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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동서교역에 종사하며 문화전달자 역할을 하였던 소그드인들은 조로아스터교를 주종교로 삼았다. 소그드인들이 숭배했던 나나는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여신이 아니었지만 후대에 소그드인들의 만신전에 포함되어 널리 숭배되었다. 나나여신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탄생한 여신으로 긴 역사동안 풍요와 다산, 미의 여신이자 도시의 수호여신, 왕권의 수여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나나여신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널리 신앙되었던 인안나-이슈타르와 동일신 혹은 그 후신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본 논고에서는 별개로 발생한 여신으로 보았다. 나나의 가족관계가 인안나-이슈타르와 다른 점, 중기 바빌로니아시대 쿠두루에서 금성의 신 이슈타르와 별도의 신격으로 표현된 점, 그리고 나나의 찬가가 별도로 존재한 점 등이 그 이유이다. 소그드의 여신 나나로서 도상이 정립되기 시작한 시기는 쿠샨왕조시기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중앙아시아에 이식되면서 나나는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시벨레, 레아 등의 여신들과 동일시되며 그들의 모습을 차용하여 변모하였다. 쿠샨왕조 시기의 나나도상에는 초생달관을 머리에 쓴 아르테미스형의 나나, 사자 위에 앉은 나나 등이 존재한다. 이후 소그드인이 숭배했던 나나는 쿠샨왕조의 나나와 달리 네 팔이 있으며 성벽관을 쓰고 갑옷을 갖춰 입은 채 사자에 앉은 형상으로 변화한다. 나나는 소그드인의 도시국가인 소무구성 내에서 왕국의 수호신 혹은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 같다. 특히 초라스미아나 펜지켄트 등에서 중요한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펜지켄트에서 나나는 심판장면, 지옥장면 등과 함께 표현되어 있어 조로아스터교의 신들의 판테온에 유입되면서 내세와 관련된 정체성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네팔을 가진 나나의 형상은 6세기 이후 소그드인들이 인도의 힌두문화를 적극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개념화되고 추상화된 조로아스터교의 신들은 신상으로 제작되지 않았었는데 소그드인들은 인도의 힌두신 도상을 차용하여 새로운 신들의 모습을 창출하였다. 소그드인들은 동서교역의 주역으로 개방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성향은 그들의 문화 속에도 반영되어 타 지역의 문화적 자극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들의 전통과 결합시켜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었다. 나나는 이러한 소그드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경향을 보여주는 특별한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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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6세기 중후반~7세기 초 수대까지 중국 경내에서 활동한 소그드인의 종교 및 문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무덤 내 출토품과 관련 문헌 자료에 대한 정리를 통해 그들의 중국 내 거주 및 문화 양상을 대략적으로 고찰하고, 이에 대한 연구 경향을 분석한 후,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시론적으로 탐색하였다. 먼저, 6세기 중반~7세기 초 중국에서 활동한 소그드인의 묘지(墓誌)와 무덤 출토 석장구(石葬具)의 기본적 현황을 고찰하였다. 이를 토대로 소그드 상대(商隊) 수령인 ‘살보(薩保)’를 중심으로 중국 내 소그드인의 정착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무덤 내 출토품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종교와 문화의 두 측면으로부터 분석했다. 그들의 종교와 문화는 조로 아스터교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불교적‧마니교적 요소는 물론 중국적 요소까지도 포함하는 매우 혼종적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그드인들의 석장구가 6세기 후반∼7세기 초의 화북지역에만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시공간적 특색에 주목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해서 짚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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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 Sogdian Merchants were the undertakers of international trade on the Land Silk Road in the Middle Ages, and their business footprints spread all over Eurasia. The ancient trading currency of Sogdian Merchants is a key to study the trading history of the region and the entire Silk Road. Although the economic strength of Sogdiana was strong, the country was very weak and had been controlled by the powerful forces around it. Sogdian Merchants wanted to use large amounts of currency for exchanging activities in countries along the Silk Road, they must imitate the currency of the powerful countries that controlled the Silk Road or even use their currencies directly to meet the needs of long-distance transshipment trade. Most scholars agreed that the Persian Sassanian silver coins used to be the currency of circulation along the Silk Road. Whether the main purpose of the unearthed Byzantine gold coins was to act as circulating currencies on the Silk Road at that time, there is still a great controver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