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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만사 제문을 통해 玉山堂 林柱翊(1741~1797)의 삶의 자취와 인맥기반을 살펴 본 것이다. 이 당시 강우지역 학자들이 출사의 길이 막혀 학문적으로 침체했던 만큼, 임주익 역시 출사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야의 지식인으로서 가학을 계승하며 합천 지역에서 후학 양성에 주력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남아있는 저술이 없어 그의 삶과 학문의 자세한 면모를 알기는 어려우며, 다만 문중에서 보관해 온『옥산당만제집』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망인을 위한 만사와 제문은 의례에 수반되므로 실용적 목적성이 강하고 관습적이며 상투적인 글쓰기로 흐를 여지가 많다. 또한, 한 명의 망인을 추모하는 만사와 제문들은 내용적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유사한 구조와 표현 방식으로 일정 부분 공통된 내용을 담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들은 만사와 제문을 작품으로 두고 개성과 문학성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망인을 위한 집단 창작이라는 배경 위에서 그들이 일관되게 서술하고 인정하며 공감하는 내용은 그 자체가 객관성을 담보하는 사실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렇게 별도의 책으로 남아있는 만사와 제문의 경우 저술이 산실된 학자들의 삶의 실체에 접근해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살펴 본 결과, 옥산당 임주익은 합천의 은진임씨 가문에서 태어나, 석천 임득번 – 갈천 임훈과 첨모당 임운 – 임곡 임진부로 이어지는 선대 가학의 계보를 온전하게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는 과거에 뜻을 두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이후 더욱 독서와 학문에 매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그리고 말년에는 평소 품었던 뜻대로 자연에 의탁해 은거의 시간을 보냈다. 은진임씨가가 대대로 孝友의 실천에 명성이 있었던 만큼 임주익 또한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아우 매악당 임주석과도 남다른 우애를 자랑하였다. 외아들 임경이 딸만 두고 요절해서 여러모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으나, 달관한 듯 평소에 그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만사 제문을 쓴 사람들을 통해 임주익의 인맥 기반을 들여다보면, 당시 강우지역 학자들이 출사의 길이 막혀 학문적 침체를 겪던 터라 학문적으로 뚜렷한 구심점 없이 분산되어 사생 관계가 지역 단위 정도로 국한되어 나타났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임주익은 합천군 대병면에 세거해 온 안동 권씨·벽진이씨·남평문씨·밀양박씨 가문과 대대로 쌓아왔던 世誼를 바탕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였고, 그들과 때로는 戚誼를 맺고 때로는 사생관계를 맺으며 그 인맥 관계를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