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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7세기 교토(京都)에서 형성된 림파(琳派)는 사카이 호이쓰(酒井抱一, 1761~1829)의 활약으로 19세기 초 에도(江戶)에 성공적으로 이식되었다. 호이쓰와 그 一門에 의해 19세기 에도에서 전개된 림파를 가리켜 오늘날 에도림파(江戶琳派)라 지칭한다. 에도에서 림파 를 수용한 것이 비단 호이쓰만은 아니었으나 림파를 에도에 이식시키는데 성공한 것은 호이 쓰가 유일했다. 本考에서는 호이쓰가 림파를 수용해 에도에 이식시켜 나간 과정을 조망하고 이를 통해 그가 에도림파의 시조가 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고찰하였다. 호이쓰는 출가 직후인 1790년대 후반 무렵부터 고린풍(光琳風) 작화를 시작해 오가타 고린(尾形光琳, 1658~1716)의 100주기인 1815년 이후 본격적인 림파 화가로서 활동하였다. 호이쓰는 고린과 그 동생인 겐잔을 경모하여 추선법요, 유묵전, 묘소 수복, 화보 출판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이들 형제를 현창하였다. 특히 ‘오가타류(緖方流, 尾形流)’라는 표제를 붙인 인보의 출판은 유파로서의 림파를 최초로 규정한 것으로 주목된다. 여기에 호이 쓰를 지지하며 그의 활동에 적극 참여했던 주변 동호인들의 도움이 더해져, 호이쓰는 고린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대외에 널리 인식되었다. 또한 호이쓰는 림파를 학습하고 수용해 이전의 림파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우미하고 서정적인 정취나 사생성에 중점을 둔 묘사 등 호이쓰가 만들어낸 림파의 새로운 양식은 당대 에도의 문화 향유층인 스이진(粹人) 사회가 추구했던 담박하고 세련된 도회적 감성을 구현한 것이다. 호이쓰가 에도림파 양식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류계급 출신의 에도 토박이(江戶っ子)로서, 교토 상류사회에서 태어난 림파의 본질과 당 대 에도 문화 향유층의 요구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이쓰는 오랜 기간에 걸친 고린 사숙과 림파 수용을 통해 고린과의 인연을 공공으로부터 인정받고 림파의 새로운 양식을 창출해냄으로써, 교토에서 태어난 림파를 에도에 이식시키는데 성공했다. 누구나 고린풍에 접근할 수 있었던 당대 에도 화단에서 호이쓰만이 유일한 고린의 계승자, 림파의 재흥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연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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