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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의 목적은 교회사 속의 교회가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와 프로테스탄트 교회(Protestant Church)로 변화를 겪는 동안에 끊임없이 갈등의 요인으로 등장했던 재세례파의 신앙과 이념의 배경을 연구함으로써 현대 교회와 선교에서 사실상 입교의 수속 절차로 전락해 있는 세례의 본질을 일깨우고, 그 본질을 교회와 선교의 중심 동력으로 복권시켜 새 선교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국내외 선교 생태 환경이 마치 재세례파들이 출몰했던 교회사 적 시기와 거의 흡사한 상황에 우리를 직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우선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세례를 삶의 자리로 인식함으로써 그것이 왜 본질로서 작동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도출된 문제와 인식의 틀을 가지고서 교회사 속 특정 구간을 읽을 것인데, 거기에서 우리는 ‘재세례’라고 부르는 용어와 그것을 직접 실천했던 실행 공동체들과 만난다. 그리하 여 재세례파라고 불린 그 행위의 급진성, 그리고 그것이 이단으로 규정 받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드러낸 또 하나의 삶의 자리(Sitz imLeben)를 도출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오늘날 교회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교회 자신의 외침과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 과정은 본 논문이 꾀하고자 하는 방법적 틀이기도 하며, 그 모든 방법적 과정이 마칠 즈음에 재세례라고 하는 이 특별한 용어에 함의된 세례의 본질과 기원이 이 시대의 새로운 적용 가능성으로 제시될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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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종교개혁 시대에 개혁가들이 선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적인 선교를 거의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 본질과 실체에 대해서 심각한 오해를 받은 나머지 한 때 이단적 취급을 받았고 급진적 종교개혁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던 재세례파는 오히려 종교개혁 시대에 선교의 선봉장 역할을 감당하였다. 재세례파는 종교 개혁가들이 교회 개혁에 몰두한 나머지 선교 사역의 실천적인 영역이 미진했을 때에, 재세례파는 모든 신자가 다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선교 사역에 매진하였다. 그들은 말로만 복음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제자도의 실천을 통한 신실한 섬김의 삶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리하여 당대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배출하였으며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친 것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개종자를 얻었다. 재세례파는 개신교 선교의 최초의 개척자였다. 재세례파의 이러한 놀랄만한 선교적 사역의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선교의 역사에서는 재세례파의 선교가 정식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금세기에 들어서 재세례파에 대한 연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재세례파의 본질이 산상수훈을 통한 제자도의 실천과 성경적인 교회의 본질인 공동체성의 회복에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 마당에 16세기 종교개혁시대의 선교에 선봉에 섰던 재세례파의 선교적 교회의 실체와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 시대의 선교에 대한 균형 잡힌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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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998.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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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한 세기 이상 계속되고 있는 성결운동과 오순절주의 분리를 다루면서, 그 사이의 논쟁에 대해 밝히는 역사신학적인 논문이다. 이 새로운 운동(오순절)이 시작된 후 교리적인 논문들이 증가했는데, 이는 양쪽(성결 운동과 오순절)에서 쓰인 종교 신문기사와 신학논문들은 “말싸움”이었고, 두 운동사이의 거리를 더욱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두 운동(성결과 오 순절)의 외부학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두 운동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성령세례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과 최초의 증거로서의 방언은 두 운동 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를 형성하였다. 미국 켄사스의 토페카(Topeka)로부 터 서쪽으로 확산되어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까지, 그리 고 다음으로 극동지역(아시아)까지. 4권의 교리서들(양측에서 2개씩)은 그 분열의 수사학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 로 이 글은 결론으로 대화와 화해의 수단으로써 세계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를 제시하고 있다.
        6.
        2013.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relationship between Calvin and Anabaptist radicals in the sixteenth century This study first traces the relations of Calvin and Anabaptists from historical perspective, and then examines from theological perspective Schleitheim Confession(1527), which is an early Anabaptists’ articles of faith, and Calvin’s Brief Instruction Against the Errors of the Common Sect of the Anabaptists(1544), which is Calvin’s refutation against Schleitheim Confession. In the sixteenth-century reformation movements, Calvin on the one hand should fight against Roman Catholicism, and on the other hand have to stand against Anabaptist radicals. Calvin cries for reform against Roman Church’s ecclesia deformata, at the same time he raises his voice against Anabaptist’s sectarian errors pursuing ecclesia perfecta. This study discloses what Calvin and Anabaptists argue, and what theological points of dispute between them are. In particular, it analyzes their differences from three significant topics, baptism, church, and st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