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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의 목적은 백수 정완영(白水 鄭椀永, 1919~2016, 이하 백수) 의 시조 문학에 나타난 고향의식과 불교적 사유 기반의 생명존중의 의미 와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백수는 이병기, 이은상, 김상옥, 이호우, 이영도와 함께 1960년대 대표적인 시조시인이다. 그는 말과 말의 행간에 침묵을 더 많이 심어두면 서 단아하고 잘 정제된 시상과 한국의 정한의 주제와 자유로운 율격을 담아냄으로써 현대시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백수의 문학적 사유 와 토양을 깊게 해 준 배경에는 고향상실과 민족전통을 관류하는 정한(情 恨)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시조 문학 작품에는 전통적 인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관조의 미학을 탐구하면서, 상실한 조국과 고 향의 회복, 연기적 생명 존재에 대한 사랑의 뜨거운 시혼이 잘 담지되어 있다. 결국 백수가 그토록 끊임없이 또 간절하게 고향과 불연(佛緣)을 노 래한 것은 역사관과 인생관을 매개로 한 자기정체성의 확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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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의 목적은 무산 조오현(1932~2018)의 선적 사유와 그 시적 형상화의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그는 선승이며 시조시인으로, 1968 년 『시조문학』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으며, 신흥사 주지와 회주, 만해 사상실천선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아울러 『심우도』, 『절간이야기』 등 의 시집과 『산에 사는 날에』, 『선문선답』, 『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는 법을 어찌 알랴』 등의 산문집을 남겼으며, ‘공초문학상’과 ‘정지용문학 상’ 등을 수상했다. 무산의 시세계가 지향하고 있는 특징은 선적 사유의 형상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보여주는 구도와 깨달음의 성찰은 무념, 무상, 무욕의 탈속한 자연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시 창작과정에 있어 생겨나는 갈등과 의문에 대해 선문답과 같은 물음으로 그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기도 하고, 또한 다양한 사람들 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를 제시한다. 가령, 「아지랑이」, 「적멸을 위하여」, 「산창을 열면」, 「무산심우도」, 「무 자화 부처」, 「일색변, 「무설설」, 「아득한 성자」 등에서 보여주는 역설의 언어는 그 자체가 선의 화두이면서 언어적 해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수행자로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자아성찰과 고뇌의 심경을 표출한 무산의 시 세계의 특징은 모든 분별의 경계선을 허물어가는 원 융의 사유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량 분별에 의한 수많은 경계선 들을 해체하면서 궁극적으로 차별과 대립을 뛰어 넘은 원융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도를 향한 시적 노정에 성/속, 스님/속 인, 산중의 일/ 세상일 들을 두루 담아내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보여주 는 그의 시적 세계에는 수행자로서의 치열한 구도와 깨달음, 그리고 상 호연기의 생명존중과 자비실천의 모습이 선명히 형상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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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0.09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7세기 교토(京都)에서 형성된 림파(琳派)는 사카이 호이쓰(酒井抱一, 1761~1829)의 활약으로 19세기 초 에도(江戶)에 성공적으로 이식되었다. 호이쓰와 그 一門에 의해 19세기 에도에서 전개된 림파를 가리켜 오늘날 에도림파(江戶琳派)라 지칭한다. 에도에서 림파 를 수용한 것이 비단 호이쓰만은 아니었으나 림파를 에도에 이식시키는데 성공한 것은 호이 쓰가 유일했다. 本考에서는 호이쓰가 림파를 수용해 에도에 이식시켜 나간 과정을 조망하고 이를 통해 그가 에도림파의 시조가 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고찰하였다. 호이쓰는 출가 직후인 1790년대 후반 무렵부터 고린풍(光琳風) 작화를 시작해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1658~1716)의 100주기인 1815년 이후 본격적인 림파 화가로서 활동하였다. 호이쓰는 고린과 그 동생인 겐잔을 경모하여 추선법요, 유묵전, 묘소 수복, 화보 출판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이들 형제를 현창하였다. 특히 ‘오가타류(緖方流, 尾形流)’라는 표제를 붙인 인보의 출판은 유파로서의 림파를 최초로 규정한 것으로 주목된다. 여기에 호이 쓰를 지지하며 그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주변 동호인들의 도움이 더해져, 호이쓰는 고린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대외에 널리 인식되었다. 또한 호이쓰는 림파를 학습하고 수용해 이전의 림파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우미하고 서정적인 정취나 사생성에 중점을 둔 묘사 등 호이쓰가 만들어낸 림파의 새로운 양식은 당대 에도의 문화 향유층인 스이진(粹人) 사회가 추구했던 담박하고 세련된 도회적 감성을 구현한 것이다. 