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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2017.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examined the traditional edible basis and ingredients of Song-gi used for Pyeon of Jong-ga ancestral ritual food. Through an investigation of references, a case study, and ingredient analysis for traditional edible basis of Song-gi, the nutritional value and availability as food material were reviewed. Among the 4 kinds of pine trees from 4,705 types of edible materials usable as food listed in the 《Korea Food Standards Codex》, ‘Pinus radiata D. Don’, in which the husk is acknowledged as an edible food, was applied in this study. This study processed the Song-gi following the method of jongga and divided into pine inner bark (PIB) and pine inner bark powder (PIBP) to analyze the general composition and dietary fiber. The main composition of PIB was carbohydrate, in which the content was 88.7% per 100 g. The content of dietary fiber was 73.7% per 100 g and the insoluble dietary fiber reached 92.3% in total dietary fiber. In conclusion, the edibility of Song-gi, which has a considerable amount of insoluble dietary fiber caused constipation because it absorbed the moisture in the intestine due to the lack of nutrients but may be developed as a functional food that helps the digestive activation of the intestine and improve the health of the intestine if taken with balanced nutr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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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2017.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조의 불교의례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견디어야 했던 불교계의 현실과 조선의 치국이념인 유교에서 얻지 못하는 내세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형성된 불교의례는 현세 구복적이며 주술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개항 이후 불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한국불교의 모순을 타파하고 새 로운 이념을 제시한 개혁가들은 이런 의례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비 판과 함께 근대 불교의례의 방향으로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화와 대중화가 제시되었다. 이와 같은 한국불교의 자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병합한 일제 는 사법을 제정하여 한국불교 의례를 크게 변질시키면서 통제정책에 활용 하였다. 그런 분위기를 인식한 한국불교인들은 1910년대 한국불교 의례 회복을 논의하였지만 실행되기 어려웠고, 1930년대 이르러 일제강점에 의해 훼손된 불교의례를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대두되었다. 뜻있는 선지식들은 지난날 비판하고 버려두었던 불교의례 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찾으려 하였다. 그런 배경에서 1931년 발간된 불자필람과 1935년 대중들을 위해 약본으로 발 간한 석문의범이다. 그런 의식에서 형성된 전통의례의 출판은 한국 불교 인의 많은 관심과 활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는 전시 체제에 맞도록 한국 1,500여 사찰에서 대동아전쟁의 연전연승을 위한 기도법회를 열어 절대적인 친일과 동원을 강요하면서 변질 된 의례를 지속시켰다. 이렇게 변질된 한국불교 의례는 광복 후에 회복될 수 있었다. 새로운 집 행부가 설립된 후 모범총림을 시설하여 옛날부터 전해지는 한국불교 범음전 통을 회복하였고, 성철과 청담의 주도하에 설립된 봉암사 결사운동에서 비 불교적인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현대 불교의례의 방향성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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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017.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근ㆍ현대 한국불교 예송의례의 아우라에 대해 전승과 변용을 변 증법적으로 고찰한 논문이다. 이를 위해 먼저 의례서적의 편찬 방식 등을 기준으로, 대각교의식과 석문의범 등이 편찬된 20세기 초중반을 근대 로, 불교의식을 현대와 같은 방식으로 편찬하기 시작한 20세기 중후반을 현 대로 상정하고 논의를 전개하였다. 현행 조석의 7정례는 대웅전에 모신 존상과 큰 관련이 없는, 주전에서의 전통 예참의식 형태로서, 사찰의 전 대중이 참여하는 일상의례인데, 근대불 교시기에 유사한 양태로 성립되기 시작하여 점차 변형을 겪으며 현대불교시 기에 이르러 현행 양태로 변용되었다. 