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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시대 읍치는 전국 군⋅현 지역의 행정중심지인 동시에 교통의 결절지로서 소위 전통도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근대 이전 공유되어 온 전통적 공간인식체계이자 지리로서 풍수가 투영되어 있는 대표적 장소이기도 하다. 본 고에서는 조선후기 부평도호부를 사례로 읍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지리지, 고지도 등 관련 문헌과 현장답사를 병행하여 읍치의 풍수적 공간구성을 확인 하고 현재적 입장에서 특징적인 풍수 관련 경관의 복원 의미 및 방향성을 제시해보고자 하였다. 먼저 풍수 상 읍치 국면을 군⋅현 최고 명당으로 구성하는 근간이자 출발 로서 진산, 주산에 주목하였다. 읍치 복원과 관련해 진산, 주산이 지니는 의미는 단순히 읍치를 구성하는 주변 자연환경 중 하나가 아닌 읍치의 역사적 장소성 구성이나 경관배치를 위한 일종의 지표경관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진산, 주산과 읍치 내 중심 경관인 동헌, 객사 간 형성되는 공간 관계 즉 ‘공간구성을 위한 중심축’을 설정할 수 있다. 풍수적 공간구성에서 진산, 주산으로부터 동헌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은 읍치 경관 복원과 관련해 제반 요소 간의 중요도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또한 그것의 입지나 방위를 비정하 는데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지역 생태환경에 대한 통합적 인식과 장기적인 접근의 필요성 과 관련해 풍수 비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풍수 비보는 산과 물로 대변되는 생태환경을 하나의 생명체로 전제하고 인간과 교감, 공존하는 동기간(同氣間) 관계로 접근하는 생태중심적 환경관의 전통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5,800원
        2.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수도권 인근의 전통마을을 대상으로 해당 지역을 풍수적으로 해 석하고, 풍수적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각종의 비보물의 존재형태와 기능분석 으로 전통마을의 전개⋅발전되었음을 논증하는데 있다. 연구 사례지 는 총 15 개 마을이며 문헌조사와 현장조사를 동시에 실시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 음과 같다. 첫째, 양평지역은 조산, 정자, 숲을 통한 비보가 있었는데 흉상차 폐 및 지맥연장, 수구막이 숲 등이 존재하였다. 양평지역은 한강 및 흑천 등 이 흐르고 마을은 하천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로 하천의 풍수적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한 비보 물이었다. 둘째, 용인지역은 산세가 수려한 지역이다. 비보의 형태는 주로 수구막이 숲이 대부분이었고, 지맥연장비보 및 돌(石)비보의 형태가 존재하였다. 용인지역은 중부내륙에서 볼 수 있는 산간 지역 적에서 발생할 수 있는 풍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보 물이었다. 셋째, 이천지역은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이 대부분이고, 마을은 대부분 평야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평야지역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하천을 끼고 있고 있음으로 인해, 평야지역과 하천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풍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보 물 이었다. 본 연구 대상지에서 가장 많은 비보형태는 수구막이 숲이었고, 다음으로 지맥연장, 조산비보 등이 있었다. 또한, 돌을 매개로 한 비보형태도 발견되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보 숲은 기후조절효과, 휴양효과⋅ 마을 구 성원들의 위한 화합장소로서의 효과 등이 나타나, 이들 숲을 비롯한 비보 물들이 전통마을의 지리적⋅지형적으로 전개, 발전된 것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7,800원
        3.
        2019.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필자의 풍수연구 중에서 풍수가 어느 순간 어떻게 경험되었는 가에 초점을 맞추어 편집된 것이다. 풍수는 길흉화복을 단지 선천적인 지리적인 조건에만 종속시키는 불필요한 술수에 불가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문화적 실상으로 기능하고 실재하고 있다. 풍수가 경험되는 현실에서는 ‘영험함을 기원하는(乞靈)’ 현실적 욕망과 ‘천명을 바꾸는(改天命)’ 고전적인 이상을 동시에 실현한다. 공간과 인간 이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해하는 유기체적인 사유로 인해 인간은 주어진 공간에 의해 선험적으로 조건지워지는 동시에 -비보를 통해- 주체적인 인식과 의지를 통해 공간을 변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풍수는 “믿을 수도 없고 폐할 수도 없는(不可信, 不可廢)” 담론으로 실재하며 여전히 풍수경전이 읽히고 풍수전문가가 양성되었으며 공적·사적 영역에서 생존해왔다. 그 경험의 역사를 통해 논자는 고려시대 “주술-종교적”, 조선시대 “권도”라는 타이틀을 풍수에게 부여했다. 풍수역사는 한때 시대 변혁의 논리이기도 했고 효, 자취(自取), 적덕(積德)이라는 명분으로 누구나 알아두어야 할 교양과목이기도 했다. 이렇게 풍수에 ‘신앙’이라는 부제를 붙일만한 정황들이 조선 후기부터는 풍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산송으로 폭발하면서 삶의 자리로 내재화된다. 필자는 풍수 그 자체가 사회 적 폐해로 공격받고 강화되어온 경험 그리고 기존 종교와 상호작용해왔던 역사에 집중하여 풍수신앙이라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더구나 풍수의 유산은 현재에도 유효해서 그 영향력이 어떠하든 여전히 땅이름(마을, 산)으로 남아있고 도시·생태·환경‘계획’의 단계에서 고려되고 있으며, 여전히 풍수경전은 읽히고 전승되는 학맥이 존재한다.
