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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199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5,200원
        22.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에서는 介庵 姜翼(1523-1567)의 학문 특징을 살펴보고 그의 학문 지향이 문학작품에서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서술 하였다. 강익은 당대 함양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평생을 수양으로 일관하였고, 남계서원 건립을 주도하는 등 유학의 사회적 보급에도 힘 을 기울인 인물이다. 이러한 강익의 학문 특징은 그가 남긴 記文에 집약 되어 있다. 강익은 이른 나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爲己之學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학문에 정진하였는데, 이는 스승 唐谷 鄭希輔(1486-1547)나 南冥 曺 植(1501-1572)의 영향 외에도 자신의 과단한 실천 성향이 그 기저에 자리했다. 과단한 실천 성향이 위기지학을 확고히 실천하도록 만든 요 인이며, 성현의 본지를 ‘自得’하는 학문 방법을 통해 더욱 정교한 실천 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조식은 강익에 대해 ‘끝을 잘 맺을 것이 분명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하였다. 강익에게서는 문학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 감지되지 않는데, 이는 문 학에 대한 고민보다 심신수양에 역점을 두었던 그의 학문 지향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그의 학문 지향이 집약된 작품이 「양 진재기」이다. 강익은 「양진재기」에서 양진재를 건립하게 된 경위와 택지의 이유 및 의도 등을 설명하였다. 이 작품에서 강익은 성정의 참됨[性情之眞] 을 기르고자 외부와 격리된 곳에 택지를 하고, 주변의 자연물과 자신의 공부방이 교감할 수 있도록 안배하였으며, 수양을 돕는 물건들도 주위 에 배치하였다. 즉 「양진재기」는 강익의 자기 수양을 위해 자연물·인공 물을 가려서 배치하고 연출한 의도와 그 속에서 성정의 참됨 기르고자 했던 학문적 지향이 담긴 글이다. ‘양진재’가 본인의 학문 정진을 위해 사적 공간을 의도대로 조직한 건물이라면, ‘남계서원’은 학문의 표본을 제시함으로써 지역사회에 유 학을 널리 장려하고자 설립한 건물인데, 이러한 강익의 학문적 지향이 표출된 글이 「남계서원기」이다. 「남계서원기」에서는 一蠹 鄭汝昌을 제 향해야 하는 도학적 당위와 서원의 교육·교화적 기능을 주로 설명하였 다. 인간만이 도를 사회에 실천할 수 있는데 이는 도를 지닌 사람만이 가능하므로 정여창과 같은 선현을 서원에 제향하여 추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현을 서원에 모시고 제사지내는 의식이 학생들을 고무 시키는 측면이 있으며, 이를 통해 정여창의 도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유학이 부흥할 거라는 것이다. 강익은 두 편의 記文을 통해 내면으로 학문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대외적으로 학문을 장려하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16세기 초반부터 조식·이황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유학자로서의 표상을 정립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학적 가치를 실천하고 보급한 강익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사림의 자기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졌던 것이다.
        23.
        201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T. S. 엘리엇의 초기 산문에 나타난 윤리관을 아리스토텔레스, 브래들리, 불교 철학자들에게 보인 그의 관심과 연결하여 논의한다. 이러한 연구는 “윤리” 혹은 “윤리적”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고찰하려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엘리엇에 대한 전형적인 비평과 달리 그를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재조명해 보려는 시도이다. 즉 엘리엇을 보수적인 엘리트 시인, 편협한 사회비평가 등으로 간주하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면, 본고에서는 엘리엇의 산문 중 주목을 덜 받은 글을 발굴하여 그의 윤리관을 논의하면서, 오히려 겸손한 태도, 구체적 일상에 유용한 지혜, 극단에서 벗어난 중용의 방식 등을 그의 윤리적 관점의 핵심으로 부각시킨다. 엘리엇은 브래들리의 “겸손,”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불교 철학자의 “중도”의 방식을 높이 평가하면서, 자신의 윤리적 관점을 상대적인 진리와, 우리의 구체적이고 복잡하고 다양하며 변화하는 현실에 열려있는 것으로 제시한다. 미발표 원고를 포함한 초기 산문에서 엘리엇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진리, 도덕적․기계적인 법칙과는 분명 다른 상대주의적 윤리관을 표명한다.
        26.
        1997.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중국 고대의 산문은 발전하여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 이르기까지 藝術史의 눈부신 몇몇 단계를 거쳤지만, 이와 아울러 그 예술 상의 단점과 병폐도 또한 노출하였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의 산문창작은 앞시대에서 마련된 산문예술 상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변화를 거듭한 끝에 새로운 경지를 열었고, 이후에 비로소 산문예술의 발전을 계속적으로 推動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명나라와 청나라 散文家들 가운데는 이런 점에 留意하여古文을 지으며, 예술 상의 個性을 추구하는 인물이 많았다. 때문에 명나라와 청나라 두 시기에는 산문예술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논쟁이 매우 시끄러웠는데, 유례없이 많은 주장과 많은 流派가 생겨났다.이것은 필연적으로 급속하게 산문예술에 관한 이론이 전개되고, 산문창작의 風格이 다양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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