호이쓰가 에도림파 양식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류계급 출신의 에도 토박이(江戶っ子)로서, 교토 상류사회에서 태어난 림파의 본질과 당 대 에도 문화 향유층의 요구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이쓰는 오랜 기간에 걸친 고린 사숙과 림파 수용을 통해 고린과의 인연을 공공으로부터 인정받고 림파의 새로운 양식을 창출해냄으로써, 교토에서 태어난 림파를 에도에 이식시키는데 성공했다. 누구나 고린풍에 접근할 수 있었던 당대 에도 화단에서 호이쓰만이 유일한 고린의 계승자, 림파의 재흥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연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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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0.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의 목적은 샤머니즘을 통해서 종교계급이 통치했던 신라 사람들의 정체성이 현세뿐만 아니라, 죽음의 세계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분석해보는 것이 다. 기본적으로 샤머니즘은 우주적 질서체계를 지상에서 완벽하게 재현시키고 자 하는 통치자의 정치적 의지가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언급했던 재세이화 사상에서도 알 수 있다. 샤머니즘의 핵심 인 제천의식은 하늘에 제사를 수행하던 행사였고, 이러한 샤머니즘은 풍류도의 중심사상을 이루면서 신라의 화랑도로 이어지고 있다. 원성왕의 능이 물 위에 관을 걸어서 축조했다는 것은 관이 저승으로 향하는 배를 상징하는 것이고, 물 은 은하수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샤머니즘 세계에서 동쪽은 태양 이 뜨는 곳으로 생명 탄생의 의미로 상징화된다면 서쪽은 태양이 지는 곳으로 저승세계를 상징화한다. 이것은 무인석상이 서쪽에 살고 있는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연결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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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20.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국 정부는 다양한 중국의 전통문화유산을 세계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촉도는 그러한 중국의 세계화 전략에 따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획하고 있는 곳이다. 이 시점에서 촉도로 가는 어려움을 읊은 이백의 시 「蜀道難」은 더욱 주목을 끈다. 이백이 이 시에서 촉국의 개국 시조라 언급한 잠총은 촉국에 양잠 문화를 형성한 신화적 인물이다. 1986년에 四川省 廣漢市에서 발굴된 삼성퇴 유적이 바로 이 촉국 문화와 개국 시조 잠총에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잠총은 신화적 인물을 실제 역사화하려는 움직임에 더욱 적절한 테마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의 많은 신화들이 우리나라 신화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하여 중국 문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문인들도 잠총 신화에 대하여 다양하게 인식하고 있다. 특히 양잠 문화는 우리 신라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향후 연구가 잠총과 연계된 한국의 문화에 주목해야 할 이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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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20.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먼저 한대 일월도상의 종류를 살피고, 그 가운데 가장 신격화된 도상이라고 할 수 있는 복희․여와형 일월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한대 일월상의 유형은 성좌형, 우인형, 복희․여와형이 있으며 이 가운데 성좌형과 복희․여와형 일월상은 하남, 산동․강소성, 섬서성, 사천성 등지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우인 형은 사천지역에서만 등장하여 지역적 특색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일월신으로서의 복희 여와 도상은 하남성 낙양일대의 서한~동한 전기로 추정되는 채색벽 화무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선계의 신인 복희․여와가 일월신으로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서한시대에 유행하였던 황로사상과 음양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동한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복희․여와형 일월상은 지역별로 상이한 특징을 보여준다. 하남성은 해를 가슴에 품고 있는 복희․여와형 일월 도상이 등장하는데 이는 양조형 일월상과의 연관성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형태는 산동성에서도 등장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지역 사이의 밀접했던 문화 교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가장 사례가 적은 섬서성 지역의 복희․여와형 일월상은 기본적으로 하남성과 산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원지역의 영향을 받은 특징을 보여준다. 지방색이 강하며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복희․여와형 일월상은 사천지역에서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이 지역은 일월신인 복희․여와가 다양한 지물을 들고 등장하는데 이는 하남지 역에서 유행하였던 선인형 복희․여와 도상이 사천성의 복희․여와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는 사례이다. 