7정례가 한국불교사찰에 널리 보급된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의 모든 사찰에서 동일하게 설행되는 의 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찰의 새벽을 알리는 도량석이 현재와 같 이 활용된 시기와 의미 등을 단정할 수는 없으나, 야간에 행해지는 시식(施 食) 의식의 결계(結界)에 대(對)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 일지 모르지만 현재 법성게가 ‘도량석’에서 주로 염송되는데, 이는 시식의식 에 초대된 존재들이[諸法] 본래의 붓다[名爲佛]이고 그곳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의미와 역할이 묘하게 부합된다. 범종각의 사 물인 법기들은 식당에서 출가 승려들이 음식을 먹을 때 울리던 것으로, 사 찰에 재승(齋僧: 승려공양)이 들어왔을 때 야외에서 식당을 차리고 음식을 먹는 행위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유나소인 종루(鐘樓)에서 활용되게 되어 종각에 모이게 되었다. 이 같은 역사 속에 예경과 송주의 도 량석이나 종각의 사물은 본래 의미를 잃어버렸으나 각 의식과 사물은 탄생 의 연기를 환기하여 깨달음을 되새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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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2017.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초기 불교교단의‘ks.ama’는 승려 자신의 범계(犯戒)에 대한 자각, 그에 대 한 승단 내에서의 시인과 용서, 재발방지 약속 등이 요구된 행위의 기법으로, 무거운 죄의식의 심리상태가 반드시 수반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단어가 중국에서‘참마(懺摩)’라는 음사를 넘어‘참회(懺悔)’라는 한 자어로 의역되면서 죄의식을 동반한 심리적 깊이감과 행위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게 되었고, 죄의식을 표현하는 독자적인 의례로서 참법(懺法)이 독립되어 집 단적 참회의식을 넘어 국가적 의례행사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는 재이를 막고 기복을 구하며 공덕을 얻는 세속적 이익추구의 행동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이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라는 불교 고유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 었다. 이에 천태 지의(天台智懿) 이후 한자문화권의 불교사상가들은 참법을 사 참(事懺)과 이참(理懺)으로 나누어, 이참이야말로 일체공(一體空)이라는 세계 의 실상을 관할 수 있는 핵심단계로 보고, 오회(五悔) 등의 행위는 사참으로 분 류하여 별도의 수행단계로 간주하였다. 이로써 참회 또는 참법이라는 언어적 행위적 기표(記標, Signifiant)는 의식(意識)과 의식(儀式)이라는 두 가지 기의 (記意, Signifi´e)를 갖추게 되었다. 구원의 종교이자 고백의 종교이기도 한 기 독교의 참회/회개는 당초 타락한 종교문화에 대한 성찰과 그로부터의 각성· 회심이라는 심리상태를 세례라는 상징적 정화행위로 구체화한 개념이었지만, 점차 참회의식과 고백이라는 새로운 행위양식 속에서 복종과 신에 대한 관상 (觀想)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처럼 기독교 전통의 참회와 고백은 행위양식보다는 사고와 성찰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기독 교와 불교의 참회는 모두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에서 출발하며, 궁극적 실 재에 대한 증득과 체현이라는 점에서 상통하는 바 있지만, 불교의 참회/참법 개념에 각별히 의식(儀式)적 넓이와 의식(意識)적 깊이가 더해져 사참과 이참 이라는 두 방향으로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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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2017.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경전에 근거하여 업장을 참회하는‘참 법(懺法)’이 발달하였다. 중국불교에서 참법이 발달하게 된 배경은 유가나 도교의 문화와 상호 교섭하며‘예’의 중시, 귀신관념, 효도사 상, 국가 관념 등과 같은 중국의 관념이 흡수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에서는 참법이 중국불교에 어떻게 수용·전개되었는 가를 살펴보았다. 중국불교에 참법이 형성되는 초기에는 참문(懺文)이 중심이었지만 점차 불명(佛名)에 예를 표하는 참법이 등장한다. 불명을 칭명함으로 써 어려움과 환난, 병을 없애거나 갖가지 공덕을 얻고자 한 것이다. 『자비도량참법』을 필두로 신행선사의『칠계예참』, 천태지의(天台智) 의『법화삼매참의』·『청관세음참법』·『방등참법』·『금광명참법』이 등장하며 참법의 전성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종밀의『원각경 도량수증의』를 비롯하여『화엄보현행원수증의』·『자비삼매수참(慈悲 三昧水懺)』·『천수안대비심주행법』·『예념미타도량참법』등 각 종파 는 자종의 종지에 걸맞은 참법을 생성하여 실천하였다. 중국불교 주요 참법에 등장하는 참회·권청·수희·회향·발원의 오회(五悔)가 성립 된 것은 지의(智)의『마하지관』과『법화삼매참의』에 이르러서이고, 그 행법은 첫 번째 행자가 도량을 깨끗이 하는 법을 비롯해 열 번째 좌 선으로 실상을 바르게 관하는 방법의 10법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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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2016.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삼국 통일 후 신라에서 설치한 국가 祭場 중 삼척에 설치된 것은 북쪽 태백산에서 中祀를 지내기 위해 설치한 祭場, 四海 중 悉直郡 영역 내에 위치한 非禮山 에 설치된 北海 祭場이 있었다. 수도를 제외한 지방에 중사를 지낸 제장이 2곳 있었다는 것은 당시 이 지역이 신라 입장에서 정치ㆍ군사ㆍ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태백산에 中祀를 설치한 이유는 신라 입장에서 본다면 태백산에서 발원한 물이 낙동강 발원지가 되어 경상남북도 지역의 농경지를 형성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물을 끊임없이 제공하기에 그 덕이 매우 커서 설치하였다고 볼 수 있다. 四海 祭場의 위치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제사지에 北海 비례산은 오늘날 삼척 시인 실직군에 소재한다고 소개하였다. 