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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지리산의 선계로서의 표상이 조선시대에 어떻게 강화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방식을 천착하고, 그 속에 투영되어 있는 사대부 문인들의 의도와 욕망을 추적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오랫동안 지리산 관련 정보가 집적되어 있어 지리산의 표상과 표상화 방식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인, 역 대 지리산 遊山記를 주된 분석텍스트로 삼아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 지리산의 선계 표상이 嶺南士林의 종장과 그 후학 들로 대표되는 지리산 유산객들에 의해 강화되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지리산이 仙界의 方丈山인 근거가 매우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영남사림은 이를 오랫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여 의미화함으로써 지리산을 선계로 표상화하는 토대 를 마련하였다. 여기에는 三神山의 구도 속에서 지리산의 독보적 위치를 드러내 려 했던 영남사림의 의도와 욕망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더하여 선현들과의 동일 시를 통해 자기 유람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공통의 의식과 은일과 탈속을 지향했던 욕망 또한 함께 작용하였다. 다만 방장산으로 자리매김 된 지리산은 최치원을 비롯한 儒仙을 현재에 소환하 여 지속적으로 만나고 靑鶴을 끌어들여 靑鶴洞을 실재화하는 방식을 통해 구체적 인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또 다른 주체는 바로 신흥사 와 쌍계사 등 지리산 주요 사찰에 기거했던 스님들이었다. 이들은 금강산을 불국 토로 만들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리산의 선계화 작업에 참여하였다. 스님들을 통해 강화된 청학동을 비롯한 洞天에서의 살아 있는 장소체험은 삼 신산(방장산)을 관념 속 실재가 아니라 현실에 실존하는 선계로 만드는 데 기여 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리산은 실제로 신선이 살고 있어 구체적인 선계 체험이 가능한 살아 있는 장소로 바뀌게 된다. 이는 다른 삼신산으로 거론되는 금강산이나 한라산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점으로, 조식 이하 영남사림들이 지 리산을 선계로 표상화한 결과이자 그 의미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