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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presents a commentary on the methodological tension between hoards, museums and burial sites, associated with pastoral nomadic communities along the vast Eurasian steppe. Nomadic art and material culture have continuously lived at the fringes of art-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inquiries, and their systematic theoretical exploration has been further deterred by the current “top-down” approach in analyses of the steppe archaeological record. Firstly, I problematize the discrepancy between museum acquisitions of (what is labelled as) nomadic art acquired from the antiquities market and what is subsequently categorized as a “hoard” or “treasure”. I observe that certain unrelated sets of objects only became hoards after they reached museums and private collections, and so long as their stylistic characteristics fit a pre-established notion of what steppe nomads could and could not have produced. Secondly, the following discourse prompts an investigation into the vital distinction between authenticated ritual contexts (e.g., burials) and wealth deposits in non-sedentary Central Eurasian societies, which are particularly vulnerable to ambiguous or misapplied labels. The study thus brings up previously-overlooked discrepancies, whose recognition and further study could bolster not only research practices but also teaching approaches to Central Eurasi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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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중국 내몽고 화림격이 벽화고분의 벽화 주제와 구성 방식에 관한 것이다. 화림격이 벽화고분은 1971년에 내몽고 화림격이현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동한대 벽화고분 중 하나로 풍부한 벽화와 방제가 발견된다. 화림격이 벽화고분의 벽화 주제로는 크게 현실 세계와 천상 세계로 나눌 수 있다. 현실 세계를 표현한 주제로는 묘주도, 거마행렬도, 역사고사인물도, 건축도, 악무백희도, 속리도, 푸주 및 농경 등이 있고 천상 세계를 표현한 주제로는 상서도, 사신도, 운문 등이 있다. 묘주의 생활과 관련한 벽화는 전실과 중실, 후실에 모두 주요하게 등장한다. 본 연구는 벽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묘장 구조에 따른 벽화 위치를 살펴보아 벽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보고자 한다. 전실에는 묘주의 정치적 지위를 나타내며, 중실에는 묘주가 한가롭게 지내는 모습과 역사고사 인물도, 거마행렬도 등이 그려져 있다. 후실에는 묘 주의 사적인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머지 세 개의 측실에는 묘주를 위해 생산 활동하고 있는 시자들의 모습이 주로 묘사되어 있고, 목조의 기둥과 두공, 운문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화림격이 벽화고분에는 묘주의 일평생이 담겨 있으며, 정치적 신분과 경제적 부 등을 벽화를 통해 과시하고 있다. 고분 구조에 따라 벽화의 배치를 살펴보면, 전실의 벽화는 중축선을 기준으로 좌우대칭적이다. 중실은 좌에서 우로 향하는 대각선을 기준으로 서벽과 북벽에는 역사고사인물도가 주요하게 그려져 있고, 거마행렬도는 남벽과 동벽에 그려져 있다. 후실의 벽화는 여러 주제가 등장하는 전실과 중실과 다르게 묘실 전체에 묘주의 사적 생활 모습이라는 공통된 주제의 벽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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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섬서성 동관세촌벽화묘는 남북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당대로 이어질 특징을 예시하는 수대벽화묘이다. 세촌묘는 장사파묘도전실묘로서 묘실과 묘도에 벽화가 그려졌으며 묘실 내에서 화려한 선각이 새겨진 석곽이 발견되었다. 묘도를 제외하고 묘실 내의 벽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묘도의 의장행렬도 벽화는 북제에서 시작한 묘도의 화려한 의장행렬도의 전통을 이으면서 이후에 당대 묘장 벽화의 중요 주제가 되는 의장행렬도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묘실 내에서 발견된 선각 석관은 형태가 북위의 석관의 형태를 계승한 동시에, 북위 낙양지역 석관의 주제인 승선도상을 석관의 좌우면에 묘사하여 수대 묘장미술의 복고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세촌묘 석관의 덮개의 서수도상은 위진남북조시기에 발달한 도교와 불 교의 상서도상을 중앙아시아계의 사방연속귀갑연주문과 결합하였다. 