현재 신라시대 북해의 제장인 비례산은 삼척의 어디인지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더구나 동해, 서해, 남해의 제장은 海邊인데 반해, 북해 비례산만 산인 까닭에 더욱 혼란스럽다. 그리하여 북해 비례산의 위치 를 추정하는 다양한 논의가 있었는데, 일단 다른 해안지역의 제장과는 달리 山이 라는 점과 삼척에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덧붙여 제사를 지낸 산이라면 신령이 좌정할 만한 공간적 특징을 지니면서, 용왕제를 지낼 수 있는 여건 또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삼척 비례산에서 행한 제사는 용왕을 위하여 바다에서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비례산 이 어디인가를 추정함에 있어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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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2016.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nalyzed trends and contents of ancestral ritual foods of Korean traditional Jong-ga as a domestic thesis. In searching the keywords related to ancestral ritual foods using a thesis search site, a total of 15 theses in seven journals were selected for analysis. Three theses from 1996 to 1999, six theses from 2005 to 2008, and another six theses from 2012 to 2016 were announced. In measuring frequency by dividing case families analyzed in the thesis into region, there were 83 families, including seven families from Gyeonggi (8.4%), seven families from Chungcheong (8.4%), two families from Honam (2.4%), and 67 families from Yeongnam (80.8%). Fifty-four families out of 67 families from Yeongnam were located in Andong-si, occupying 65.1% of the 83 families. The family showing the highest frequency was ‘Seoae Jong-ga’ (12 times). The family clan with the highest frequency was eight families of the ‘Jinseong Lee clan’ In the future, it would be necessary to understand the research flow through analysis of research trends in ancestral ritual foods of Jong-ga as well as interdisciplinary research and methodological diversification of studies on ancestral ritual foods of Jon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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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2016.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이츠는 『오이디푸스 콜로누스』(Oedipus at Colonus)에서 아일랜드인들 에게 민족 공동체의식과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는 아일랜드인들의 식민주 의적 삶을 오이디푸스의 디아스포라적 삶에 투영시켜서 아일랜드인들에게 민족 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려고 노력했다. 오이디푸스의 고통스런 삶은 아일랜드인 들의 삶을 반영한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었지만, 자신의 과거의 불선업때 문에 아테네의 콜로누스로 추방당한다. 그는 아테네에서 디아스포라적 삶을 통 해서 자신의 과거의 불선업을 정화시켜서 결국 반신반인의 반열에 이르렀다. 그 의 디아스포라는 스스로 과거의 업을 정화시키는 순례길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다양한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디아스포라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 한 전형적인 원형을 제시했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정말로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를 반추해 보도록 만들고, 궁극적 실재를 완성하기 위하여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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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2016.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에서는 오분향게 칠정례 천수경의 한글 율조를 한문 율조와 비교하여 앞으로 진행될 한글의례를 위한 발전적 방향을 찾아보았다. 한문과 한글 율 조의 전반적 양상을 보면, 한문은 대개 두 자 단위 패턴인 데 비하여, 한글 은 3자 패턴이 많았다. 이는 의례문 낭송에도 영향을 미쳐 말붙임의 강세와 목탁의 타법에 주의가 필요했다. 그 중에 오분향게와 칠정례는 느린 율조이 므로 어절에 맞는 장음 처리와 된소리의 자음을 유연하게 발성해야 하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비해 천수경 율조는 다소 차이가 컸다. 한문천수경은 4박자의 주된 패턴 사이로 진언과 게송의 제목들이 자유리듬으로 섞여 있어 일관성과 변 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반면 한글 천수경은 대개 7박자 패턴을 이루고 있어 리듬절주의 경쾌함이나 신명이 다소 부족하였다. 한글 천수경 에서 진일보한 면은 다라니의 범어 발음과 띄어 읽기이다. 