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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신앙 儀禮와 에도막부의 후지강(富士講) 단속령 - 呪醫적 신앙 儀禮로서의 에도 市中에 대한 勸進, 그리고 그로 인한 신분제도적 사회질서의 동요에 대해서 - KCI 등재

The Rite of Fuji Faith and the Control Ordinance of the Fuji River during the Edo Shogunate - Ganjin concerning Edo castle town as the rite of faith from the view of a witch doctor, and the subsequent agitation of social order in the status system -

후지신앙 의례와 에도막부의 후지강(부사강) 단속령 - 주의적 신앙 의례로서의 에도 시중에 대한 권진, 그리고 그로 인한 신분제도적 사회질서의 동요에 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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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후지신앙(富士信仰)은 에도(江戶)시대 후기에 에도와 관동(關東)지역에 있었 던 대표적인 서민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후지강(富士講)의 원류가 된 후지신앙 은 修驗道系의 廻國修行者였던 角行藤佛을 시조로 전개됐다. 본 논문에서는 寬保 2년(1742) 9월부터 享和 2년(1802) 7월까지 있었던 후 지강 단속령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막부의 이러한 단속 정책이 후지신앙의 어 떠한 실태를 반영한 것인가? 후지산 北口師職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등을 살펴보았다.

Fuji faith may be a representative folk faith of the Edo and Gwandong areas during the later Edo period. Fuji faith, which became the origin of the Fuji River, originated from a Buddha Fujihata bishop (角 行藤佛), who was the ascetic returning to a country (廻國修行者) of Shugen-do lineage. This study reviewed the control ordinance of the Fuji River, which existed from September of the second year of Ganpo (1742) to July of the second year of Kyowa (1802). Also, the study looked into what aspect of the Fuji faith the control policy of the shogunate reflected, and how the control policy affected the Guita guchi gangsa (北口師職) of Fuji Mountain.

목차
Ⅰ. 서론
Ⅱ. 寬政 駕籠訴사건과 후지강(富士講) 단속령
1. 후지의 加持水와 寬保 단속령
2. 寬政 駕籠訴와 후지신앙 공인화 운동
3. 寬政․享和 단속령과 후지강(富士講)의 儀禮
Ⅲ. 후지산 北口 師職에 대한 영향과 宗敎儀禮
1. 北口師職의 직분과 막부로 보낸 문서
2. 北口師職의 활동과 宗敎儀禮
Ⅳ. 결론
저자
  • 澤登寛聡(日本 法政大學 文學部) | 택등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