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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에서는 이사부의 신라영토확장과 우산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몇 가지 사항을 중점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우선, 이사부 관련자료를 그 생애와 활동을 중심으로 보다 치밀하게 검토한 바, 그 출생년대는 이를 전하는 기사가 찾아지지 않으므로 추정하기 어렵지만, 그 사망년대에 대해서는 관련자료를 적극 검토하여, 이사부는 562년 가야 정벌과 관련된 기사 이후 그 추적이 어려우며, 당시의 나이(대략 77세)를 고려할 때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추정해 보았다. 다음으로, 『國史』의 편찬과 연관하여 그 편찬 목적과 의의에 대하여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국가와 왕실의 위엄을 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뿐만 아니라, 그 자 체 중앙집권적 귀족국가 건설의 문화적 기념탑이라는 논의에 동의하면서, 더 나아가 지증왕․법흥왕․진흥왕대의 국가발전과 관련하여 중국문화의 수용과 그 변화 내용을 담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관련자료를 통하여 검토해 보았다. 그 증좌로 지증왕대 이후 중국과 밀접한 정치․사회적 변화가 『國史』의 편찬과 연관이 있었으며, 그 결과가 『三國史記』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추론해 보았다. 그 다음으로, 신라의 영토확장과정과 우산국에서는 기왕에 신라에서 소국을 어떻게 편제하였으며, 특히, 실직과 우산국의 편제 방식이 다른 점을 중심으로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실직은 소국으로서 신라사회와 다양한 접촉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에 반해 하슬라는 실직을 거점으로 편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에 반해 우산국은 朝貢을 통한 편제 방식이 보이고 있으므로 그러한 사례를 분석하여 이에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끝으로, 우산국 정복 관련자료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바, 지금까지 『三 國史記』관련자료만을 신뢰하여 그에 근거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나, 『三國遺事』에 보이는 기사를 중심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해보았다. 그 결과 『三國史記』에 보이는 우산국 기사는 導論的 성격이 강한 의미로 해석하여, 『三國遺事』의 우산국 정복 결과 하슬라주 군주로 임명되었을 가능성을 검토하여 새로운 의견으로 제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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