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과거를 빛 가운데로’ : 예이츠의 초기시에 나타난 신화와 가면
본 논문에서 필자는 예이츠의 초기시에 나타난 신화를 가면으로 보고, 그가 왜 초기시에서 신화의 인물들을 자신의 가면으로 사용하는지를 라깡의 ‘구술치료’를 원용하여 밝혀 보고자 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특히 아일랜드 신화가 투영된 시들을 분석하였다. 예이츠의 신화 사용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신화를 변용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시인이 신화를 변용함으로써 자신의 어떤 의도를 거기에 투영하였다는 것이다. 초기시에 나오는 신화의 인물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 Fergus and King Goll, Aengus and Oisin, and Cuchulain. 퍼거스와 골왕의 신화는 젊은 시인의 시적 추구의 한 모습을 나타내며, 앵거스와 어신의 신화는 모드 곤과의 사랑의 드라마를 투영한 것이며, 쿠훌린은 시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영웅상을 그린 것이다. 예이츠는 이러한 신화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서 바라지만 쉽게 이룰 수 없는 욕망들을 투영하고자 한 것이다. ‘Unity of being’은 예이츠가 평생동안 추구한 화두이다. 초기시에 나타난 신화의 인물들도 모두 이 주제로 통합될 수 있다. 시인은 이상적인 자아와 실제의 자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였다. 식민지 조국에 대한 갈등,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등을 겪어야 했다. 현실에서의 좌절을 극복하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시인이 택한 것은 가면이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바라는 바를 충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바라는 가면을 쓴다고 할지라도, 실제의 자아와 이상적인 자아와의 틈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다. 끊임없이 다다르려고 할 뿐 쉽게 이를 수 없는 예이츠의 장미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과 결핍의 드라마 또는 비극성이 시인에게는 오히려 창조의 힘이 된다. 그렇기에 시인이 택하는 가면은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었을지라도, 최선의 해결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이츠의 초기시에 등장하는 가면들은 보다 나은 reality 또는 unity of being에 이르고자 하는 시인의 시적 추구의 도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