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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로쿠(元禄)․덴포(天保)․메이지(明治) 도해금지령의 규범 형성절차 및 형식의 법적 의미 KCI 등재

Legal Meaning of Procedural and Structural Consistency of Genroku(元禄), Denpo(天保), Meiji(明治) Era Directives on Prohibition of Marine Passage to Ulleungdo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95381
  • DOIhttps://doi.org/10.31347/dokdo.2020.0.28.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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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구 (The Journal of Dokdo)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Dokdo Research Institute)
초록

한국정부는 독도영토주권을 입증하는 일본측 자료근거로서 겐로쿠(元禄) 도해금지령 (1696년)만을 제시하고 있으나, 일본정부의 울릉도․독도 도해금지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 고 덴포(天保)시대 이마즈야 하치에몬 사건 이후 다케시마 도해금지령(1837년) 그리고 메이지시대(明治) 태정관지령 이후 태정관의 지령에 의한 내무경의 독도 도해금지유달 (1883년) 등 역사적으로 약 200년에 걸쳐 세 차례에 걸쳐 공포되었다. 일본정부의 세 차례 도해금지령은 시대별 배경에 따라 규범의 성격은 다르지만 일본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인 독도의 도항을 금지하는 규범의 형식으로 공포되었으며, 이를 통해 울릉도는 물론이고 독도(마쓰시마)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국가의 의지를 반복적 그리고 명시적으로 표현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들 도해금지령은 입안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중앙정부 부처 상호간에 독도 영유권을 확인하기 위한 질의서와 답변서를 주고받아 행정절차상의 신중성과 정확성을 기하 고 있다는 점, 규범적 공문서로서 세 차례 도해금지령이 단지 일본 국민의 울릉도 도해를 금지하는 내용의 문구에 그치지 않고 도해금지 대상이 울릉도뿐만 아니라 독도를 포함한 다는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지도를 첨부하거나 참고하는 형식을 유지하였다는 점, 그리고 각각의 도해금지령이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외교정책의 국내선언적 성격, 사법판결의 이행규범성격, 그리고 법률로서 태정관지령의 위임에 따른 이행입법이라는 근대적 입법의 형식으로 제정되었다는 측면에서 형성과정과 형식의 유사성 및 규범성 확보라는 특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울릉도와 독도의 한국영토주권을 입증하는 일본의 세 차례 도해 금지령은 일본정부가 겐로쿠시대 이래 메이지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기관이 정립한 다양 한 성격의 규범을 통해 울릉도뿐만 아니라 독도를 자국의 영역이 아닌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는 관행의 근거형성, 그에 기초한 관습법의 확인 그리고 이를 성문화하는 입법의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Korea Ministry of Foreign Affairs(MOFA) internet homepage shows only Japanese Genroku(元禄) Era Directive on Prohibition of Marine Passage to Ulleungdo of 1696 as an evidence to testify Korean territoriality of Dokdo. The Edo Shogunate issued a directive prohibiting all Japanese from making passage to Ulleungdo, confirming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Korean territory. However, Japanese government promulgate normative Order on Prohibition of Marine Passage to Ulleungdo including Dokdo two more times. Another two Order on Prohibition of Marine Passage are Denpo(天保) Era Directive on Prohibition of Marine Passage to Ulleungdo of 1837 after Imazuya Hachiemong incident and Meiji(明治) Dajokan Ordinance of 1883 after Dajokan Order of 1877. In 1877, Dajokan Order stated that "Regarding Takeshima(Ulleungdo) and one other island(Dokdo)... bear in mind that our country(Japan) has nothing to do with them. Meiji 10 March 29. Grand Council of State was Japan's the highest decision-making body during the Meiji period. The Dajokan instructed the Japanese Home Ministry to bear in mind that Ulleungdo and Dokdo have no relation to Japan. These three Prohibitions of Marine Passage to Ulleungdo and Dokdo were promulgated as normative order which were enforced in national wide range as well as stated repeatedly the national-will that Ulleungdo and Dokdo were not the territory of Japan. In terms of documentary formalities, these governmental document have three commons in procedural and structural formation. First, in the process of enactment, for the exactness of contents and definite effectiveness, Japanese government asked the exactness of issues to local government Shimane Prefecture and received a written answer which was considered in the final orders. Second, for the clarification of the range of prohibition, those Directives are appendixed maps and, in the maps, Korean territory was shaded in red and Japanese territory in blue. Definitely, Ulleungdo and Dokdo were both shaded in red, indicating Korea Territory. Third, each of these documents had normative effectiveness in common but different normative nature such as order for the execution of diplomatic arrangement, order for the carrying out the decision of court and executive ordinance following Dajokan Order because of historical background of its promulgation.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시대별 도해금지령의 입안과정과 질의응답서 분석
Ⅲ. 시대별 도해금지령과 부속 또는 참고지도의 의미
Ⅳ. 시대별 도해금지령의 규범적 성격
【참고문헌】
저자
  • 최철영(대구대학교 법학부) | Choi Cheol-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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