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탈춤이 예이츠의 희곡에 끼친 영향관계 연구
예이츠가 레이디 그레고리와 더불어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 및 아일랜드 연극운동을 견인하고, 장기간에 걸쳐 애비 극장의 책임자로 활동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 기간 동안 예이츠는 극장의 행정을 담당하고 공연의 예술적 지표를 설정하는 외에, 극작가로서 활동의 지평을 넓히기도 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예이츠의 를 중심으로, 한국 탈춤이 그의 후기 희곡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논구한다. 서양의 연극적 관습이 표현의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한 예이츠는 그 탈출구를 동양의 전통극에서 찾고자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주일 영국대사관에 봉직했던 페날로사의 원고를 에즈라 파운드가 정리한 책으로부터 일본의 전통극 노(能)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나름대로 새로운 연극적 문법을 창시하였다. 악사들을 무대 위로 올려 관중들이 그들의 존재를 곧바로 인지하도록 하고, 등장인물들과 악사 간에 대화를 나누도록 하며, 별도의 장치 전환 없이 배우들이 무대를 몇 바퀴 도는 행위만으로 극중 장소의 변경을 적시하려 한 점 등이다. 이는 근대 이후의 서양적 연극관습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공간 개념을 도입하려한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일본의 전통극 노(能)가 공연양식, 탈의 활용법 등을 기준으로 한국의 탈춤, 특히 서낭굿 탈놀이와 방법론적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탈춤과 일본의 노(能)는 공히 불교 선교극에 예술적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나라시대(奈良時代: 646-794)에 백제(百濟)로부터 기악(枝樂)이라는 공연 양식이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곧 오늘날의 노(能)이다. 이와 같은 전파과정을 고려하면, 한국의 탈춤이 예이츠의 후기 희곡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예이츠가 차용한 악사의 역할, 그리고 연극적 공간의 활용법은 표면적으로는 한국 탈춤의 경우와 상당히 흡사하다. 그러나, 예이츠의 희곡과 한국 탈춤의 채록본을 분석하면, 공연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논의되는 이 두 요소의 연극적 기능에 본질적인 차이가 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바탕 위에서, 본 고에서는 탈춤과 예이츠 희곡 간의 유사성 및 상이점을 자세하게 논구하였다. 나아가, 예이츠가 ‘총체극의 현현일 뿐 아니라 가장 첨단의 공연 양식’이라고 평가했던 동양 전통극의 공연관습이, 한국의 연극 운동 지도자들에게 전근대적이라고 폄하된 까닭을 고찰하였다. 이 문제와 이어지는 ‘연극적 근대성’의 개념에 대한 논쟁을 비교 분석하는 일은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뤄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