이러한 시도는 변 화와 개선의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글의례문의 전반적인 면모를 보면, 기존의 한문 율조와 발성을 따른 것 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영어와 번안 가사 등 다방면의 성악곡에서 보았듯 이 언어가 다르면 율조와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므로 앞으로 진행 될 한글 율조의 확산과 실행을 위해서는 우리말 음보와 리듬에 대한 혁신적 인 변화가 필요하다. 21세기 대중문화의 시대를 생각해볼 때, 기존의 한문을 잘 번역하여 한글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소월의 시와 같은 순 우리말 의 례문 창제를 과감하게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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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2016.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시대 신앙활동에 있어서 불교의식의 비중은 매우 증가하여, 건축, 불 상, 공예 등 불교미술 전반에서 의식문화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본 고에서는 불교의례의 성행이 가져온 변화를 불교회화의 측면에서 살펴보았 다. 불화와 의례공간의 관련성은 주불전 내부의 의식과 야외 의식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다. 예배 공간으로 인식되던 주불전(主佛殿)은 다양한 법회(法會)와 의례가 개 최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전각 내부에는 의식 수요에 부응하는 불화가 봉 안되었다. 불보살을 도량[道場]에 청해 공양을 권하는 권공(勸供)과 육도의 중 생을 청하여 음식을 베푸는 시식(施食) 의례는 특정 의식에 한정되지 않고 불 교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수륙재의 성행은 특히 삼단의례(三壇儀禮)라 는 형식을 통해 저변화되었다. 그 결과 주불전 안에 상단(上壇), 중단(中壇), 하단(下壇)의 삼단이 갖추어지고, 각 단을 상징하는 불화가 하나의 기본 조합 을 이루게 된다. 한편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인 괘불(掛佛)이 전국적으로 조성되는 현상은 전각 외부로까지 확장된 의식에서 불화의 쓰임과 기능 확대를 보여준다. 불 화는 의식단의 가설에 따른 수요로 혹은 전각 내부에서 외부로 의식단이 옮 겨짐으로써 이동하였다. 불화를 거는 절차의 핵심은 의식이 진행되는 곳으로 불보살의 강림(降臨)을 청하는 것이다. 불보살의 강림은 도량에 초청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거불(擧佛) 절차를 통해 상징되었다. 또한 거불 의 대상이 의식용 불화의 주제로 그려짐으로써 구체적으로 시각화되었다. 의 식을 위해 불화를 꺼내 이동하고, 의식을 마치면 다시 원래의 자리에 가져다 두는 일련의 절차는 불보살의 현존을‘도량으로의 강림’이라는 극적인 방식 으로 전달하였다. 이들의 강림을 찬탄하고 도량에 내려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절차는 의식의 신이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조선시대 불교회화는 전각에 봉안되어 불상의 뒤편에 놓여 불전이 상징하 는 불세계를 상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식의 성행이라는 신앙의 흐름에서 역동적으로 기능하였다. 전각 외부로 확장되는 의식과 의식을 전담하는 불 화로의 이행을 대표하는 것이 괘불이라면, 감로도(甘露圖)는 의식에 사용되 던 불화가 전각 내부의 불화로 고정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의식의 성행으로 의식 전용 불화가 생겨나는 동시에 특정한 의식에 사용되던 불화가 상설 불 화로 봉안되었다. 조선시대 불교회화는 의식 수요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그 주제와 구성에서 다양한 변용을 보이며 전개되었다. 불화가 봉안된 공간과 그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의식 문화를 통해 조선시대 불화의 다각적인 기능 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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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2016.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의 목적은 의례의 변화에 따른 불교건축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17세기 이후 불교의례는 대부분 실내화로 변하게 된다. 그 결과 평 면 내 불단 위치 변화, 기둥 구조법의 변화, 바닥 재료의 변화, 창호의 개방 성 증가와 천장 구성방식의 변화를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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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2016.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research intended to conduct literary research on ‘Jeok’ of 25 jong-ga through Jong-ga Ancestral Ritual Formalities and Food, published by the Cultural Heritag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during 2003~2008, and compared and analyzed an arranging method and recipe transmission process by directly visiting four Jong-ga. Religious ceremony foods of Jong-ga could be divided according to the standard of the hakpa attribute (large), regional attribute (midium), and family attribute (small), which forms a complex connection structure between the attributes. ‘Jeok’ arranging form is divided into ‘3-Jeok building method (vertical