또한 복잡하고 다양한 교미형태는 산동성과의 영향관계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들 도상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복희․여와의 다양한 역할과 의미를 살펴 보았다. 복희․여와는 창조신, 시조신, 일월신, 신선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황로사상과 음양설이 발전하는 서한시대에는 음양을 대표하는 신으로 해와 달을 상징하고 천상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선인이었으나, 동한 중기 이후 서왕모 중심의 선계가 개편되면서 서왕모보다 신분이 낮은 선계의 보조신으로 그 지위가 하락했다. 이에 따라 복희, 여와 도상에도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한대 고분미술의 다양성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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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9.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06년에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묵계에 건립된 택존재는 옛 안의현을 대표 했던 사족층의 일원인 은진임씨 효간공파 문중 소유의 재실에 해당한다. 그런데 택존재의 경우 시조에서 5대 조상까지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 본연의 목적 외에도, “3대에 걸친 미덕[三世之美]”을 간직한 효간공파 일문의 기념비적 공간의 성격을 겸하고도 있음이 주목된다. 즉, 택존재는 이 건물이 영건된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해준 덕산 임진원과 그 자·손들인 오당 임수양⋅회당 임필희, 이렇게 3대에 걸친 미덕을 표상해 주는 공공의 재실이었던 것이다. 면우 곽종석이 ‘은택이 깃든 재실’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이제 ‘택존(澤存)’의 실상을 간략하게 적시해 두자면, 이른바 ‘5건 8조’로 지칭되었던 종족과 면민들을 대상으로 한 임수양의 적극적인 시혜⋅구휼 활동과 더불어, 또한 그 아들인 임필희가 지역민에게 기여한 다양한 작문 활동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종족[族]의 사이가 소원하고 가까운 게 없는 것은, 모두가 한 조상의 후손들이기 때문”임을 지적하는 가운데, 이들에게 경제적인 지원 활동을 펼칠 것을 명한 임진원의 생애 마지막 유언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시혜를 베풀 개별적인 품목들인 ‘5건’과 함께, 이 5건을 포함하여 재실 운영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자 절목인 「8조」를 통해서, 임진원의 유언을 가시화하는 활동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물론 「8조」 가운데는 서당 운영을 위한 지침도 포함되어 있는 상태다. 이는 택존재 천장 상단에 가설된 서책을 수납하기 위한 별도의 시설과 더불어, 한때 이 건물이 건실한 수준의 재실형 서당을 운영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5건 8조’를 관류하는 철학적 차원의 처방인 ‘모도 (母道)⋅자도(子道)’라는 두 원리를 아울러 제시해 두었다는 점이다. 택존재가 영원토록 ‘은택이 깃든’ 공간으로 남기를 기약해 보인 두 종류의 원리는, 곽종석이 ‘택존’이라는 가명(嘉名)을 부여했던 진정한 이유를 실감케 해준다.
        6,600원
        8.
        2019.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se days, costumes of Korean creative dancing performances have been changed to be modernized and to be out of traditional regulation, as the representation of the Korean styles were replaced by other props and art devices. In this article, we have applied the emotions expressed in Jin-Yi Hwang’s sijos (Korean traditional poems), to Korean creative dancing costumes in modern style. chose three typical sijos from her six pieces, titled “Green mountain is like what I’ve meant”, “To Byeokgyesoo in Cheongsan-ri” and “Dongjibam ginaginbam”. In brief, Jin-Yi Hwang expressed her “everlasting love and emptiness”, “temptative conciliation” and “eager waiting” these three sijos, respectively. The character of Jin-Yi Hwang was shown in many TV soap operas and films, and the costumes were either much modernized, and not accurately based on the sijos she had written. Thus, we designed, made flat sketched, and fabricated three Korean creative dancing costumes from the three sijos, listed. We tried to highlight the aesthetic impression and the activeness of the dancing costumes, using both traditional and modern Korean fabrics. Since Korean dance costumes had not yet been inspired from Jin-Yi Hwang’s sijos, we discussed the importance of the fabric items, as well as the visual, auditory, and tactile characteristics of the costumes and dancers to emphasize Jin-Yi Hwang’s expressed emotions.
