 만성의 南冥에 대한 認識 및 論評으로 는, 남명을 소미성으로 상징되는 처사로만 보지 않고 傅說・富弼처럼 賢相名丞 의 자질을 가진 인물로 평가했고, 남명의 학문을 程子・朱子를 계승한 正學으로 보았으며, ‘秋霜烈日 千仞壁立’으로 일컬어지는 남명의 기상에 대해 敬義學을 전제함으로써 伯夷와 다른 성향으로 재평가하였고, 山海亭의 山海에 대한 해석 을 통해 남명의 정신지향을 泰山보다 높고 瀛海보다 크다고 평했다.

This article is a research focusing on the inheriting aspect of the Study of Nam-myeong by Man-seong(晩醒) Park, Chi-bok(朴致馥) who was one of great scholar at Gang-u(江右) area in the 19th century. I paid attention to the facts that he admitted the theory of Toe-gye (退溪) through Jeong-jae(定齋) Park, Chi-myeong(柳致明) and accepted the pragmatism of the study of Seong-ho(星湖) through Seong-jae(性齋) Heo-jeon(許傳). And I found out that he pursued the pragmatism chasing the current of the times through holding on those academic attitude which I mentioned above. In this point of view, his tendency of study is differ from Han-ju(寒 洲) Yi, Jing-sang(李震相) or Yeo-sa(蘆沙) Gi, Jeong-jin(奇正鎭)'s theories which is named sim-jeuk-ri-seol(心卽理說) or Ju-ri-ron(主理 論). The fact that he combined those two way of study is the most outstanding feature from the tendency of Toe-gye or Seong-ho. So I could find some chronological significance that he lead properly the new studying way in the Gang-u(江右) area. Under the main category of the inheriting aspect of the Study of Nam-myeong by Man-seong Park, Chi-bok, it can be summarized as next five points. At first, as Man-seong's efforts to admire nam-myeong, he surveyed some sites including San-cheon-jae(山天齋) and Baek-un-dong(白雲洞), and wrote the memorial writings of rebuilding San-hae-jeong(山海亭). At second, he sent up a memorial to the Throne in 1888 as the effort to participate Nam-myeong to the memorial service in the Shrine of Confucious(文廟). At third, he asked to delete the despising description upon Nam-myeong at {Dap-hak-ja-seo}(答學者書) in [Gi-eon](󰡔記言󰡕) written by Mi-su(眉叟) Heo, Mok(許穆), and also asked reforming the memorial stone of [Deok-san-bi](「德山碑」), and he paid effort to repress [Nam-myeong-jip](󰡔南冥集󰡕) and corrected it. At forth, as his inhering effort of the spirit of Nam-myeong in real world, I could find his wide saving spirit to the people is similar with Nam-myeong referring to the memorial to the Throne of [Sang-si-pye-so](「上時弊疏」). At last, as the evaluation to the Nam-myeong's nature, he regarded Nam-myeong as not only a hermit but also an outstanding candidate of the premier of the Kingdom like Bu-yeol(傅說) or Bu-pil(富弼), so he thought that Nam-myeong is one of inheriting the formal study of Jeong-ja(程子) and Ju-ja(朱子).

목차
Ⅰ. 머리말
Ⅱ. 19세기 江右地域의 學術動向과 晩醒의
學問性向
1. 19세기 江右地域의 學術動向
2. 晩醒의 學問性向
Ⅲ. 晩醒의 南冥學 繼承樣相
1. 南冥遺蹟 探訪과 追崇事業
2. 南冥의 文廟從祀를 위한 노력
3. 󰡔記言󰡕의 刪削改正 要請과 󰡔南冥集󰡕 重刊
을 위한 노력
4. 現實認識의 측면에서 본 南冥精神 繼承
5. 南冥에 대한 認識 및 論評
Ⅳ. 맺음말
저자
  • 崔錫起(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남명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최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