석관의 앞면과 뒷면에 새겨진 현무와 주작 도상은 북위시기의 석관의 도상을 계승하면서도 북제·북주시기에 새롭게 출현한 불교 또는 중앙아시아계 인물 도상을 추가하였고, 통일을 이룬 자부심을 반영하듯 더욱 더 세련되고 자신감 넘치는 필선으로 제작하였다. 동관세촌수묘는 묘의 구조와 벽화와 선각 장식에 있어서 북위부터 북주·북제까지 북조 묘장의 특징을 모두 흡수하였으면서 수대에 이르러 대통합을 이룬 문화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수대 묘장미술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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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수대는 혼란스러운 남북조시기를 거쳐 전국 통일이라는 대업 하에 ‘수나라’만의 정체성을 지닌 도자문화의 탄생을 알리는 개시점이자, 이후 찬란했던 당대 도자를 위한 변혁의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도자사에서는 수대 도자의 이런 특징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육조와 당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정도로 여기거나 혹은 당과 묶어 포괄 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수대 도자에 보이는 서역적 요소에 주목하여 육조시대 및 당대와 달리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았 다. 수대 도자에는 前朝에 이은 국제적 요소들이 확인되는데, 불교적 모티브와 胡甁·扁壺·角 杯 등의 이국적 기형, 외국인을 묘사한 陶俑 등이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그 배경에는 세력의 확장 등을 목적으로 전대에 이어 서역과의 내왕이 더욱더 빈번해진 것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양질의 고급 백자 생산은 수 왕조의 활발한 서역경영 배경 하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즉 초기 북방의 형요백자에 산화칼륨을 첨가한 방식은 산화칼륨을 조용제로 사용하는 수대의 유리 제조기술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기술은 중국 본토 자생이 아니라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술의 영향과 함께 주목되는 점은 동지중해와 중앙아시아 미술의 전래와 융합을 통해 생성된 ‘신양식의 창출’이라는 점이다. 혼란했던 남북조 시기에도 서역과의 교류는 끊이지 않았기에 서역식 양식들은 중국 내지로 그대로 수용되어 왔다. 동로마 제국의 유리와 금은기, 소그드 미술에 보이는 입체적 장식 요소들은 도자로 번안되는 과정 중 그대로 답습되어 첩화방식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남북조 자기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수대에 들어서면, 점차‘응용’과 ‘변용’을 거쳐 인화 혹은 음각 등으로 대체되는 등 토착화가 진행된다. 또 그리스 신화의 요소 및 의미가 접목되면서 새로운 양식들로 재창조된 경향을 보인다. 이는 서역적 요소들을 직접 모방하거나 구현하려는 성향이 강했던 이전 시대와 다른 특징으로, 수대 도자에 보이는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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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후한대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위진남북조시대에 들어 승려와 사원이 크게 증가하였다. 사원과 승려의 증가는 체계적 관리를 위한 교단과 이를 관리할 계율 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道安(312~385)을 비롯한 竺僧郞, 慧遠 등은 승단의 지도자로서 계율 제정에 노력하였다. 도안이 계율로 정한 行香定座上經上講法은 이후 佛法처럼 중국에서 정착하였고, 『法苑珠林』에는 泰始 3년인 467년 보살계를 받은 費崇先이 매번 청경을 할 때는 늘 작미향로를 무릎 앞에 두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진남북조시대와 漢代 향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불교의례용 향로의 유무이다. 이 시기 불교의례용 병향로의 등장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계율로서의 행향과 관련이 깊지만, 및 불교경전의 한역도 병향로의 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역 경전의 ‘手執香爐’, ‘手擎香 爐’는 당시의 향로를 고려했을 때 병향로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계율이자 의례인 行香은 동진대의 고승 道安이 제정하였지만, 행향에 사용하는 병향로는 서역에서 전래된 병향로를 바탕으로 중국적 기형인 鵲尾形柄香爐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 다. 위진남북조시대에 등장한 병향로는 5세기 중반에는 鵲尾香爐로 불렀다. 현재와 같은 병향로를 사용한 것은 唐代로 燉煌 출토 P.3433호 문서와 S.1774호 문서 등을 통해 8세기 후반 이후 ‘長柄香爐’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 병향로는 작미형병향로로 대표되며, 이 향로는 화형받침과 몸체, 반구형 금구, 까치꼬리 모양 손잡이로 구성된다. 