        4,800원
        9.
        2019.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인간의 심미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활동 중에서 곤충의 역할을 다루는 학문 분야를 문화곤충학이라고 한다. 본 연구는 근대 시조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곤충의 종류를 문화곤충학적 관점에서 조사하였다. 조사대상 문학작품은 6,604편의 근대 시조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곤충 관련 어휘들을 조사하였다. 조사 시조들 중 곤충 관련 어휘가 등장하는 시조는 215편이었으며 제목에 곤충 관련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시조 작품들은 26 편이었다. 곤충관련 어휘들은 모두 257번 등장하였는데 30종류의 곤충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곤충류 어휘는 나비로 57회 등장 하였으며 귀뚜라미가 45회, 벌레가 44회였다.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통해 문화곤충학 분야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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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9.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경상우도의 함양에 연고를 둔 덕곡 조승숙은 려말⋅선초를 주요 활동기로 삼아 불사이군으로 표방되는 시대정신을 실천한 충절의 인물이다. 정몽주의 문인이었던 조승숙은 포은과 정치적 노선을 같이하여, 고향인 덕곡촌으로의 귀은을 통해 항절 의지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조승숙은 귀은에 돌입한 이래로 강학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맹자가 운위한 대장부 정신을 몸소 구현하기도 하였다. 차후 덕곡공파의 파조로 옹립된 조승숙이 남긴 일련의 행적들은, 이 문중의 후손들의 뇌리에 유의미한 삶의 전범으로 각인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정황은 범 덕곡공파 차원에서 간행된 문중용 교훈서인 『함안조씨언행록』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확인되는바, 총 5편으로 이뤄진 이 책은 후손 68 인이 선보인 귀감이 될 만한 행적들을 발취하여 재구성한 텍스트다. 조승숙은 시조 조정과 입향조 조영준 및 부친 조경과 함께 「제1편」에 소속되어 있다. 조승숙의 경우 이 서책 전체를 통해 가장 많은 서술 공간을 획득하였고, 또 ‘선생’이라는 호칭을 구사한 정황 등으로 미뤄 볼 때 언행록의 직접적인 연원을 제공해 준 상징적인 인물임이 간취된다. 『함안조씨언행록』은 선생⋅관직 명⋅호⋅‘휘□□’라는 네 종류의 호칭법을 구사하고 있다. 한편 계묘본 언행록은 파별로 나뉘어 독립적인 서술체계를 유지했던 기존 『언행록』 체제를 초극하기 위해 ‘연대(年代)⋅연기(連記)’라는 새로운 편집 원 칙을 적용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함안조씨언행록』은 범 덕곡공파 후손들을 대상으로 하여 효우⋅충절⋅학문⋅청렴성⋅위민의식 등과 같은 보편적인 인물 선정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문중적⋅폐쇄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극히 보편적인 가치를 담지한 텍스트로 거듭날 수 있었다.
        8,100원
        11.
        201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북한의 김일성 신화는 현대 사회에서도 신화가 여전히 생산되고 있으며, 강 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북한이 건설되고 김일성 을 중심으로 권력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김일성 신화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의 절망 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초월적 영웅에 대한 갈망이 북한 정권의 정치적 기획과 만나 창조된 것이 김일성 신화이다. 김일성 신화는 건국 신화와 영웅 신화로서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김일성 신화는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 ‘민족의 해방자’로 묘사함으로써 그를 건국의 시조로 위치시키고, ‘백두산’이 갖 는 상징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공간의 신성함을 토대로 하는 건국 신화적 속 성을 보여준다. 또한 김일성이 항일 무장 투쟁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비범한 육 체적 능력을 강조하고, 그가 가진 정신적 강인함과 뛰어난 지적 능력을 신성화 하며, 토지 개혁을 단행하고 농업에서부터 수산업, 공업에 이르기까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그가 제안한 방안들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김일성의 문화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킨다.