        7,000원
        4.
        2019.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각종의 사료와 현장을 중심으로 한 사례 분석을 통해 도선 풍수는 초기에는 중국풍수와 밀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도선풍수는 중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ㆍ발전되었음을 논증하는데 있다. 문헌상으로 한반도의 풍수유래는 빠르면 534년 늦어도 602년 정도에 전래된 것으로 밝혔으며,『고려사』, 『고려사절요』, 「숭복사비문」 등을 토대로 도선 이전에 이미 중국풍수가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도선이 창건 또는 중수한 사찰인 옥룡사와 도피안사를 사례로 분석한 결과 중국풍수이론과 부합하는 것은 용세가 생룡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 사신사가 구비되고 이상적인 모 양과 상당부분 부합한다는 점, 안산은 본신안산이라는 점, 모두 와혈에 해당 하고 좌우의 맥이 혈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는 점, 수구가 관쇄되고 합수의 조건이 충족된다는 점 등이었다. 도선풍수는 초기에는 불교의 밀교, 중국풍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중국풍수와는 차별적인 특징이 있다. 이는 중국풍수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였으나, 도선에 의해 한반도의 지리적ㆍ지형적ㆍ역사적 조건 등에 따라 중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 발전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9,000원
        5.
        2017.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한반도 통일 이후의 수도로서 개성권에 대한 타당성을 풍수적으로 논의하는데 있다. 즉 남북한 중간에 위치하면서 용수가 풍부하고 물류가 편리하면서 통일한반도의 상징성이 깊은 古都개성과 그 인근지 역에 대한 풍수적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또한 개성은 물론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에 의해 천도(遷都) 후보지로 거론되었던, 불일사(佛日寺), 마하갑 (摩河岬), 장원정(長源亭), 백마산(白馬山) 우소궁(右蘇宮), 중흥궐(重興闕)과 흥왕사(興王寺) 이궁(離宮)을 그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위의 장소들을 검토 해 본 결과, 불일사 일대는 수몰되었고, 마하갑(摩河岬)은 국면이 작은데다 그 분지에 영통사(靈通寺)가 복원되었으며, 장원정(長源亭)은 조강(祖 江)까지의 거리가 불과 8백여 미터로 국면이 작고, 백마산(白馬山) 우소궁 (右蘇宮) 역시 당국(堂局)이 협소하며, 중흥궐(重興闕)은 개성권을 벗어나 서쪽으로 치우쳤다. 고려의 성왕(聖王)으로 일컬어지던 문종(文宗)이 실제적인 도읍지로서의 기능을 부여한 만큼, 심혈을 기울여 창건한 흥왕사(興 王寺)는, 사신사(四神砂)와 조산(朝山)이 잘 갖추어져 있고 그 남쪽으로 도시가 발전할 충분한 공간이 있어 입지가 유망해 보이는 바, 실제 현장답사를 통해 통일수도 입지로서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12,900원
        6.
        2017.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풍수를 현대 도시에 응용하기 위해 경상남도 창원시를 대상으로 양기풍수적 입장에서의 해석과 아울러 풍수적 측면에서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제언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의 경남도청을 귀납적 방법으로 혈장으로 선정 한 풍수 분석결과 거시적 맥세의 흐름은 좌우변화와 상하변화를 거친 생룡이지만 개장과 천심의 조건을 불분명하다. 사신사는 풍수적으로 이상적은 모습이 아니지만 혈장 주위에 존재하고 있으며, 물의 흐름은 각지에서 발원한 물이 창원천과 남천으로 유입되며, 이 2개의 하천이 바다로 유입하기전 합류함 으로써 합수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수구처에 한문(춘산, 뒷산)과 수구막이산(부엉산)이 존재함으로써 수구가 좁아야 하며 수구막이가 있어야 한다는 풍수적 조건과 합치한다. 창원의 개발과 보존에 대한 풍수적 제언으로서는 창원은 분지 형태의 장풍 국이므로 공기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단점이 있는데 이는 하천의 정비와 녹지 시설의 확충, 대기오염원의 차단 등이 필요하다. 득수의 측면에서는 한문과 수구막이 산에 대한 보존이 필요하며, 주산에 대한 개발행위 억제, 주산인 봉림산을 중심으로 한 형국의 보완 및 회룡고조형에 대한 형국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8,400원
        7.