structure)’, ‘3-Jeok arrangement method (horizontal structure)’, ‘3- Jeok replacement method’, ‘2-Jeok arrangement method’, ‘Jeon-Jeok arrangement method’, and ‘Others-Jeok arrangement method’. Generally, ‘jeok’ arrangement order per hakpa is in the order of ‘meat jeok - chicken jeok - fish jeok’ in case of Gihohakpa, whereas Yeongnamhakpa is in the order of ‘fish jeok - meat jeok - chicken jeok’. Umoringye (羽毛 鱗介), the method of laying ‘dojeok’ of the Gyeongbuk region, could be found in the 2nd century B.C. Chinese ancient book Hoenamja and the theoretical background was Yin and yang philosophy (陰陽論). This research has significance in terms of securing advanced results compared to advanced research that has so far concentrated on some regions and hak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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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With regard to Gung-jung Yeon-hyang(宮中宴享; court banquet), the frequency of banquets that were held at one time beginning Mu-ja J in-jak(戊子進爵; a royal banquet held in 1828) in 1828 (the 28th year of King Sunjo (純祖)'s reign). In proportion to this frequency, there was an increase in the need and importance of Suk-seol-so(熟設所; a kitchen built in temporarily house for court banquet) and Jung-bae-seol-cheong(中排設廳; a temporary place to put offerings) as a space to assist court banquets. Although Suk-seol-so was a temporary but large-scale facility, it was frequently used for long periods. This facility was flexibly established using the variability of Dong-gung(東宮; Palace for Crown Prince) and enhanced the efficiency of censorship and security in conjunction with palace gates and Suk-wi-cheo(宿衛處; guard station, guard room). In addition, it was reused according to the period when the nation and royal family gave finances or banquets. Jung-bae-seol-cheong was established in the place connected to the central space of court banquets and worked as buffer space to resolve the tension on the day of the event. The location where Jung-bae-seol-cheong was established enabled us to confirm the applicability of Bok-do(複道; corridor) connected to Chimjeon(寢殿; royal residence) when holding court banquets. In short, Suk-seol-so and Jung-bae-seol-cheong were auxiliary spaces, but were considered importantly in the palace operation when holding court banqu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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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현대 한국에서 주요한 문단 등단 방법 중의 하나는 신춘문예이다. 신춘문예 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들 가운데 한 편을 뽑고 심사평을 발표하는데 심사평 은 ‘올해 투고시의 경향’이나 ‘시에 대한 단상’ 그리고 ‘낙선이유’와 ‘당선이유’ 등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본고의 연구대상 시기인 2000년 이후 약 60여명의 심사자, 약 100명가량의 당선자, 수천 명의 낙선자가 있었다. 시간차 가 있음에도 당선된 시와 심사평에서 발견되는 낙선자나 심사자 그리고 당선자 의 특징은 이들을 단수로 지칭해도 될 만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매해 수 천 명의 시인들이 투고하고 있으므로 신춘문예는 지극히 당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2000년 이후의 신춘문예 심사평과 당 선작을 통해 신춘문예의 종교현상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당선자 낙선자 심사자 는 문학청년들의 강렬한 문학 숭배현상,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서의 ‘통과의례’ 라는 의례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아가 당선된 시들에게서는 ‘신화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신화화의 과정이란 ‘무서운 아버지,’ ‘소외된 아들들,’ ‘아버지의 쇠퇴,’ ‘아버지 죽이기,’ ‘죄의식과 아버지의 토템화,’ ‘주기 적인 의례로 기억하기,’ ‘또 다른 아버지가 되기’의 신화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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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2015.