        6,300원
        12.
        2017.10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문화재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하며, 특히 “역사문화환경”이란 문화재 주변의 자연경관이나 역 사적·문화적인 가치가 뛰어난 공간으로서 문화재와 함께 보 호할 필요성이 있는 주변 환경을 지칭한다. 우리나라의 경 우 역사문화환경을 단독으로 문화재로 지정하기 보다는 주 로 문화재와 문화재 인접 자연경관을 함께 문화재로 지정하 여 보호하고 있다.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오릉은 1969년 사적 제172호로 지정되었고 면적은 185,129㎡이다. 삼국사기(1145년)에 따 르면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경국대전 (1429년)에서는 오릉에 대해 묘비를 세우고 수호군을 두어 특별히 관에서 제사와 보호를 담당하였으며 원림의 보호 및 수목의 벌채나 농지의 개간 등을 엄하게 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렇듯 오릉은 5개의 봉분 뿐 아니라 주변 원림까지 지속적으로 관리되어 왔으며, 특히 역사적으로 한 반도의 능묘 수호의 과정을 나타낸다. 그러나 문화재 중 “생물자원”을 포함할 경우 일부 천연기 념물을 제외하고 문화재 지정 당시 및 최근까지도 현황에 대한 구체적 정보 기록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문화재 보호의 기본원칙은 해당 문화재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며 (문화재 보호법 제3조), 이는 생물문화재에 대해서도 동일 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경주 오릉의 경우 문화재 지정 이전 오릉 내 식생현황조사에 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 독부에 의해 작성된 조선의 임수(1928)에서 주요 수종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만 살펴볼 수 있으며, 문화재 지정 이후 문화재 관리를 위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 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문화재로서 경주 오릉 내 식생현황 에 대한 현 상태를 공간정보로 구축하고 문화재로서 오릉의 자연환경에 대한 향후 관리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경주 오릉 내 식생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대상지 내 수목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개별 수목의 생육위치 를 디지털좌표로 측정하고 수종명, 규격, 생육상태를 조사하 였다. 수목의 규격은 수고, 흉고직경, 수관폭을 조사하였고, 수목생육상태는 양호, 불량으로 판단하였다. 지형특성의 경 우 1:1,000 수치지형도의 등고선데이터를 추출한 분석과 현 장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비교하였다. 현장조사 시 성토된 수목의 경우 성토 높이를 측정하여 분석에 반영하였다. 경주 오릉 내 수고 2m이상, 흉고직경 2cm이상 수목은 조사일 기준 총 35종 1,942주가 생육하고 있었다. 이 중 오릉 내 환경적 특성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종으로 판단되는 종은 총 12종이었으며, 조경적 관점에서 식재된 종의 경우 23종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주요 수종인 소나무와 버드나무, 왕버들의 생육환경을 살펴보면, 소나무의 경우 하안림이나 하천상에 발달된 퇴적지 등에서 배수가 잘되고 토양이 건조한 곳이었으나(김진수 등, 1993; 이응열, 2013), 버드나무속(Salix)은 수분이 많은 저수지, 하천변 및 계곡 등의 습지가 생육적지였다(이인순 등, 2001). 그러나 현장조 사 결과 대상지 내 성토와 암거배수로 인해 전반적인 버드나 무속 고령목의 생육이 불량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주 오릉의 경우 신라시조의 무덤으로서 5개의 능과 인 접 원림을 지속해서 보호해 왔으나, 기존의 문헌과는 달리 잣나무, 배롱나무 등 자연적 유입이 아닌 식재된 수종이 높 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울러 기존수목의 전반적 생 육이 불량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이는 역사문화환경을 문화 재로 지정하였으나 역사적 고증 없이 문화재를 관리한 결과 로 판단된다. 이에 문화재 지정 전의 숲의 원형과 해당 지역 의 지형 및 토양, 생태적 특성분석을 통해 문화재로서의 원 형 보전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였다.
