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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자의 역사에 있어서 詩와 書의 관계는 매우 깊고 유구하다. 시는 그 사람이 가지는 當時의 가장 주요한 생각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 이고, 書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였 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보다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詩와 그것을 보다 아름다운 글씨로 표현하려는 書藝와의 관계는 漢字가 생긴 이래로 오래도록 이루어져 왔던 일상의 일이었다. 본고 에서는 이러한 논서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現傳하는 문헌 중 서예를 주제나 소재로 한 韻文인 詩 가운데 어 는 것을 논서시의 濫觴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 고려대상 으로 삼은 것은, 武王(?~B․C 1043)의 「筆名」․「書硯」과 崔瑗 (77~142)의 「草書勢」와 曹植(192 ~232)의 「長歌行」 네 작품이다. 금번의 고찰은 여기에서 소개하는 하나하나의 시들이 가지는 의미 나 작가들이 가지고 있던 미학사상을 밝히기 보다는, 詩와 書와의 관 계가 그 작자 자신들의 詩속에 언제 어떻게 반영되고 있었는가를 살 피는 작업이었다. 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周 武王의 「筆名」과 「書硯」은 고인들의 서사 용구에 관한 관심을 잘 반영해 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들은 내용상으로 후대의 논서시 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붓과 벼루를 읊은 최초의 시라는 점에 의의 가 있고, 특히 御定佩文齋詠物詩에는 「硯類」, 「筆類」라는 書畫에 관련된 편 속에 실려 있어서, 적어도 淸나라 康熙帝 때의 문인들은 이 시들을 문방사우를 소재로 한 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 해야 한다. 때문에 당연히 이 시들을 논서시 목록에 넣어 후대 논서 시들이 전개되는 단초로 삼아야 할 것이다. 崔瑗의 「草書勢」는 살펴본 바와 같이 押韻法이나 구성법 상 완벽한 漢賦에 해당된다. 운문의 한 갈래인 賦는 漢代의 주요한 문학적 표현 수단이었으므로, 이 또한 당연히 논서시 목록에 넣어야 할 것이 다. 東漢이후 5言과 7言詩가 많이 쓰이는 때와는 상황이 다르며, 더 군다나 후대에 지어진 산문에 가까운 文賦들과는 다른 문제인 것이 다. 이 작품은 내용 면에 있어서도 문자의 발생과 초서로의 변천 및 초서의 필법과 필세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서 단의 상황과 작가의 미학사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때문에 논서시 의 범위를 후대에 많이 지어진 5言과 7言의 시로 한정하지 않은 이상 당연히 논서시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논서시 연구자들은 曹植의 「長歌行」을 본격적인 논서시의 출 발로 삼고 있다. 후대의 대부분의 논서시들의 형식인 5언과 7언과 같 은 형식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논서시의 범위를 여기까지 만으로 한 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東漢과 魏晉南北朝時代에 지어진 여러 賦들 도 운문이기 때문에 논서시 범위에 넣어 연구를 더욱 심화할 필요성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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