작미형병향로는 중국 남조에서 시작되어 북조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조에서는 5세기 중후반, 북조에서는 5세기 후반경부터 작미 형병향로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양식적으로 반구형 금구의 크기와 손잡이의 모습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 불교의례용 거향로는 새로운 기형의 등장 없이 전대의 박산향로를 불교적으로 수용하였는데, 석각화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위진남북조시대 불교의례용 거향로로 사용한 박산향로는 사용 공간과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北魏에서 隋代 로 가면서 점차 장식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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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융의 분석심리 관점에서 김환기 예술작품에 나타난 한국인 미적 원형과 치유적 의미를 연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연구의 범위는 융의 관점에서 예술이 가지는 속성을 알아보고 김환기의 대표 작품을 통해 집단무의식의 원형이 어떻게 표현되는지와 그의 작품이 주목을 받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김환기작품이 주는 치유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김환기작품을 통해 나타난 한국인의 미적 원형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거친 질감(texture)에서 나타나는 정서적 교류와 관계를 중시하는 정(情)의 문화. 둘째, 무기교와 자연스러움에 대한 가치의 존중. 셋째, 가치지향성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을 바탕으로 김환기 작품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미술감상의 치유적 의미를 논의하였다. 미적 체험은 개인의 주관적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뿐 만 아니라 집단의 정서적 원형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작품에 나타난 원형적 상징을 경험하는 것은 인간정신의 보편성, 집단의 공동가치를 공유하며 치유적 힘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한 김환기의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내재한 원형적 심상을 찾을 수 있고 예술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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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동서교역에 종사하며 문화전달자 역할을 하였던 소그드인들은 조로아스터교를 주종교로 삼았다. 소그드인들이 숭배했던 나나는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여신이 아니었지만 후대에 소그드인들의 만신전에 포함되어 널리 숭배되었다. 나나여신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탄생한 여신으로 긴 역사동안 풍요와 다산, 미의 여신이자 도시의 수호여신, 왕권의 수여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나나여신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널리 신앙되었던 인안나-이슈타르와 동일신 혹은 그 후신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본 논고에서는 별개로 발생한 여신으로 보았다. 나나의 가족관계가 인안나-이슈타르와 다른 점, 중기 바빌로니아시대 쿠두루에서 금성의 신 이슈타르와 별도의 신격으로 표현된 점, 그리고 나나의 찬가가 별도로 존재한 점 등이 그 이유이다. 소그드의 여신 나나로서 도상이 정립되기 시작한 시기는 쿠샨왕조시기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중앙아시아에 이식되면서 나나는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시벨레, 레아 등의 여신들과 동일시되며 그들의 모습을 차용하여 변모하였다. 쿠샨왕조 시기의 나나도상에는 초생달관을 머리에 쓴 아르테미스형의 나나, 사자 위에 앉은 나나 등이 존재한다. 이후 소그드인이 숭배했던 나나는 쿠샨왕조의 나나와 달리 네 팔이 있으며 성벽관을 쓰고 갑옷을 갖춰 입은 채 사자에 앉은 형상으로 변화한다. 나나는 소그드인의 도시국가인 소무구성 내에서 왕국의 수호신 혹은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 같다. 특히 초라스미아나 펜지켄트 등에서 중요한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펜지켄트에서 나나는 심판장면, 지옥장면 등과 함께 표현되어 있어 조로아스터교의 신들의 판테온에 유입되면서 내세와 관련된 정체성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네팔을 가진 나나의 형상은 6세기 이후 소그드인들이 인도의 힌두문화를 적극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개념화되고 추상화된 조로아스터교의 신들은 신상으로 제작되지 않았었는데 소그드인들은 인도의 힌두신 도상을 차용하여 새로운 신들의 모습을 창출하였다. 소그드인들은 동서교역의 주역으로 개방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성향은 그들의 문화 속에도 반영되어 타 지역의 문화적 자극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들의 전통과 결합시켜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었다. 