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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2010.09 KCI 등재후보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유교문화는 한국사회의 전반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가치관으로,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 한편 시조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형시로서 한국인의 정서와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일본인 학습자들에게 시조를 활용하여 유교 문화에 대해 교육하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먼저 본고에서는 유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한국사회의 인간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사고방식이 시조 속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시조를 활용해서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한 학습자들의 이해를 돕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아가서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상호문화의 현상과 본질을 이해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22.
        200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孔敎運動을 주도한 眞菴 李炳憲(1870~1940) 의 유교개혁론의 배경과 성격을 검토한 것이다. 이병헌은 3·1 민족해방운동이 전개되고 있던 1919년 유교의 자발적 개혁과 변신만이 민족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孔子를 敎主로 하는 유교의 종교화를 골자로 한 󰡔儒敎 復原論󰡕을 저술했다. 유교의 종교화를 통한 복원은 일차적으로 그의 학문적 토 대가 되는 寒洲學派의 心卽理說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었다. 심즉리설은 純 善인 理의 절대적 가치를 부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을 적극적 으로 적용할 경우 理를 上帝의 개념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토대로 그는 중국에서 戊戌變法을 주도하며 공교운동을 전개하던 康有爲의 지 도를 받으며 한국에서 유교의 종교화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공 교운동은 공자 이후 모든 학문적 경향을 부정하고 공자의 정신을 복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우주론에 입각한 수양론을 확립하고 있던 학파들의 반발로 인해 순조롭게 전개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유교복원론 은 유교의 개혁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 그것의 생명력을 견지하는 방안으로 종교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역사적 의미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 가된다.
        23.
        200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에서는 주로 조선의 사대부들이 남긴 지리산 한시를 통하여 지라산에 대한 그들의 사상적 인식이 어떻게 드러나 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비록 유학자 내지는 유학척 교양과 식견,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 젖어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시이가는 하지만, 그들이 지리산과 관련지어 말한 사상의 폭은 외 형적으록 매우 포괄적으로 나타나 보였다. 하지만 이면적인 성격을 살펴보면 이들 의 유가척 안식도 매우 폭이 좁고, 불교나 도교 그리고 민간신앙에 대한 인식은 매우 자신틀의 편의에 맞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유가적인 인식은 ‘존현’ 정신으로 특정지을 수 있다. 도가적 인식은 ‘유선’ 사상 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불가적 인식은 ‘향도’ 의식으로 특정지을 수 있다. 민간신 앙적 인식은 ‘불배’ 의지로 특정지을 수 있다. 이들이 지리산을 가는 동안, 그리고 지리산 위에서 보고 겪은 것에 지리산에 대 한 인식이 다양하게 드려나 었는데, 지리산을 다녀온 뒤의 생각에도 또한 유가적인 생각을 바탕으후 한 감회를 피력한 것이 많다. 지리산에 오르거나 다녀오니 현 설의 막힌 것 흑은 물든 것이 터지거나 씻어졌다고 감회를 밝혔다. 한마디로 마치 신선세계에 오른 것 같다고도 하였으나, 이들이 현실로 돌아올 때의 사상적 지향 점은 역시 유가로 선회하고 었음을 볼수있다. 유학적 현실에 담갔던 몸을 빼어 지리산으로 향함에 그것에 대한 인식이 유불도 및 민간신앙에까지 미쳤지만 유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다시 현실로 돌 아옴에 유가적 본연으로 회귀함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신선세계의 하나로 일컬어 지고 하고, 가장 많은 절을 안고 있으며, 그 꼭대기에 민간신앙의 대상이 자리잡고 았는 지리산을 읊은 사대부들의 한시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 그것이었다고 하겠다.
        24.
        200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필자는 이 글에서 막스 베버의 유교론을 아래와 같은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첫째, 베버는 서구에서 자본주의적 근대사회가 발흥하는 데는 개신교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자신의 명제를 입증하기 위해 방대한 비교 종교사회학적 연구를 수행 하였으며, 이 연구의 일환이 그의 유교론이다. 둘째,그의 비교 종교사회학적 연구 프로그램은 크게 ‘기독교적’ 세계상과 ‘동양 종교적’ 세계상이라는 두 가지 이념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이 두 가지 세계상을 분석하는 틀은 (1) 세계상의 담지자층이 가진 ‘이해관계’ (interest)의 차원과 (2) 세계상 내재적인 ‘이념’ (idea) 논리 차원간의 상호작용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셋째, 베버는 유교를 ‘실천적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세계상의 하나로 규정하며 이것을 유교의 담지 자층인 사대부 집단과 중국의 가산제적 국가구조와 연계시켜 설명하고 있다. 넷째, 베버 유교론은 중국 문화에 대한 일련의 날카로운 사회과학적 통찰을 닫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적지 않은 편견과 잘못된 해석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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