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Sajik, the altar of land and grain was treat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national ritual facilities by the Joseon dynasty and the Ming dynasty because it symbolized the legitimacy of a dynasty, and its architectural ordonnance was arranged strictly by the government. But when the Joseon government considered to reconstruct its national Sajik altar in Hanyang during the Sejong period, they found the new architectural ordonnance for local Sajik altars recorded in 『Hongwulizhi(洪武禮制)』had been published by the Ming government was hard to adopt, because it was too narrow and totally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 style. Above all things, they doubt of there was other architectural ordonnance for kingdoms, not for local governments. King Sejong ordered to investigate the origin form and former examples, and tried to get other ritual documents of authority published by the Ming government such as 『Damingjili(大明集禮)』. After several academic researches and intense debates, they decided to create a new architectural ordonnance for their national Sajik altar, its form was in accord with the traditional style and its size was in accord with the new ordonnance. But they did not know there had already been the architectural ordonnance for the kingdom in the Ming dynasty. Because the first emperor of the Ming dynasty had changed its Sajik ritual system several times, even the whole country of the Ming dynasty also had gone through chaos on this issue even after his death. Consequentially, the official documentation works had been made partially, there was no a complete document on this issue even in the Ming government.
        4,300원
        37.
        2015.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researched a document regarding ‘Pyeon (tteok)’ on 25 Jong-ga ancestral ritual foods through 「Jong-ga Ancestral ritual formalities and food」, published during 2003~2008 by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of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 after about 10 years, the transmission process of the setting and recipe was compared and analyzed in 2015 by directly visiting 4 Jong-ga. This research classified regions into 7 Gyeonggi, 4 Chungcheong, 2 Honam, and 12 Yeongnam, and classified hakpa, Gyeonggi, Chungcheong, Honam region into 13 Gihohakpa, Yeongnam region into 12 Yeongnamhakpa. The important analysis standard of Jong-ga ancestral ritual food was the region and hakpa, which appeared to considerably influence ‘Pyeon’ setting style, which represents and symbolizes family and recipe. Gihohakpa Jong-ga, which is an academic tradition that pursues practical interests, seems to highly regard practicality to adapt to changes along with the period. On the contrary, Yeongnamhakpa Jong-ga, which highly regards self-sufficiency living base and moral justification, seems to be highly conservative. Increase in Jong-ga, which utilizes mill, is the result of adaptation to the period environment such as Jongbu aging and lack of labor,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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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201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research aimed to provide accurate and basic data comparing different perceptions of head family’s food and food for religious ceremonies depending on age with the goal of sustaining traditional Korean food in the future. The gender distribution of the participants was 274 Males (42.5%) and 370 Females (57.5%). Age distribution was 211 