나나는 이러한 소그드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경향을 보여주는 특별한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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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2021.02 KCI 등재후보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6세기 중후반~7세기 초 수대까지 중국 경내에서 활동한 소그드인의 종교 및 문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무덤 내 출토품과 관련 문헌 자료에 대한 정리를 통해 그들의 중국 내 거주 및 문화 양상을 대략적으로 고찰하고, 이에 대한 연구 경향을 분석한 후,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시론적으로 탐색하였다. 먼저, 6세기 중반~7세기 초 중국에서 활동한 소그드인의 묘지(墓誌)와 무덤 출토 석장구(石葬具)의 기본적 현황을 고찰하였다. 이를 토대로 소그드 상대(商隊) 수령인 ‘살보(薩保)’를 중심으로 중국 내 소그드인의 정착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무덤 내 출토품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종교와 문화의 두 측면으로부터 분석했다. 그들의 종교와 문화는 조로 아스터교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불교적‧마니교적 요소는 물론 중국적 요소까지도 포함하는 매우 혼종적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그드인들의 석장구가 6세기 후반∼7세기 초의 화북지역에만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시공간적 특색에 주목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해서 짚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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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민간회화로서 민화의 가치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동안 민화에 관한 연구는 무명(無名)의 작가에 의해 제작된 ‘생활화’라는 이유로 미술사 안에서 연구가 부진했었다. 이러한 연유로 연구자마다 민화의 개념과 특성을 조금씩 다르게 설정하기도 한다. 이 같은 여건에서 본 논문에서는 민화의 주요한 특성을 민간회화로서 민화만이 갖는 가치가 있다고 보고 이를 주제로 설정한 후, 통속세계의 보편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민화가 유행할 시기에 중국에서는 민간 연화가 성행하였으며, 다른 동아시아에서도 민간회화가 부흥한 측면이 있다. 여기서는 우리 민화와 가장 연관성이 짙은 중국의 민간연화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민화가 지닌 민간회화로서의 미적 특수성을 찾고자 한다. 민간연화는 우리의 문배(門排)에 해당하는 문신(門神)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림의 도상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여러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생산자와 향유자가 같은 층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민간의 사상이나 감성이 집약되어 있는 예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문화를 독점했던 계층이 다 수의 대중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며, 통속적인 그림의 예술성을 인 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민화가 최초의 대중예술로 서 가치가 있으며, 이것은 민화의 본질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6,100원
        150.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크리스타 좀머러(Christa Sommerer, 1964-)와 로랑 미뇨노(Laurent Mignonneau,1967-)의 공동 작품인 인공생명 이론을 접목한 인터랙티브 예술 작품을 분석한다. 좀머러와 미뇨노가 미술계에 주목 받게 된 계기는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식물 성장Interactive Plan Growing>(1992)를 발표 하면서부터이다. 이 계기로 좀머러와 미뇨노는 인공생명 개념을 예술분야에 적용하기 위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후 인터랙티브 아트의 예술적 가능성을 한 차원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동시에 스스로 자생하는 인공생명을 작품으로 보여주며 뉴미디어 아트의 한 지평을 넓혔다. 본 글에서는 우선 작품 제작에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공생명의 정의와 함께 인공생명 개념이 예술과 접목될 수 있던 계기를 살펴본다. 다음으로 좀머러와 미뇨노가 인공생명 예술 개념에 관심 갖게 된 계기와 더불어 이들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상호작용성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인공생명이라는 존재가 인터랙티브 아트로서 갖는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성을 알아본다.