        2016.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현재 한국사회에 서로 대비되는 두 종류의 지리(지리학)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지리의 위상을 유지해왔던 한국의 전통 지리로서 ‘풍수’와 현재 지리 하면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지리로서 ‘Geography’ (서구의 근⋅현대 지리)가 그것인데, 이들 두 지리 간의 차이나는 지점이 무엇인지 드러내 보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먼저 근대 이전 정상적인 지리로 공유돼 왔던 풍수의 위상, 다음으로 풍수와 Geography 간의 인식론적 특징과 그러한 인식의 재현(representation) 상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인식론적 측면에서 풍수와 Geography는 생태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라는 서로 대비되는 형이상학적 믿음이자 관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할 수 있다. 가령 풍수의 대전제인 인간-환경 간의 동기간(同氣間) 관계 설정은 Geography의 인간중심적 입장과는 구분되는 풍수의 생태중심적 특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풍수와 Geography 할 것 없이 지리의 핵심적 요소인 인간, 자연 또는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거나 적어도 유사한 것으로 인식(‘유사인식’)하는 풍수적 전제와 이 둘을 성격이 다른 별개의 독립적 존재로 보고(이원론적 분할) 이들 간의 인과론적, 결정론적 관계에 관심 갖는 Geography를 구분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인식론적 바탕에서 차이를 갖는 풍수와 Geography의 재현 양식의 문제인데, 지리 영역에서의 주요한 재현 수단인 지도를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보았다. 풍수적 재현으로서 고지도에는 용맥의 흐름이나 명당 구성 등 풍수의 생태중심적 인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에 반해 정확성, 사실성, 객관성을 지도 제작과 평가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 Geography의 인간중심적 입장은 근⋅현대 지도를 마치 자연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재현물로 접근하고 있다.
        6,900원
        8.
        2010.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With the effect that the Yipsu-ryong(入首龍) of Ju-san(主山) influenced on the layout in the view of geomantic topography(形勢), how Ahn-san(案山) affected the layout plan of the Korean academics of classical learning(書院) is researched. And how the 『Jirisinbeob(地理新法)』which had been written by Ho-sun-sin(胡舜申) was applied to the Korean academics of classical learning in the view of Li and Ch'i(理氣) is studied. In Fengshui, the method to pick out a site and to confirm the direction for building construction was divided into two, one of them was 'the geomantic topography', which included 'Ju-san following type(主山順應形)', 'Ahn-san stressing type(案山重視形)' and 'Ju-san & Ahn-san complex type(主·案山混合形)'. And the other is the 'Rule of direction(向法)'. The Korean academics of classical learning was applied by the geomantic topography of Fengshui for its layout and direction, regardless of political, regional and period factors. So when the Sa-rim(士林) needed to set direction for the Korean academics of classical learning, the ground that was appropriate to the geomantic topography of Fengshui was selected. Therefore, the Sa-rim who was abused in Neo-Confucianism had a mind of stressing geomantic topography of Fengshui and they applied it positively for building construction.
        4,800원
        9.
        2010.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rough investigating the effects that result from the form and preference of Ahnsan (案山) and Jusan(主山) symbolizing ground in the cases of 21 of the Korean Academics for classical learning which called Seowon(書院) located in South Korea of the whole 47, to layout the Korean Academics for classical learning, what factor Sarim(士林) preferred to and how they analyzed the form of circumjacent mountains by Fengshui. While the Jusan has intrinsic attribute due to connecting with the place, Hyuljang(穴 場) , the Ahnsan has public and extrovert. It can be explained that the Sarim who established the Korean Academics for classical learning had their internal hope and external justification. To put it concretely, because of their necessity of concentrating on their study within nature and their situation as hermits apart from government through long time, they made the Korean Academics for classical learning stable and satisfactory. Therefore, they had to choose Moogocksung(武曲星) as a Jusan. And their study was essential method to take their justification. And It was attractive for them to be a public officer by their study. So they preferred to Moonpilbong(文筆峯) symbolizing their achievements on their study. So the layout of the Korean Academics for classical learning tells us that the Sarim sought internal stability and external scholarship.
        4,6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