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敎會史學會誌 제50집 (p.85-112)

양심과 법 사이에서 - 존 웨슬리와 메소디스트 운동의 딜레마

Between Conscience and Laws – John Wesley and the Methodist Movement in a Dilemma
키워드 :
존 웨슬리,양심,영국 국교회 법,신도회,안수,John Wesley,Conscience,Laws of Church of England,Religious Society,Ordination

목차

Ⅰ. 들어가는 말
II. 존 웨슬리의 양심 이해와 영국 국교회의 현실
  1. 존 웨슬리의 양심 이해
  2. 영국 국교회의 현실과 양심의 갈등
III. 메소디스트 운동의 발전과 영국 국교회와의 갈등
  1. 신도회(religious society)의 확산과 비밀집회(conventicle) 금지법
  2. 목사(사제) 안수 문제와 교회의 분리 독립
IV.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초록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마찬가지로 존 웨슬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기준이 된 것은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 양심은 자연적인 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으로서의 양심이다. 존 웨슬리는 이 모든 양심의 기능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 자신의 삶과 기질을 분간할 수 없고, 우리가 행할 기준도 알 수 없으며,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인정받는 것은 인간의 법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최후 심판임을 잊지 않았다. 영국 국교회의 아들이며, 완고한 고교회주의자였던 존 웨슬리는 올더스게잇(Aldersgate)과 송구영신 철야예배에서의 성령의 집단적인 체험을 한 이후 영국 국교회의 무기력과 타락에 대한 각성과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국교회에 대해서 이론적으론 이상적인 교회로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론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로 관영한 ‘불의의 신비’의 지배하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중적인 상황이 존웨슬리가 자신의 신앙 양심과 현실적인 교회의 법 사이에서 갈등하며 딜레마를 겪게 한 주 요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메소디스트 신도회가 불법적인 비밀집회로 간주되어 공격을 받는 것에 개의치 않고 계속적으로 신도회를 확대해 나갔지만, 결국은 신도회 회원들을 보호하고 더 많은 회심자들을 얻기 위해 자신의 채플을 마치 비국교도의 모임처럼 법적으로 등록하여 허가를 받음으로, 양심의 자유가 침해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목사(사제) 안수 문제에서는 다른 결단을 내렸다. 미국 독립이라는 외적인 상황의 변화로 그는 목자 없이 유리하는 아메리카의 양들을 위해 미국 선교를 위한 목사(사제) 안수를 감행한 것이다. 존 웨슬리로 하여금 이러한 경계선을 넘게 한 원동력은 그의 신앙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곳은 세상의 법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최후 심판대라는 그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It was conscience and the Words of God that set the standard for John Wesley's thoughts, words and actions. The conscience is not a natural conscience but a conscience as Preventing Grace of God. He was convinced that for the proper functioning of conscience, the unction of the Holy Spirit was necessary. Without this, we could not discern our own life and character, know our standards, or obey our conscience and the Word of God. And he has not forgotten that it is not the human court but God's final judgment that humans ultimately receive their justice.
John Wesley, the son of the Church of England and a stubborn High Church Man, experienced Aldersgate-Conversion personally and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 with the oxford methodists in New Year’s Overnight Service. Since then, He felt keenly reform of the lethargy and corruption of the Church of England. He thought of his church as the ideal church, but he saw that in reality, the ‘mystery of injustice’ that had been preserved after Constantine the Great was working, as it was with any other church. This double situation was a major factor that led to John Wesley's conflict and dilemma between his faith conscience and realistic church law.
He continued to expand his methodist religious societies, regardless of how it was treated as an illegal secret assembly and was attacked. In the end, his faith conscience was damaged by registering his chapel legally as a nonconformist assembly to protect new members and gain more believers. However, he made a different decision on the issue of the ordination of lay preacher. As a result of the external situation of American independence, he ordained a few lay preachers as American missionaries for serving the sheep thrown away without a shephe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