        5,700원
        151.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80년대는 문화정치의 시대였다. 군사정부는 문화정책을 통해, 민간에서는 문화운동을 통해 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치열하게 대립했다. 문화는 정신을 지배하는 근간이 된다. 제5공화국 군사정부와 민중문화운동 모두 전통민족문화를 통한 역사의 주체성 확립과 민족적 자긍심을 정립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가졌다. 그러 나 군사정권이 충효사상을 근본으로 둔 사대부 전통문화를 통해 국가주의를 확립하고자 했다면, 민중문화운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규정하며 민중중심주의를 실현 하고자 했다. 이렇듯 양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방향이 서로 달랐다. 1980년대는 민중문화운동의 시대였다. 일반적으로 민중문화는 문화 안에 속하는 소범위이지만 1980년대는 군사정권이라는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민중문화운동이 문화운동보다 우위에 있는 특수한 구조가 형성되었다. 민중문화운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고 궁극적으로 군사정권의 타도를 목표로 한 문화투쟁, 문화정치였다. 민중문화운동은 사회학, 미학, 철학, 종교 등의 인문학이 중심이 되어 이념을 계발했고, 시위나 집회에서의 현장실천에 있어서는 예술분야가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가 중심이 되었고, 실천적 방안에는 전통연행예술 이 대표성을 가졌다. 또한 민중미술, 포스터, 판화 등의 시각예술분야의 활동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민주화 열망이 전 국민적 지지를 받고 시위가 대규모로 펼쳐지면서 예술분야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따라서 민중문화운동 용어도 민중문 화예술운동, 민중문예운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민중문화운동의 확산에 있어 대학생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민중문화운동에 참여한 반체제 지식인들은 친북적 성향으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학생들의 활동은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받아들여져 국민적 공감을 샀다. 반체제적인 운동은 대학가의 문화로 자리 잡아 사회주의 이념을 공부하는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특히 연극반, 탈춤반, 농악반 등 전통연행예술 동아리는 이 같은 대학문화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특히 매년 대학축제로 열리는 대동제는 군사정부에 대한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다. 대학대동제는 역사 속에서 민중혁명으로 무참히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현실에서의 민주화 실현에 대한 결연한 의지, 현실 치유의 희망을 증폭시켰다. 민중의 희생을 환기하는 목적은 민중중심의 세상을 건설 해야한다는 당위성과 필연성을 공고하게하기 위함이다. 민중문화운동은 문화예술이 경제와 정치 분야의 투쟁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사회의 이념적 방향을 바꾸게 하는 정신적 가치라는 것을 증명했다. 결국 군사정권은 종식되었다.
        6,400원
        152.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미국 뉴욕 미드타운 5번가의 록펠러 센터(Rockefeller Center)는 존 D. 록펠러 2세(John D. Rockefeller Jr, 1874-1960)의 사유 재산으로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이루어진 대규모 재개발 도시 프로젝트이다. 총 13채의 건축물과 도로와 광장, 정원, 예술작품으로 이루어진 록펠러 센터는 뉴욕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은 ‘도시 안의 작은 도시’이다. 이러한 록펠러 센터는 도시 계획과 공공 미술의 표본으로 20세기 의미 있는 건축적 업적을 인정받아, 1988년에 미국 역사 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선정되었다. 특히 록펠러 센터 프로젝트에 ‘새로운 라디오 매체’는 강력한 상징이 되어 1930년대 초반까지 ‘라디오 시티(Radio City)’로 불린다. 록펠러 센터의 중심 마천루에는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 마천루 와 라디오 시티 뮤직 홀(Radio City Music Hall)이 있다. RCA 마천루는 70층의 폭이 좁은 슬라브(slab) 양식으로, 당시 뉴욕의 종합지역제(Zoning Law)로 인한 ‘웨딩 케이크’와는 다른 독창적인 아르데코 건축물이 완성되었다. 마천루는 폭이 좁고 긴 장방형으로 건물의 양 사이드의 셋백(setbacks)으로 인하여 위로 올라갈수록 무게감을 더는 듯하다. 로어 프라자인 선큰 광장에서 바라 본 RCA 빌딩은 더 높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RCA 빌딩 북쪽의 라디오 시티 뮤직 홀은 6300석 규모의 극장이다. 록시가 디자인 한 무대 디자인은 자연의 숭고함을 담은 ‘석양’을 표현한 아 르데코 양식이며, 실내디자인은 아르데코 가구 디자이너 도날드 데스키(Donald Deskey, 1894-1989)가 창조하였다. 센터에는 100여 점의 작품들이 있지만, 예술 프로그램(Art Program)에서 지향 한 ‘새로운 영역들(New frontiers)’과 ‘문명의 행진(The March of Civilization)’ 이라는 주제는 라디오를 표현한 작품에서 독자성이 두드러진다. RCA 빌딩은 라디오 가 매체가 인류에게 선사하는 긍정적인 메시지인 지성과 지혜의 힘을 ‘인류 문명의 진보’와 연결하여 건축적 조각이나 모자이크로 표현하였다. <지혜>, <뉴스>는 대표적인 아르 데코 작품으로 유리, 스테인레스 스틸 등 다양한 재료와 금박이 사용되었다. 록펠러 센터는 라디오의 도움으로 건전하고 인간다운 미래도시를 향한 꿈이 구체화 되었다. 이곳은 문화와 예술, 상업이 하나의 복합체(complex)로서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자 변화하는 사회의 부산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더불어 아르데 코 양식의 건축물과 작품들은 센터의 독자적인 특징이다.
