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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姜龍夏(1840-1908)는 지금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유림면 엄천강 일원에 華山十二曲을 설정하고 「華山十二曲」을 지었다. 강용하는 鄭汝昌·金馹孫·曺植 등 先賢을 宣揚하는 장소로 여겼던 기존의 名所인 龍游潭 등 7개와 臥龍臺·師良浦 등 자신의 의지를 담은 5개를 합쳐 12개 曲으로 삼았다. 그는 스승 任憲晦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朱子·李 珥·鄭汝昌·金馹孫·宋時烈 등 선현을 숭상하였다. 강용하는 국가의 위급을 애통했으며, 傷時憫俗의 언어로 자주 辭章에 발휘하고 慕華臺와 臥龍臺를 축조했다. 慕華臺는 匪風下泉, 즉 明나라가 망한 사실을 슬퍼하고 나아가 再造藩邦의 은혜와 의리를 잊지 않는다는 의지를 담았다. 臥龍臺는 시대적 상황을 아파하며 이를 극복 하고 타개할 賢人이 나타나기를 열망하는 뜻을 담았다. 永言臺·拱北臺 등을 만들었다. 그는 자연 경물에 자신의 의식을 담았고, 이런 의식이 화산십이곡을 설정하는데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일제의 조선 병탄의 조짐이 짙어갈 시기에 姜龍夏는 尊道·尊師·尊華意識[尊周意識]을 강화하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그런 의식을 확산하기 위해 화산십이곡을 설정하고 「화산십이곡」을 지었던 것이다. 강용하의 존화의식 표출은 그가 생존했던 당시 흥기했던 지리산권 江右學者의 尊周意識의 영향도 컸다고 본다. 진주에 세거하던 南平文氏 집안의 大明花 선양과 朴震英 (1569-1641)의 우국충정과 존주의식에 대한 선양사업이 활발했다. 강용하는 화산십이곡을 정하는 데 있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는 先賢들과 관련된 유적지를 기본으로 하고, 자신의 존화의식 등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전에 없던 새로운 명칭을 붙였다. 아울러 선현을 선양 하고 존화의식을 확산하기 위해 화산십이곡 12개 명칭에 관련 故事 등을 원용하여 시를 지었다. 강용하는 주자의 「武夷棹歌」의 칠언절구 대신에 주자의 「山北紀行」 오언율시 8구의 형식을 사용했다. 이로써 자기의 생각을 칠언절구보다 더 많이 서술하였고, 율시의 특성인 고사를 적절히 활용하여 표현미도 높일 수 있었다. 따라서 강용하의 존화의식과 「화산십이곡」은 그 시 대적 의의와 문학적 의의면에서 동시에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