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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8

        2.
        2016.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is a comparative study on a cookbook published in 1900s titled「Jusikbangmun」, one of collections of the National Central Library, along with other cookery books in Joseon Dynasty in the late 1800s to early 1900s. 「Jusikbangmun」consists of 51 recipes, including 45 kinds of staple foods and six kinds of brews. More than 60% of the recipes deal with staple dishes and side-dishes, whereas the rest deal with ceremonial dishes and drinking. The 「Jusikbangmun」applies a composite method of cooking from boiling and steaming to seasoning with oil spices. The ingredients are largely meats rather than vegetables, which is distinguished other cookery books in the Joseon Dynasty. Only 「Jusikbangmun」deals with such peculiar recipes as ‘Kanmagitang’, ‘Bookyengsumyentang’, ‘Jeryukpyen’, ‘Yangsopyen’, and ‘Dalgihye’. It is estimated that 「Jusikbangmun」was published around the 1900s based on findings that 「Jusikbangmun」is more similar with「Buinpilgi」and「Joseonyorijebeop」in the early 1900s than with「Kyuhapchongseo」, 「Siyijenseo」and「Jusiksieui」in 1800s. Therefore,「Jusikbangmun」is a valuable resource, we can use understand the food culture of the late Joseon period.
        5,400원
        3.
        2014.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불교탄압과 유교진흥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은 조선후기 승려들의 각종 부역동원의 사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승려 들의 산성방어와 각종 토산물의 생산과 상납이 불교계에 대한 수탈 과 착취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평가와 인식은 조선후기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살펴보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은 인구감소, 자연 재해, 대규모 기근, 농토의 황폐화 등으로 암울한 상황이 지속되었 다. 급기야 조선정부는 백성들의 전세(田稅)·공물(貢物)·역(役)의 부담을 완화시켜 주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대동법이나 균역법의 시행은 백성들에게 일시적인 위안책이었다. 대동법 시행으로 백성들 의 부담을 떠안은 승려들의 곤궁함이 더해지기도 했지만,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향상되지 못했다. 균역법의 시행 이후 승려들의 부역동 원도 점차 금지되었고 완화되었다. 요컨대 조선후기 경제상황과 수취체제의 시행은 승려들이 맹목적 인 수탈과 착취의 대상은 아니었으며, 불교탄압의 사례로 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였다.
        7,800원
        4.
        201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includes a review of the relevant literature and data on the Gyeolseong Eupseong, a coastal castle town of the Joseon Period. During the process of building the Gyeolseong Eupseong, Eupchi(administrative office) was transferred to several different locations for the following reasons:. first, to strengthen defensive capabilities by utilizing the locational advantages of the Seokdang Mountain Fortress, second, to secure sufficient space for holding the castle and have access to water in times of emergencies, third, to strengthen coastal defence by utilizing geographical advantages. Most of the Gyeolseong Eupseong was damag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t present, there remain only part of the castle's facilities and some facilities that were restored later in modern times; 4 building sites have been identified. Remaining and destructed buildings can be identified through old maps(the local maps of 1872) and Zirizi and Eupzi(geography books). Also identified were 2 castle gate sites where a 1,500m-long stone castle wall and an ongseong(a crescent-shaped defensive structure), 5 chiseongs, and a most were constructed. The Gyeolseong area is assumed to have been a strategic foothold to defend the west coast from the days before the Three Kingdom Period. However it is very difficult to find any records created before the Joseon Period. Therefore, the time of the restoration of the Eupchi should be determined based on records created in the late Joseon Period. Finally, excavation work needs to be done to identify the locations of the castle's facilities.
        4,900원
        5.
