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와 예이츠의 극과 일본의 노(能)
일본을 대표하는 고전연극 노(能)가 서양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19세기말부터였다. 일본과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노는 번역을 통해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 때 소개된 많은 번역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이 페놀로사․파운드의 번역이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한 정확한 번역과는 거리가 멀지만, 시극(詩劇)으로서의 노의 문학성을 알리는데 그 어느 번역집 보다 기여한 바가 크다. 노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간아미(觀阿彌 1333-1384), 제아미(世阿彌 1363-1443) 부자(父子)에 의해 대성되었다. 이들에 의해 노는 종래의 민간예능의 제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당시 지배계급의 미의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상징적이며 귀족적인 극예술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제아미는 무겐노(夢幻能)라고 하는 노 특유의 극형식을 창출하였는데, 그 후 많은 작품들이 이 형식을 빌어 쓰여지게 되었다. 무겐노의 극구성을 보면, 정처 없이 떠도는 승려가 긴 여행 끝에 어느 마을에 도착하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이 승려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또는 남자가 나타나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화자(話者)가 바로 이야기 속의 주인공임이 밝혀지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일단 모습을 감춘 주인공은 극의 후반에서는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나 과거를 재현하고 춤을 춘다. 현세에 대한 미련, 추억들이 이들의 이른바 성불(成佛)을 막고 이승에서 떠돌게 하는 것이다. 승려는 이 영혼이 이승과의 인연을 끊을 수 있도록 염불을 드리고 이에 유령은 성불하게 된다. 작품에 따라서는 유령이 끝내 성불하지 못하고 영원히 이승을 방황하는 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파운드의 소개에 의해 서양에 널리 알려지게 된 노는 많은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예이츠는 노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 속에 노의 주제나 기법 등을 수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이츠가 말년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다름아닌 무겐노였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교류를 그리는 무겐노는 예이츠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여 그가 오랜 기간 모색해왔던 아일랜드의 전승․신화의 세계를 극화하는 방법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본고는 파운드와 예이츠가 무겐노 형식으로 쓴 작품 「트리스탄」(1916)과 「연옥」(1939)을 중심으로 노가 이들의 작품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