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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西崗 安益濟는 한말시기 경상우도 의령지역의 대표적 士人이다. 남명학의 磁場이 남아있는 강우지역에 세거하였으나 그에게서 남명학파의 성향은 드러나지 않았고, 耽津安氏家의 문중적 성향으로 보면 寒洲 李震相(1818~1886)의 계열임에도 이와 관련한 師承이나 학설이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타고난 문학적 자질을 지닌 뛰어난 문학가였다. 안익제는 19-20세기 어려운 시대에 재야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 현달한 치적을 남기진 않았지만,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활용해 다양한 장르에서 양적으로도 적지 않은 문학작품을 창작하였다. 소재 면에서도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작품으로 승화시켜 표현하였다. 주변의 돌 하나 꽃 한 송이도 모두 문학적 소재로 활용하였고, 특히 치열한 士意識을 일상의 소재에 투영함으로써 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그의 독특한 학문태도와 의식 성향이 더해져, 그의 작품은 차별적 특징을 드러내었다. 날짜 중심이 아닌 記事 서술 방식을 통해 지리산권역에 대한 세세한 기록을 남겼고, 지역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광범위하고도 섬세한 공부가 있었으며, 이에서 파생된 오류 정정의 태도 등은 이전 시기 강우학자에게선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더욱이 自問自答의 학문태도는 매우 참신하면서도 유효한 방식이었다. 貧寒한 가정형편으로 배움의 기회마저 잃은 士人이었지만, 이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문적 성취를 구현하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표출하였다. 그러나 본고에서 미처 수렴하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예컨대 그의 일생을 지배했던 易學과의 관계, 특히 洋學과 七佛寺 影池에서 보인 객관적 사고의 근원이 어디인가에 대한 규명 등이 부족하였다. 뚜렷한 師承 관계도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家學的 성향이 짙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이는 차후의 과제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