        6,700원
        153.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의 <폴리-베르제르의 바 A Bar at the Folies-Bergère> (1882)에 나타나는 이원성들에 관한 연구이다. 마네가 죽기 일 년 전에 남긴 마지막 걸작인 <폴리-베르제르의 바>는 뒤틀린 원근법과 같은, 화면 구성 상의 문제에 있어 현재까지 수많은 수수께끼를 남기고 있는 작품이다. 본 연구는 그 수수께끼들을 풀기 위한 열쇠로써, 마네가 살았던 시대에 시대의 복잡한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프랑스의 1860-70년대는 왕정복고 시대의 잔재들과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개념들의 혼재로 인해 정치적인 갈등과 분열이 고조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대적 자화상이 마네의 작품들, 특히 <폴리-베르제르의 바>에 내재된 모순 점들에 영향을 줬으리라는 기대 하에 시작되었다. 첫째로, 본 연구는 <폴리-베르제르의 바>에 나타나는 여급 쉬종(Suzon)의 포드에 주목하였다. 정확한 대칭적 구도로 인하여 영원성을 상징하는 쉬종의 포즈는 ‘이 마고 피에타티스(imago pietatis)’를 의미하는 마네의 다른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포즈와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쉬종은 전통성(traditionality)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폴리-베르제르의 바>의 거울 속 이미지로 나타나는 쉬종의 포즈는 거울 밖의 그녀의 포즈와 다르게 보인다. 거울 이미지의 그녀는 거울 밖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손님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 포즈를 하고 있으며, 또한 그녀의 이미지는 일시적이고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일시적인 것, 흔들리는 모습은 또한 근대성 (modernity)의 특징이기도 하다. 둘째로, 본 연구는 쉬종이 그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여성 이미지의 두 축인 처녀와 매춘부를 모두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거울 밖에서 꽃과 과일 그리고 술과 함께 있는 쉬종은 앵그르(Ingres)의 <성체와 함께 있는 마리아 Virgin with the Host>(1854)와 동일한 구성을 가지며, 그녀의 포즈는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Marcantonio Raimondi)의 판화들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성모마리아의 포즈를 재현한다. 그와 반대로, 거울 속의 쉬종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모자를 쓴 남성 앞에서 구부정하게 서있으며, 이는 그 시대에 만연했던 매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쉬종은 처녀와 매춘부라는 양극을 모두 상징한다. 이와 같이, 이원적인 전통성과 근대성, 그리고 처녀와 매춘부가 하나의 작품 안에 공존함으로써,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바>는 하나의 해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미스테리한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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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세기 전반 동안 일본의 우키요에에 독립된 풍경이란 주제가 등장하여 대표적 유형으로 정착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우키요에의 본격적 출발은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후지산 36경》(1830-1832)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호쿠 사이가 고안한 우키요에의 특징들은 안도 히로시게로 계승되어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우키요에로 발전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호쿠사이의 《후지산 36경》에서 나타나는 서양화의 기법들은 물론, 일본화 특유의 특징들과 서양화 기법들을 조화시키는 특유의 수법들이 18세기 말부터 어떤 방식과 과정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로써 네덜란드 상인과 가톨릭 예수회 선교사들과 나가사키 데지마의 상관을 통해 일본에 소개된 서적 속의 삽화들과 동판화를 통해 알게 된 서양화의 기법들을 모사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일본의 회화적 전통과 어우러지게 혼합시켜가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풍경 우키요에의 차이와 특징들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복합적인 시점과 독특한 구도,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자연 묘사로 19세기 후반 서구 미술가들에게 광범한 영향을 미쳤던 풍경 우키요에 양식이 일본화에 서양화 기법을 도입하고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된 토착화의 결과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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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202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사진가들과 미술가들이 매향리를 기억하고 상징화하기 위해 어떠한 