        13.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히어리 대량급속증식법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발 근촉진제의 처리가 히어리 삽수의 발근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삽수는 6~8년생 실생 히어리로 부터 채취 하였으며, 발근촉진제로는 IBA용액, 루톤분의제 등을 이용하였다. 1차년도의 실험의 결과, 3월 20일 숙지삽 목에서는 발근촉진제의 효과가 없었다. 6월 20일 녹지 삽의 경우에는 IBA 100mg·L−1 용액 24시간 침적처리구 에서 발근력이 가장 좋았다. 특히, 경시조사결과 IBA100 mg·L−1 24시간 침적처리구에서는 발근속도가 현저 하게 빨라졌다. 2차년도의 실험의 결과에서는 IBA 200 mg·L−1 용액 24시간 침적처리구에서는 삽목 30일 만에 거의 모든 개체가 발근(97.8%)하였으며 발근수나 발근장도 타처리구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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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10.09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유교문화는 한국사회의 전반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가치관으로,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 한편 시조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형시로서 한국인의 정서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일본인 학습자들에게 시조를 활용하여 유교 문화에 대해 교육하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먼저 본고에서는 유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한국사회의 인간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사고방식이 시조 속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시조를 활용해서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한 학습자들의 이해를 돕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아가서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상호문화의 현상과 본질을 이해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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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위항인들은 독특한 풍류를 즐겼다. 물론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위험을 감내하며 이런 풍류를 탐닉한 데는 그들의 특수한 신분적 구조에 기인한다. 양반으로 상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한계 속에서 그들의 일부는 매우 통속적인 풍류생활을 즐긴다. 그리하여 기생과의 수창시조가 빈번하였고, 서울 종로의 술값을 주도하고, 질펀하게 놀아보는 각양의 풍류를 만끽했다. 이들의 일부는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사회적 부패를 야기하는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가난과 신분적 제약이라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문학은 양반과 대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장이었다. 그리하여 위항인은 신분적 한계를 풍류를 통해 풀어냈다. 그리고 그 풍류는 매우 통속적이며 기괴하였다. 그들 중 일부가 이런 기괴한 풍류를 탐닉한 것은 모순된 제도에 대한 기롱과 당대의 고관대작이 일생의 목표였던 양반과 달리 인생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보편성과 달랐기에 그들은 기괴한 내용을 문학으로 그려냈다. 이 ‘기괴성’은 ‘재미있다’, ‘다채롭다’ 등으로 압축되며 주로 ‘記事’의 양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리하여 이 ‘記事’는 전대와 달리 인물의 취재범위가 다양해졌다. 즉, 중인에서 평민, 노비, 異人, 악공, 화가, 협객을 넘나든다. 또 구체적인 묘사나 객관적인 서사를 통해 형상화 방법이 좀 더 치밀해졌다. 그리고 허구적 요소가 개입되었다. 단순한 사건의 보고에서 벗어나 논자의 문학적 가능성과 역량을 덧씌움으로써 읽는 재미를 더하고 대중화를 꾀하였다. 이런 것을 통해 문학의 근대화로의 이행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최기남처럼 삽입시를 통해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작품 중에 투사하기도 하였으며, 야담집에서 덕으로써 원한을 갚는 행적을 통해 평범한 시골 사람이라 해서 결코 사대부들의 처신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작품에서 위항인의 탁월한 능력이 쓰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분과 사람은 신분에 관계없이 지혜로우며 대등할 수 있다는 평등의식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곧 평민의식이 성장한 것을 입증한 것이며 동시에 평등사회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고 있다.