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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신석기시대부터 통시적 관점에서 청동기시대 조기의 사회형태를 검토한 것이다. 이를 위해 신석기시대 조기~전기의 복합수렵채집사회에 대한 논의, 신석기시대 후·말기 양상, 청동기시대 조기의 취락·농경·석기·청동기 양상, 돌대문토기문화의 기원지로 여겨지는 마성자문화의 양상을 살 펴보았다. 그 결과, 신석기시대 사회는 수렵채집어로를 바탕으로 기후 및 자연환경에 따라 사회규모와 형태를 변형시키는 유연성을 갖춘 사회였음을 확인하였다. 신석기시대 조기~전기는 복합수렵채집사회의 특 징을 보이나, 말기에는 기후악화에 따른 생업환경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였다고 보았다. 그리고 신석기시대 말기는 평등사회의 범주에 포함되나 취락이 가족단위로 이루어진 소규모 분절사회의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청동기시대는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사회복합화가 가속화되는 한 방향의 길을 걷게 된다. 조기 사회는 완만하지만 서열사회를 경험한 이주 농경민에 의해 형성되었고, 정착 및 잉여가 발생할 수 있는 토대가 갖추어진 사회였다. 그리고 가족단위와 친족단위의 분절사회가 공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리더(리더를 포함한 집단)는 권위 표출이 제한되거나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제도화되지 못하였다고 보았다. 전기이후 농경사회의 생업과 제도가 확산되면서 비혈연을 기반으로 한 지역집단이 형성되고, 지역집단 통할과 공동체 통합을 위해 취락 내와 취락간의 서열 발생이 가속화된다. 점차적으로 청동기, 지석묘 등의 장치를 통해 집단 내 서열은 더욱 공고해지고 제도화되면서 수직적 사회 분화가 심화된다. 이상으로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사회는 연속적으로 점진적으로 한 방향으로 변화·발전하는 과 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석기시대 사회형태는 수렵채집이라는 획득경제 하에서 각 집단의 선택의 결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청동기시대 사회는 도작농경이라는 생산경제 하에서 집단 통할과 공동체 통합을 위해 사회복합화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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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중서부지역이나 최근 新자료가 늘어난 강원지역 등과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는 영남지역 신석기~청동기시대 전환기에 대한 자료의 검토를 위해 작성되었다. 그간의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전환기 양상연구에 대한 동향은 많은 연구자에 의해 단절 또는 계승이라는 이분법적 연구결과로 점철되어 왔다. 그 배경은 양 시기 집단이 고고자료상 매우 소극적 접촉결과만을 남기고 있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양 시기의 물질문화에 대한 구체적 비교·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토기나 문양 또는 역연대의 결과도 양 시기가 결코 단절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한 상황이다. 전환기 양상을 검토함에 있어서 그동안 신석기시대는 가장 최후의 토기양식기인 율리식단계에만 집중한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신석기 최후 단계인 율리식토기단계의 경우 대부분의 유적이 패총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취락유적으로 존재하는 청동기시대의 물질문화와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에는 이중구연토기라는 한정적 자료에 봉착하여 더 이상의 논의를 하기 힘든 점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전환기 양상을 급격한 시간적 간극을 통한 과정으로 파악하고 자료의 외연을 후·말기로 확장하여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료의 선정에 있어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구가 동일 유적·층위에서 확인된 사례를 검토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 영남내륙지역의 김천 송죽리유적, 밀양 금천리유적, 남강유역의 상촌리유적, 진주 평거 3-1지구유적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 결과 접점이라 할 수 있는 이중구연토기, 문양, 이형토기 등에서 공통분모를 어느 정도 간취할 수 있었고 그러한 공통분모를 양방향적인 교류로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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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필자는 요시무라 레이 吉村怜의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연화화생 도상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연꽃 문양은 몇 변화 단계를 거쳐 불·보살·天人(飛天)으로 化生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관련 연구를 계속하면서 아래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시무라가 주장한 연화화생 도상은 넓게는 화생 가운데 하나이며 더욱 넓게는 기의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의 표현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 만 범세계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불교미술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불교 전래 이전부터 도도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기(화생 연화화 생 포함)에 등장하는(표현하는) 여러 문양은 단순한 장식 문양으로 그치 지 않는다. 이들은 기(화생 연화화생 포함)를 표현하고 전달하며 상호 同格을 이루고 互換交互하며 連繫된다.> 필자는 위 견해를 1993년 발견 백제금동대향로 해석에 적용시켰다. 본고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부터 기의 표현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 리고, 더불어 백제금동대향로 제작 특히 연화화생 등 기의 표현도 당시(6 ∼7세기) 이웃나라(특히 중국)의 영향이 아닌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을 따 른 것임을 알릴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이 논문에서 例示한 토기와 청동기에서 보듯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기 화생 연화화생의 표현은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전 개, 전승되었다. 또한 앞애서 주장한 것처럼 기 화생 연화화생 표현 에 등장하는 여러 문양들은 상호 동격을 이루고 호환 交互하며 連繫된 상태를 어김없이 보여준다. 신석기시대 토기에는 주로 點文(점선문) 직선문 (연속)삼각문으로 표현하였고 기타 연화문 화염문 파상문 당초문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을 통하여 산 태양 연꽃 또는 그 관련 기 화생을 표현하였는데 대 개 간단한 구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한 (연속)삼각문(그 안 직선문 포 함)은 삼국시대에 이르면 분명 山文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연화문을 나 타낸 웅기 송평동 출토 토기(도2), 연속 삼각문과 유사한 모습의 연화문 을 나타낸 통영 연대도 출토 토기(도7) 등을 통하여 볼 때 신석기시대에 도 蓮華化生山즉 ‘연꽃으로부터 山이 화생되는 표현’도 있음을 알 수 있 다. 이 山文이나 연화화 생산 표현을 계승, 발전시킨 도상 가운데 하나가 백제금동대향로이다. 청동기시대 기 화생 표현은 주토 청동기에 ‘짧고 조밀한 연속 직선 문’ 점문(점선문) 원문圓文(연속)삼각문 파형문巴形文당초문 등으로 나타냈다. 기본 바탕은 신석기시대의 것을 계승하였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이다. 이들은 불교미술 등 후대에 깊 은 영향을 끼쳤다. 삼국시대(가야시대 포함) 토기에 보이는 기 화생 표현은 그 문양 등 에서 보듯 신석기시대 토기(기원전 5000년경∼기원전 2000년경)와 청동 기시대(기원전 2400년경∼기원전 600년경) 청동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이다. 기 화생 표현은 더욱 다양화되었고 확산되었으며 특히 연화화생 표현은 더욱 보편화되었다. 연속 산문을 위시하여 원문 半圓文당초 문 연화문 인동문 등으로 나타냈으며 역시 철저하게 상호 동격을 이 루고 호환 교호하며 연계된 구성을 보여 준다. 이상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강역(오늘날 滿洲와 한반도 지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기는 시기에 전개된 기 화생 연화 화생 표현은 독자적 영역을 이루며 전승된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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