        2008.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소고는 倭亂(1592年~1598年)과 胡亂(1636年~1637年) 이후 조선후기의 사 상을 ‘実心’과 ‘実心実学’을 키워드 삼아 고찰하였다. 조선후기는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고, 보다 견고한 왕조지배체제를 제구성해야 한다는 당면과제가 있었다. 따 라서 그 이전과는 다른 氣流가 정치․경제는 물론이고 사회와 문화 등 여러 분야 에 흐르게 되었다. 특히 ‘実’이라는 개념을 자주 눈에 띠는데, 이는 兩亂의 原因을 반성한 결과일 것이다. 즉 ‘虛’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實’이다. 따라서 英祖․正祖時期의 文書에서 발견되는 ‘実心’과 ‘實心實學’의 용례는 ‘實’을 내용을 고찰함에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儒學의 텍스트에서 ‘実’은 ‘誠’의 내용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특히 中庸에는 ‘誠’은 하늘의 道이고, ‘誠之’는 사람의 道라고 하는 規定이 있는데, 이는 ‘実心’을 분석하고 논의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거점이 된다. 용례를 정리하면 실심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공식문서에서 신하가 군주에게 요구하는 ‘実心’이 다. 이 경우 군주는 끊임없이 신하의 忠告과 警告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는 ‘実心’을 갖추어야 한다. 政治的의미가 강한 실심으로, 君民共治를 위한 實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行動主体로서의 군주 自身의 文書, 혹은 신하 의 個人的文書에 사용된 ‘実心’이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本然의 마음을 실심으로 보는 것이다. 朱子学적 修養論인 ‘存天理去人慾’과 ‘戒愼恐懼’의 자세를 갖추고, 内面의 純粋性으로서의 실심을 보존하는 것이다. 이런 ‘実心’은 他者에게 感動을 주어 共感하고, 他者와의 疎通을 꾀하며, 他者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여기서의 ‘実心’은 實事에 임하여 實政을 행하고 백성에 도움이 되는 實效를 거두는 원동력이다. 또 이 실심에 근거한 학문이 ‘實心實學’이다. 이 ‘實心實學’은 陽明学的絶対純粋의 마음을 자각하고 그것을 重視하는 観点이 기초를 이룬다. 실심을 강조하는 人士들은 文字에 얽매여 있는 知識을 実践에 옮기는 ‘實心實學’ 의 구현을 위하여 노력한다. 즉 朝鮮後期의 새로운 학문기류에서 보이는 實心이 란, 자신을 향한 엄격 수양의 필요성을 자각한 데서 나온 개념이다. 이런 실심을 전제로 하는 실심실학이란, 이상적 민생실현을 위한 의식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7,700원
        6.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문헌에 실린 봉정사 관련 시문들을 중심으로 시문이 창작된 연대와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고, 이들 시문을 통해 봉정사가 사찰이 갖는 기본적 기능 이 외에 유교적 공간으로도 적극적으로 활용된 점을 중점적으로 고찰하였다. 봉정 사는 신라 시대의 승려인 能仁이 창건한 고찰로 알려져 있다. 극락전과 대웅전 은 독특한 건축 양상을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될 만큼 매우 가치적인 공간예술이다. 또 봉정사를 포함한 주변 원림은 사찰이 지닌 특수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렇듯 봉정사는 불교 문화로서의 전통성과 심미성을 지닌 공간이다. 그런데 조선 중기에 접어들면서 지식인들이 사찰 공간을 유교 공간으로 활용하였고 특히 조선의 유학을 집대성한 퇴계가 16세에 이곳을 찾은 이후로는 그 상징성이 더욱더 커갔다. 그리하여 봉정사는 독서와 강학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퇴계집』을 중간하는가 하면 『번암집』과 『서산집』을 간행하는 등 인쇄문화의 꽃을 피웠다. 특히 김시 침·류원지·이이송 등이 주도하여 창건한 蒼巖精舍는 추념의 공간이자 성지순례 코스로서의 그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렇듯 불교적 수행·의례·강학의 공간인 사 찰이, 지역 사대부와 사족에게 강학·문집 간행·풍류 등의 방식으로 향유되었다.
        7.
        2016.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o understand the traditional knowledge of botanical taxa in Jeju Island, a diachronic study was carried out by comparing the archaic and modern names of the native plants in Jeju Island. To identify the archaic names of the plants, five old documents (Sejongshillokchiriji, Shinjŭngdonggukyŏjisŭngnam, T'amnaji, Namhwanbangmul and Jejugyerok) that were written during the Joseon Dynasty between the 15 th and 19 th centuries were closely examined. A total of 131 taxa (65 families, 112 genera, 118 species and 13 varieties), 7.3% of the native plants known to be currently present in Jeju Island, was identified. Out of these, 21.4% was the plants found in the southern area. Among the five old documents analyzed for this study, Namhwanbangmul recorded the largest number of plants, 89 taxa. We closely examined the consistency between the modern and archaic names of each plant, and discussed the problems in matching the names of some plants analyzed in this study.
        8.
        200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조선의 경학사에 일획을 그은 君王인 정조와 신하인 정약용의 학문적 만남을 詩經講義라는 텍스트를 통하여 조망한 논문이다. 이들의 만남에 주목하는 이유는 통상의 經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군왕이 자신의 의도로 선택한 인재와 질의응답을 통하여 새로운 경학의 세계를 확장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이다. 우선 전통적 帝王敎育의 유형으로 정도전 · 권근 · 이황 · 이율곡 등의 사례를 들어 조선시대 경연이 추구하였던 이상적 교육상을 알아보고, 이것에 대응하는 역대 왕들의 경연 참석 상황을 살펴보았다. 정조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말하면 好學의 學者적 君王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조의 유교적 이상정치와 현실의 실현이라는 점점에 정약용을 비롯한 초계문신이 위치한다. 초계문신 뿐 만 아니라, 정조의 정치적 학운 활동에는 학파 • 지역 · 신분 의 차를 초월하여 다양한 유자가 참여한다. 이러한 열린 학문 활동은 곧 당시 사회의 개방성에의 지향을 엿보게 함과 동시에 보편 문화의 성숙을 알려준다. 『시경강의』를 통하여 살펴본 두 사람의 기본적 경학관은 상당히 유사하다 양쪽 다 주자의 경학적 업적을 존중하지만, 논리상 부합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회의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정조는 정약용만큼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조의 개방적 경학관에 힘입어 주자를 극복하는 정약용의 독창적 견해가 빛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이러한 脫朱子의 경학관은 정조시대의 새로운 학 풍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정약용의 『시경강의』의 내용분석을 통하여 정치와 사회에 관한 두 사람의 견해 를 알아보았다. 특히 ‘賢人 ’에 있어서 정조가 유교의 전통적 賢人觀을 견지하고 있음에 비하여, 정약용은 어느 분야에서냐 기능이든 학문이든 할 수 있는 데까지 매진하여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그를 현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고착화된 신분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安民’의 문제에 있어서는 두 사람 모두 유사한 시각을 노정한다. 安民의 기본조건으로 治者계층의 德化를 중요시한다. 堯舜의 至治를 정치의 이상형으로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현실적 방법으로 治者는 古學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想定한다. 이러한 본고의 고찰을 통하여 정조와 정약용과 갇은 군신 간의 학문적 활동은 글자그대로 敎學相長적인 만남이며, 조선경학의 실학시대를 만개 시킨 動力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