participants (32.7%) in their 20s, 215 participants (33.3%) in their 30 to 40s, and 220 participants (34%) in their 50 to 60s. The older generation appeared to beaware of the definition of head family or 'The eldest’s house of head family’ as well as the concept of one’s family five generations ago with more reductive and emphasis than imaginary concept of head family of the younger generation. The image of the head family was perceived as ‘head family’s food’ in younger generations and as ‘eldest son’ in older generations. Family role and meaning most often manifested as ‘succession of tradition’ and ‘cultural symbols’ in younger generations, respectively, whereas older generations responded ‘hallmark of the head family’. Family ancestral rites and head family’s food had positive effects on awareness of head family’s food. Moreover, those with experience in practicing family ancestral rites responded that head family’s food should be more popular. People who viewed family’s food more positively were more open with the idea thathead family’s food could go mainstream. In conclusion, positive perception of head family’s food and traditional pride are crucial environmental factors in public support of popularizing head family's food to the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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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2014.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미국의 움직임 교육자이자 아방가르드 예술가인 안나 할프린에 의해 만들어진 무브 먼트 리츄얼이라는 동작 교육법이 어떻게 심신통합적 관점을 구현하는가를 개괄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움직임 교육을 통해 마음과 몸을 긴밀히 연결시키는 교육 분야인 소매틱 교육의 역사를 조망했다. 그리고 이들 교육법의 핵심 철학과 관점이 무브먼트 리추얼 디자인과 교육법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알아보았다. 무브먼트 리추얼은 움직임을 통해 인간의 신체, 감정, 심리, 이미지, 상상력, 창조성 등의 모든 경험을 수용하려는 교육적 노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를 위해 심신통합적 교육과 치유법들이 지향했던 인간의 전인적 경험을 촉진하는 교사의 현장 전략을 자세하게 살펴 심신통합 이론들과의 관련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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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201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Ohju Yeonmun Jangjeon Sango』 written by Lee, Gyu-gyeng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encyclopedias in the period of Chosun-Dynasty. There are two chapters related to architecture in this book, one is 「ancestral rite·governance·human」chapter, and the other is 「architecture·human」chapter. Both of them are hard to understand because they are written in ancient Chinese and consist of various quotations in ambiguous way. This paper as a partial study is deal with the former. It makes difference between writter's original texts and quotations through textual research, and translates to modern Korean, and analyze information about ancient architecture in texts. The texts can divide to three sections. The first introduces three Chinese architectural theory books as 『Gogonggi(考工記)』, 『Yeongjo Beopsik(營造法式)』 and 『Mokgyeng(木經)』, and mentions about the prototype of the royal ancestral ritual building in 『Gogonggi Toju(考工記圖注)』. The second quotes 『Seoyeong(書影)』 to introduce 『Yeongjo Beopsik』. The third quotes 『PaePyeon(稗編)』 to introduce 『Yeongjo Beopsik』 and 『Mokgyeng』, and mentions about the counting unit of columns of the royal ancestral ritual building. Although the purpose for these quotations is not directly mentioned, but we can find it is intended to explain the architectural prototype and lay-out of the royal ancestral ritual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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