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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8

        4.
        2015.0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도산 안창호(1878~1938)와 소앙 조용은(1887~1958)은 한국 근대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안창호가 글쓰기보다는 대중 연설과 대중의 조직을 결성하고 이끌었던 실천적 행동가 유형이었다고 한다면 조소앙은 운동의 이론적 체계 확립에 중점을 두었던 학자풍의 이론가였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연배의 차이도 있고, 성장환경과 학문적 배경이 달랐다. 그리고 중국에서 함께 활동하기 이전에는 미국과 유럽의 문물을 경험했다는 점도 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은 1920년대 이후 중국이라는 이국 땅에서 독립운동을 함께 전개했다. 그들은 대한 민국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이라는 민족주의적 독립운동 조직 내에서 함께 활동하였다. 1920년대 중반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1920년대 후반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하면서는 서로 뜻을 같이 하였다. 이때 두 사람은 좌우익의 이념적 대립을 해소하고 통일적인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주의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안창호는 대공주의를, 조소앙은 삼균주의를 내세웠다. 필자는 이미 조소앙의 생애와 삼균주의에 대해 연구한 바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조소앙의 삼균주의 자체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안창호의 대공주의나 다른 사상체계와 비교하는 작업에는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안창호의 대공주의와 조소앙의 삼균주의의 관련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미처 참고하지 못했다. 따라서 1930년대 초 조소앙에 의해 체계화 된 삼균주의를 안창호는 대공주의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사실만 지적했을 뿐, 대공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에 양자의 구체적 관련성을 조사하거나 양자를 비교하는 작업을 수행하지 못했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안창호의 대공주의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나 안창호의 대공주의에 대해서는 그가 남긴 직접적인 자료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대공주의를 어떻게 기억하고 설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연구에서 안창호의 대공주의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를 밝힌다. 그리고 대공주의가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어떤 관련성이 있 다고 이해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는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대한 필자의 연구를 토대로 기존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6,400원
        5.
        1997.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900원
        6.
        2013.04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A numerical case study of stub type abutment consist of square wall pile and retaining wall has been done for its possible application. The FEM analysis using 3 dimensional elements is performed for defining its characteristic behaviors with respect to its construction sequence. The results indicate that the pre-construction of reinforced wall before installation of the square wall pile is more effective in the view point of the displacement and stress.
        7.
        2013.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오늘날 유학은 그 존립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공자가 요순시대를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주나라의 주공이 만든 통치체계를 모델로 하여 정립한 것이 유학이다. 유학자는 경전과 육예에 밝으면서 여러 형태의 의례를 집행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공자로부터 유학의 목적은 ‘극기복례’로 규정되었고, 이후에는 이 개념이 ‘수기치인’과 ‘내성외왕’으로 확대되었다. 내면적 인격을 완성하고, 이를 통하여 이상적 정치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은 왕조시대의 통치논리를 정당화 하는 것이지,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에는 맞지 않는다. 본고는 유학의 현대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모색이다. 전통적으로 유학은 중용을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공자 이전의 유학은 ‘황극’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으며, 공자로부터 ‘중용’이 강조되면서 커다란 변신을 가져왔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북송시대의 승려인 계숭이 파악한 유학의 본질에 대한 관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왕조시대의 인물이었으므로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오늘날 유학은 새로운 변신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 근본 덕목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보면서 이를 ‘大公’으로 제시한다. 정치의 형태에 따라 고대 요순시대에는 천자가 중심이 되어 ‘황극’에 의지해 ‘덕화’를 시행하였으며, 공자 이후로는 사대부가 중심이 되어 ‘중용’에 의지해 ‘교화’를 시행하였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오늘날은 국민 모두가 중심이 되어 ‘대공’에 의한 ‘同化’가 시행되어야 하며, 그 세부절목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학이 꿈꾸는 이상사회는 ‘大中至正’한 사회이다.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는 민주주의의 공화국 체제에서 가장 용이하게 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유학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예의의 강조이다. 각종 제례에서의 예의는 이미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가정과 사회에서의 공공예절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의 유학이 스스로의 존속을 위한 정체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현대사회에 필요한 예의 절목을 마련하여 모두가 함께 지키도록 홍보하는 일이다.
        8.
        199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강우시 산지사면의토양체와 대공극에서 발생하는 지표하 호우류를 구분하여 측정한 후 이들의 수문학적 특성을 밝히고자 수행하였다. 측정 시설은 미국 Georgia 주에 위치한 지질국 산하 Panola 시험유역의 상류 산지사면에 약 20m 길이의 조사구를 암반 깊이까지 파고 2m 간격으로 집수구를 설치하였다. 대공극류는 조사구 토양단면에 있는 13개의 대공극 중 유출이 발생한 6개의 대공극에 집수통을 설치하여 측정하였다. 1996년 3월 6일부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