한편 그들이 즐겨 선택한 사설시조는 형식이 자유롭고 다양한 내용을 구김살 없이 담기에 적합하였기에 이를 많이 애용하였다. 파격이 형식이고 엮는 것이 내용이었으며 그 가운데 빚어진 풍류 중심에는 여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했다. 즉 대등하거나 인간적인 사랑을 전제로 그들을 읽고 함께 하고자 했다. 이들의 풍류는 근대 대중문화의 전단계로서 不(얽매이지 않음)를 갈망하던 자유의지의 표출이었으며 더 넓은 세계를 갈망하던 모순된 제도에 대한 역설적 놀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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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989.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의 고전문학은 주로 한문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그만큼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술과 관계된 문학에서는 그 생산에 있어 특히 누각(樓閣), 정자(亭子)라는 특수한 장소를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누정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는 다락 모양의 건축물로 산수 좋은 높은 곳에 세워졌다. 이 누정(樓亭)은 문학 특히 시의 산실로서 옛날의 많은 선비들은 누정(樓亭)에 모여 의례히 술잔을 돌리면서 시회(詩會)를 열었다. 누정(樓亭)과 관계된 문학자료는 한없이 많으며 이 누정(樓亭) 문학에는 한결같이 술이 게재되어 있으므로 누정과 문학, 그리고 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시조문학과 술과의 연관된 노래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시조의 대가이며 술의 달인이랄 수 있는 면앙정종순(?仰亭宗純), 송강, 정철이나 임백호(林白湖)의 시조와 고려때의 이규보(李奎報)의 시 들에서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결국 문학과 술의 공통성은 진실에 있기 때문에 서로 가까워진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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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01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晉陽河氏 가운데서 河珍을 시조로 하는 司直公派는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에 名公巨卿이 배출되어 대단히 번성하였다. 그러나 領議政 河演, 大司諫 河潔 등이 현달하여 서울로 옮겨가는 바람에 진주에서는 명성이 줄어들었다. 다시 그 후손 중에 咸吉道 觀察使를 지낸 河襟이 朝鮮前期에 진주로 還故함에 따라서 다시 문호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 ‘南冥 이후 제일인자’라는 명성을 얻은 謙齋 河弘度와 그 아우인 樂窩 河弘達, 그리고 낙와의 아들이자 겸재의 조카인 雪牕 河澈 등이 나와 南冥學을 계승하여 큰 학문을 성취하여 이 家門의 격을 높였다. 科擧나 仕宦을 통한 번성은 아니었으나 학문과 儒論을 주도하여 지역 유림사회에서 큰 역할을 해냄으로써 집안을 현저하게 만들었다. 河東[조선말기까지는 晋州] 安溪마을에 거주했던 晉陽河氏 司直公派 가문의 역사와 특성을 자세히 고찰해 보고, 그 가운데 가문을 번성하게 한 대표적인 인물들을 선별하여 그들의 유림사회에서의 행적을 고찰하여 밝혔다.
        20.
        2016.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晋陽姜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名門大族으로 역사상 많은 인물을 배출해 각 방면에서 크게 활약해 왔다. 진양강씨는 모두 高句麗 말기의 장군 姜以式을 시조로 삼는다. 강이식의 후손 가운데 고려 후기 姜啓庸은 벼슬이 國子博士였으므로 그 후손들을 博士公派라 일컫는다. 강계용의 손자 姜師瞻은 벼슬이 監察御史였으므로 그 후손들을 御史 公派라고도 한다. 어사공은 공목공의 증조부이다. 恭穆公 姜蓍는 1339년 晋州에서 태어났다. 1357년 成均試에 합격하여, 1362년 출사한 이후 내외의 여러 관직 을 거쳐 門下贊成事에 이르고 晉山君에 봉해졌다. 恭穆公이 가문의 위상을 크게 격상시켰고, 공목공에 이어 그의 형제 와 아들들이 모두 정승의 반열에 들어 일국의 명문이 되었다. 당시 불교가 성행하던 시대에 이미 儒敎思想을 철저히 실천했고, 실 용학문인 農學에도 관심을 가져 農書를 간행해서 보급했다. 두 아들 通亭 姜淮伯, 通溪 姜淮仲이 朝鮮 왕조에 다시 출사하여 가문의 기반을 닦았다. 이후 姜碩德, 姜孟卿, 姜希顔, 姜希孟 등 학문에 있어서나 仕宦에 있 어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와 朝鮮王朝 내내 名門家로서의 위상을 유지했다. 이 가문이 이렇게 장기간 동안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 던 것은, 好學과 興學의 정신, 孝友와 忠節을 숭상하는 정신, 겸양과 節儉을 중시하는 정신, 實學的 분위기, 禮讓崇尙의 家風, 행정능력의 출중함, 中國文物의 수용정신 등이 原動力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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