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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8세기 성화상 논쟁의 발단원인 고찰 KCI 등재

Considerations on the Cause of Iconoclastic Controversy in the 8th-century Byzantine Era from the ‘Image Ideology’ Perspective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28963
  • DOIhttps://doi.org/10.22254/kchs.2017.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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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敎會史學會誌 (한국교회사학회지)
한국교회사학회 (The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초록

본 논문은 성화상 논쟁에 대하여 역사(historiography)와 사상(philosophy and methodology)이라는 두 개의 주제를 동시에 다룬 연구이다. 이러한 점 에서 성화상 논쟁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차별되는 독특성을 띠고 있다. 본 연구는 ‘이미지 이데올로기(image ideology)’ 측면에서 8세기 비잔틴 시대의 성화상 논쟁의 발단 원인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성화상 논쟁에 관한 연구는 논쟁 발단의 외면적 요인을 중점적으로 다룬 반면, 본 논문은 그 내면적 요인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췄다. 연구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이미지 이데올로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여 해석의 툴(tool)로 사용하였다. ‘이미지 이데올로기’는 이 미지의 속성으로서의 이데올로기(ideology as an attribute of image)와 ‘이 미지의 이미지’의 속성으로서의 이데올로기(ideology as an attribute of image of image)를 동시에 지닌 해석체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미지가 본 래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이미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성화상 논쟁의 발단 원인을 조명해 본 결 과, 8세기 비잔틴 시대의 성화상 논쟁은 성화상 파괴를 주도하였던 황제 레오 3세(Leo Ⅲ, 717-41 재위)와 성화상 숭배를 옹호하였던 교황 그레고 리우스 2세(Gregorius Ⅱ, 715-31 재위)간의 이미지 이데올로기 충돌로 인해 발생한 사건임이 드러났다. 레오 3세는 ‘황제-교황주의’를, 그레고리우스 2세 는 ‘교황-황제주의’ 라는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성화상(icon)이라는 이미지를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8세기 비잔틴 시대의 성화상 논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그리스도교의 이 미지 담론은 오늘날에 이르러 단순히 신학적 담론에 머물지 않고 정치, 경 제, 사회, 문화, 예술, 사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데올로기와 연결되어 거 대담론이 되고 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가 이미지의 속성이라는 본 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 황에서 본 논문이 이론적으로는 성화상 논쟁 연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하고, 정책적으로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이미지 이데올로기에 대 한 경각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wo themes of historiography and philosophy regarding iconoclastic controversy. In this respect, this study has uniqueness differentiated from the existing studies.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cause of iconoclastic controversy in the 8th-century Byzantine era from the ‘image ideology’ perspective. Most studies on iconoclastic controversy that’d been conducted so far focused largely on external factors for sparking off controversy, whereas this study focused on revealing internal factors. To seek quality, this study made a new concept of ‘image ideology’ independently and used it as analysis tool. ‘Image ideology’ is an analysis system that contains ‘ideology as an attribute of image’ and ‘ideology as an attribute of image of image.’ This is based on the idea that image essentially contains ideology. As a result of determining the cause of iconoclastic controversy from the image ideology perspective, it was revealed that the iconoclastic controversy in the 8th-century Byzantine era was caused by image ideology conflict between Leo Ⅲ(717-41 in reign) who led iconoclasm and Gregorius Ⅱ (715-31 in reign) who advocated iconolatry. Leo Ⅲ used the image of icon as ideological tool to achieve his political end of ‘Caesaro-papism’ and Gregorius Ⅱ to achieve his political end of ‘Papo-caesarism.’ The image discourse in Christianity started from the iconoclastic controversy in the 8th-century Byzantine era did not just remain as theological discussion today, but became a meta-discourse when it was connected with ideologies in such different areas as politics, economy, society, culture, art, and idea. This is an inevitable logical conclusion from the perspective of this study that ideology is an attribute of image. In this time and situation, this study is significant in that it provided a new analysis framework for iconoclastic controversy theoretically and promoted awareness of image ideology for Korean churches politically.

저자
  • 박정흠(성공회대학교) | Park, JungH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