작업을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매향리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50여 년간 미공군이 작은 해안 시골마을 옆의 섬을 표적삼아 폭탄 투하 연습을 했던 곳이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촉발된 사회참 여와 미국의 폭력성에 저항하고자 했던 작가들은 매향리 주민들의 고통을 대변하여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작가들은 권력의 주류 담론에 대한 저항 의식과 자주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폭발 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매향리 주민들과 그들의 메시지를 예술로써 사회에 전달할 것을 촉구했다. 1990년대부터 쿠니사격장의 폐쇄 전까지 임옥상은 매향리에 떨어진 포탄 잔해물을 모아 미국을 풍자하는 조형물을 설치했으며, 노순택은 제도적 폭력과 분단 상황을 리얼리즘 사진으로 포착했 다. 이후 2018년 탈북화가 선무는 《반갑습니다》를 개최하여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차원에서 남북미 세 지도자의 초상화를 매향리에 설치했다. 이러한 미술가들의 작업은 한국전쟁 이후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한국사회의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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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
        202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는 그의 전 창작기를 관통하여 춤이라는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다루었다. 다리파 그룹의 드레스덴 활동기에는 대도시 밤문화를 대표하는 바리에테에서의 춤공연의 에로틱하고 자유분방한 움직임의 재현을 통해 생명력 있는 삶의 기쁨을 표현하였다. 이후 베를린에서의 활동기 동안에도 바리에테 춤 공연을 다루었으나 이전과 달리 화가 본인이 겪었던 실존적 위기감을 밤무대 무희들에게 투사하여 사회비판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전쟁기 동안에 제작된 춤의 이미지는 그가 겪었던 전쟁에 대한 공포심과 그로 인한 약물중독과 정신적 붕괴에 대한 위기감을 최면상태에서 강박적으로 이루어지는 병리학적 춤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전쟁 이후에는 독일의 표현무용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메리 비그만, 그렛 팔루카와 같은 무용 가들과 교류하며 상호 창조적 영감을 교환하였으며 그들의 춤을 화폭에 담았다. 이러한 시도는 현대 예술의 서로 다른 장르 간의 상호 교류의 대표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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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202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미술 작품의 가치에 대한 무수한 담론은 시대를 아우르며 형성되어왔다. 현대 미술계는 20 세기 이후로 급진적으로 변화하여 다양한 유통 체제가 발전하였고 시장은 미술품의 생산과 소비 뿐 아니라 작품의 본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미술작품의 상품화 경향이 심화되며 현대미술과 자본과의 관계에 대한 쟁점이 대두되었다. 본 연구는 현대미술계에서 미술품의 상업적 가치가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현상에 대하여 부정적 결론을 도출하기 이 전에 미술 작품의 가치 평가가 어떠한 이론 과정을 통해서 정의되어 왔는지, 작품의 본질적, 상업적, 사회적 가치를 살펴보고 관계적 가치에 대해 모색한다. 또한 예술제도론을 토대로 미술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예술계의 체계를 탐구한다. 본 연구에서는 미술 시장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가치 형성 체계의 주체를 후원자, 화상/비평가, 경매로 정의하고 현대 미술계에서 자본과 상호작용하며 시대에 맞게 진화해나가는 미술계를 고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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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중심으로 예술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성과 구성 기법을 통해 음악과 미술의 상호성을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질적 연구 방법 중 하나인 창작자의 인터뷰를 통해 음악과 미술이 가지고 있는 관계성과 상호성을 입증하였다. 음악과 미술이 가지고 있는 표현 요소와 기법의 유사성을 현대 작가들을 통해 알아보았다. 또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성은 목적성을 가지고 전개하는 내러티브적 구조와 전체와 부분요소의 조화를 이루는 맥락적 구조, 본질적 요소의 표현을 통해 구성 기법적 특징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매체의 발달로 인해 음악의 시간성과 미술의 공간성이 동시에 시공간적 감각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본 연구는 시간과 공간, 시각과 청각이라는 공감각 작용의 의의를 밝히고자 하였으며, 앞으로 표현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 하였다. 