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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花林洞, 尋眞洞, 猿鶴洞 등 安義三洞은 예로부터 그 풍광이 아름다운 데다 뛰 어난 문인들의 자취가 서린 곳이기에 그 이름이 높았다. 심진동의 長水寺에는 노진이 젊은 시절 독서를 하였고 특히 <遊長水寺記>를 남겨 심진동의 이름을 후대에 길이 전해지게 하였다. 이 논문은 盧禛의 <遊長水寺記>를 중심으로 하 되, 杜慧의 <安陰長水寺與龍湫菴創修源流興廢錄>, 明察의 <安陰縣德裕山長水 寺大雄殿重營記>, 應允의 <德裕山尋眞洞記> 등의 새로운 자료를 통하여 장수 사의 역사를 밝혔다. 장수사는 나말여초 覺然이 창건하여 여말선초 無學이 중 창하였으며, 그 후 조선 초기 다시 朴習에 의하여 중창되어 그 집안의 원찰이 되었다. 그 후 1680년 화재로 장수사는 전소되고, 지금의 장수사 일주문이 있 는 곳으로 옮겨지었다. 1721년까지 건물이 하나씩 복원되어 大雄殿 외에, 八相 殿, 斗月寮, 滿月堂, 明鏡堂, 曺溪門, 天王門 등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또 1725 년 원래 장수사가 있던 자리에 용추암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장수 사에 노진이 유람을 하고 <遊長水寺記>를 지어 세상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조선 후기에는 沈錥, 南公轍 등 뛰어난 문인이 장수사를 소재로 한 시문을 제작 하였다. 이러한 글로 인하여 장수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이 오늘날까지 전하 게 되었다. 오늘날 장수사는 일주문만 남아 있고 근래에 세운 용추사가 그 명성 을 대신하고 있는데, 이러한 장수사를 빛낸 옛글을 통하여 장수사의 예전 모습 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