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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3·1운동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각계에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특별히 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기독교는 각 교단별로 독립 만세운동 적극가담자의 신원을 밝히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각 교단의 활동에 동참하기 위해서 안식일교회도 3·1운동에서 안식일교회의 역할을 조명하는 연구가 요구되었다. 본 연구는 이런 역사적 필요에 부응하여 3·1운동 당시에 안식일교회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새롭게 정리하였다.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면, 안식일교회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첫 기록은 3월 2일 평남 거촌교회에서 박종은, 최경선 등의 주도로 5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후 3월 6일에 평남 순안에서 진행된 만세운동에서 안식일교회가 경영하는 사립의명학교의 교직원생도 수 명이 포박된 기록이 나타난다.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전개된 독립만 세운동에서 입감된 9천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 안식일교인은 5명으로 집계 된다. 본 연구는 이 5명의 안식교도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박종은, 전홍석, 강영국, 홍종엽, 최경선이 이 명단에 포함되는 것을 밝혔다. 이와 더불어 1년 후에 상해임시정부의 명령에 따라 추진되었던 대한독립1주년기념축하경고문 배포문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안식일교회 출판소인 시조사와 안식일교인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이 사건으로 유진익, 유진상, 권학규 등의 안식일교인이 체포되어 감옥에 갔다. 그 외에도 순안병원의 의사였던 러셀 선교사가 총에 맞아 부상을 입은 청년을 치료해 준 것이 발각되어 3개월간 심문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안식일교회는 교인들과 시조사와 순안병원과 선교사를 통해서 3·1운동에 가담하였음이 여러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서 밝혀진다. 1904년 한국에 복음이 시작된 안식일교회는 15년 후에 발생한 민족독립운동에 동참하여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