음과 색의 관계가 개인의 추상적인 표현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시공간적 특성이 나타난 구조적 관계를 통해 본질적인 상호관계를 파악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본 연구는 매체의 발달로 인해 음악의 시간성과 미술의 공간성이 동시에 감각적 경험을 제시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질적 예술 형태의 상호적 구조 방식은 표현의 다양성을 제시할 수 있으며, 관객에게 작품에 대한 다각도적 시각과 해석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하였으며, 이 가능성과 중요성은 융합적 가치가 중시되는 현대사회에 필요한 연구가 될 수 있다는 제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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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202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2020년 6월 25일 조영남 그림 대작(代作)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 사건은 사기죄로 기소되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 사안을 들여다보면 저작권 귀속과 저작권 침해의 문제임을 알 수 있 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기초로 하여 저작권법상의 쟁점이 되는 저작권 귀속과 저작권 침해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다. 피고인은 자신이 저작자이고 공소외인은 조수라는 주장에 대해서 저작 권법상 저작권 귀속에 관한 법리를 중심으로 하여 피고인의 주장에 대해 검토하여 보았다. 저작권법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자가 아니라 이를 표현 한 자에게 저작권이 귀속되도록 하고 있는데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 보면 피고인은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을 뿐이고 실질적으로 표현을 한 자 는 공소외인 이므로 저작자는 공소외인이 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피고인은 자신의 그림은 개념미술 그리고 팝아트에 해당하기 때문에 개념을 제시한 자신에게 저작권이 있고 공소외인에게는 저작권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해서 개념미술의 개념과 팝아트의 개념을 살피고 2인 이상의 사람이 팝아트나 개념미술의 창작에 관여하는 경우 저작권은 누 구에게 귀속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개념미술이나 팝아트라고 하더라도 저작권법이 표현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를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에 피고인이 아무리 팝아트적인 요소인 화투를 가지고 꽃으로 표현 하라는 것을 지시하였다고 하더라도 결국 캔버스에 어떻게 그릴 것인지 구상하고 이러한 구상을 토대로 실질적으로 그림을 그려낸 사람은 공소 외인에 해당하므로 공소외인이 저작권자가 된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피고인과 공소외인의 거래 관계를 일반적으로 대작계약이라고 칭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대작계약의 정의와 대작계약의 경우 누구에게 저작권 이 귀속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대작계약은 양도불가능한 저작권의 양도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작계약은 무효이고, 저작권은 미술 품을 창작한 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되므로 이 사안에서 저작권은 공소 외인에게 귀속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이 공소외인에게 귀속되는 경우 피고인이 미술품에 직접적으로 덧칠을 한 행위는 저작권법상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한 행위가 되므로 이 를 근거로 공소외인은 피고인에게 저작권법에 따라 민ᆞ형사상의 구제를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160.
        202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시각장애인의 문화향유권 확대를 위하여 현재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감각인 후각을 사용한 새로운 미술작품 감상법 개발의 가능성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인간의 후각은 현대사회에서는 크게 중요시되지 않는 감각이지만 이는 문화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며,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후각은 실용적 활용 가능성을 충분히 지닌 감각이 다. 본 연구에서는 여러 종류의 향이 후각을 통하여 인지될 때 각각 고유의 색상 및 개념과 무의식적인 연관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가정하였고, 이를 향의 색 지향성과 개념 지향성이라는 용어로 나타내었다.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하여 특정한 일부 향에 색 지향성과 개념 지향성이 존재함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향을 활용하여 시각장애인들에게 미술작품 에 사용된 색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성공하였다. 본 연구를 기반으로 색채가 지닌 명도와 채도 및 더 다양한 색상을 전달할 수 있는 색-개념 지향성 향의 활용에 관한 연구를 지속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5,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