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4

        1.
        201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김억, 김영랑, 한흑구, 정인섭을 중심으로 식민지 조선 문인들의 “The lake isle of innisfree”의 수용과 전유 양상을 고찰하는 목적으로 한다. 식민지 조선 문단에서 “The lake isle of innisfree”는 ‘세계문학의 보편성’과 ‘식민지 문학의 특수성’을 지닌 예이츠의 대표시로 주목받으며 수용 주체의 문학 기획에 따라 다른 함의로 호명된다. 조선 문인들의 “The lake isle of innisfree”의 수용과 전유는 당대 이들이 기획했던 문학적 전략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나타난다. 김억과 김영랑은 세계문학으로서 “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전유하면서 근대시로서 이 시의 특징에 주목한다. 이에 반해 한흑구와 정인섭은 식민지 문학으로서 “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전유 하며 이 시에 내포된 식민지적 정체성에 주목한다
        6,100원
        2.
        2012.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미술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로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접근방법에서는 후원자들과 그들의 성별, 사회적인 지위가 작품제작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또는 미술이 특정집단의 사람이 살아온 환경 속에서 어떻게 소통과 자기표현 수단으로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은 조선시대 예술가들을 단순히 중국 수입품에 의존하는 이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당시의 미술을 볼 수 있게 하였고 이를 통해 그들의 지적, 문화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한 영감으로써 중국미술의 경향을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 초기 회화 특히 안견의 <몽유도원도, 1447년> 와 신숙주의 「화기」는 조선전기 문인들이 아직 사회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시기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중국의 이론적 담론, 도상 및 양식들을 사용하였는가를 보여준다. <몽유도원도>는중국의시인인 도잠(연명, 365-427)이쓴 「도화원기」 에서 비롯되었으나 도잠의 시와 중국 도상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있다. 「도화원기」의 현실도피적 측면은 안평대군이 당시 처해있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양식적으로는 <몽유도원도>에서중국 북송대의 화파인 이곽파의특징을 찾을 수 있다.「화기」서론 부분의 한유와 백낙천에 대한 언급과, 소식을 상기시키는 「화기」끝부분의 철학적 담론은 안평대군의 골동수집 취향, 안견의 회화 양식과 당대의 지적 문화적 경향과 잘 부합된다. 곽희 양식에 대한 인식, 도화원기의 도상학, 한유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저술과 소식과 동시대인들의 미학적 문학활동은 고려 왕조의 어느 시기엔가 한국의 학자와 화가들에게 전달되었다. 조선초기까지 이러한 인식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사회적 지적 정치적 위치를 확고히 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이든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학식 있는 문인 집단에게 있어서 실질적이고 이론적인 소재가 되었다.
        9,000원
        3.
        2010.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조 문인들은 독서의 定義에 대하여, 옛 성현들의 정신과 심술의 자취가 책 이고 그것을 통하여 성현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라 하였다. 독서의 目的은 성현 의 도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권선징악 하기 위한 것이며, 그 態度는 마 음을 열고 거침없이 읽어 책을 보는 것은 반가운 벗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讀書方法은 주해는 물론이고 구절에도 구애되지 말고 생각을 깊이 하여 古人 과 一體가 되고자 하였다. 초학자는 적은 양의 책을 熟讀하는 것이 좋으며, 책을 읽는 횟수는 무작정 많이 하기보다 理解度를 높여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체득할 수 있을 지를 중시하였다. 마음을 잡아두기 위하여 ‘하루에 읽을 분량[課程]’을 정하였는데, 양은 적게 하 고 시간은 여유 있게 주며 功力은 많이 들이도록 하였다. 텍스트마다 독서법을 달리한 것은 독서의 效率性과 興味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독서의 금기로는 本志를 놓치지 않고 雜書를 읽지 않으며 글자에 매여 책의 내용을 盲信하지 말라고 하며, 聲讀은 목소리를 차분히 하여 천천히 읊조리듯이 읽거나 묵송하는 것을 바 람직하게 보았다.
        10,400원
        4.
        2010.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에서는 조선조 문인들의 지리산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를 고찰하였다. 조 선시대 유산시는 대체로 몇 가지 투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대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리산을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여, 그 중요성을 부각시 키는 것. 둘째, 지리산에 대한 敬畏心을 담아내는 것. 셋째, 지리산에서 浩然之 氣를 기르고 발산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 넷째, 지리산을 仙界나 理想鄕의 소 재처로 보아 憧憬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 다섯째, 지리산과 연관이 있는 인물 을 연상하면서 尙友千古의 자세를 보이는 것. 여섯째, 지리산 등산을 修己, 또는 학문 연마의 비유로 삼는 것. 유산시에 나타난 이런 투식은 곧 지리산에 대한 인식의 유형을 의미하며, 이것은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唐詩 風의 서정적인 작품이 등장하기도 하고, 보다 현실적인 사고를 담아내기도 하 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自尊感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하였다. 또 시 국 변화에 따라 國運을 염려하는 마음이 삽입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문인들의 사고가 근대화 되어가는 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