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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科書에서 漢詩敎育의 方向

교과서에서 한시교육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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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The Korea Association For Education Of Chinese Characters)
초록

詩는 문학의 꽃이다. 꽃의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淸澄하게 하듯이 詩도 사람의 영혼을 청징하게 한다. 漢詩는 한문 교육과정의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한시의 세계는 廣大無邊하여 이를 이해하고 교육하는 일이 쉽지 않다. 옛적부터 “詩를 짓는 것 보다 좋은 詩를 가려서 뽑는 것(選)이 어렵고, 좋은 詩를 가려서 뽑는 것보다도 詩를 鑑賞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詩를 짓는 것 보다 좋은 詩를 가려서 뽑는 것(選)이 어렵고, 좋은 詩를 가려서 뽑는 것보다도 詩를 鑑賞하기가 어렵고, 시를 감상하기보다 시를 敎育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첫째, 王之渙의 「登鸛雀樓」대한 해석이다. 이 시의 轉句와 結句는 日沒의 시간에 황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장엄한 정경을 보고 싶어, “欲窮千里目 천리 끝까지 보고 싶어 / 更上一層樓 다시 한 층의 누대를 오르고 싶네”라고 볼 수 있다. 즉 結句를 “한 층이 더 있다면 올라가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구나 樓閣에 오르면 마지막 층까지 올라가서 시를 짓기 마련이다. 즉 5층이라면 4층까지만 올라가서 시를 읊지 않는다. 王之渙은 鸛雀樓의 가장 높은 마지막 층까지 올라가서 이 시를 쓴 것이다.석양의 장엄한 황하의 모습을 더 멀리 보고 싶어 한 층이 더 있다면 오르고 싶다고 노래한 것이다. 結句의 “一層” 은 시인이 만든 假空의 “一層” 이지 실존하는 “一層”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시는 시인에 의해서 創造되고 독자에 의해서 再創造된다. 旣存의 해석을 따르면, 王之渙은 鸛雀樓가 5층이라면 4層까지만 올라와서 시를 지은 것이 된다. 과연 4층 까지 올라와서 1층을 오르지 않고 시를 지었을까? “천리 끝까지 보고 싶어 / 다시 한 층의 누대를 오르네”라는 기존의 해석이 과연 萬古不變의 至善인가? 아니면 “천리 끝까지 보고 싶어 / 다시 한 층의 누대를 오르고 싶네”, 즉 結句를 “한 층이 더 있다면 올라가고 싶다”는 필자의 해석이 더 詩的인가? 어느 해석이 시적 상상력이 풍부한 해석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王維의「送元二使安西」을 陽關三疊이라 하는데 三疊에 대한 학설이 다양하다. ① 東坡는 唐나라 사람들은 起句를 제외하고, 承句와 轉句와 結句에 와서 각각 2번씩 불렀다고 하였다. ② 明나라 田藝蘅은 1첩은 起句를 2번, 2첩은 承句를 2번, 3첩은 轉句를 2번 疊唱한다고 하였다. ③ 邱燮友는 結句(제4구)에 와서 이를 3번 부르다고 하였다. ④ 일본의 淸潭 스님은 1첩은 承句를 2번, 2첩은 轉句를 2번, 3첩은 結句를 2번 疊唱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양관삼첩의 창법이 4人 4色으로 각기 다르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고 할 수 없다. 님이 떠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시리고 아린 일이기에 잠시라도 더 머물게 하고자 하여 離別歌를 三疊하는 것이다. 이별이 아쉬워 詩唱을 하는데 형식에 고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떠나는 님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고,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치와 情操에 따라 다르고, 惜別의 정의 濃厚에 따라 다르므로 4개의 창법 이외에도 卽興的으로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의 아픔이 있어야 만남의 기쁨이 있는 것이기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送別歌를 三疊했던 옛 선비들의 風流韻事는 애잔하면서 멋이 있다. 현대인들에게 여유 있는 옛 선비들의 風流韻事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할 적에「渭城曲」이나 「送人」을 주고받으며 시창을 한다면 아름다운 風流韻事로서 의미 있는 추억의 이별이 될 것이다. 문학의 꽃인 시는 時空을 초월하여 우리의 영혼을 淸澄하게 한다. 시를 읊고 云謂하는 그 자체가 香氣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한시를 교육한다. 한시 교육에서 王之渙의 「登鸛雀樓」에 대한 해석과 陽關三疊의 三疊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한시 교육에 작은 기여가 있기를 기대한다.

诗歌是文学之花。如一朵鲜花的清香让身心澄净,一首诗歌也让心灵澄净。在汉字教育课程里面汉诗是不可或缺的组成部分。然而,汉诗涵盖的范围很广,教育汉诗也是不容易的。人们常说,“选好一首诗比创作一首诗更难,鉴赏一首诗比选好一首诗更难”。笔者则认为,选好一首诗比创作一首诗更难,鉴赏一首诗比选好一首诗更难,教育一首诗比鉴赏一首诗更难。第一,就王之涣《登鸛雀樓》的解法。作者在这首诗的转转句和结句中写“ 欲穷千里目,更上一层楼”,表达日落时身在鹳雀楼上,想望见黄河入海的壮观的心情。即,把结句可解释称“假如上面还有一层,要登上顶层”。要登楼阁,应该想要登上顶层。换言之,假如楼阁是总5层,谁要站在4层吟诗呢?笔者认为,王之涣是就登上了鹳雀楼的顶层谱写这首诗歌。那就是想把日落的黄河景观看得更远,要登上更高的一层城楼。结局子的“一层”是诗人创造的一种虚拟空间。诗歌由是人创作,由读者来再创造。对“欲穷千里目,更上一层楼”这绝句,按照传统的解法,鹳雀楼总共有5层,王之涣则站4楼写诗。他真没登上顶层,站4层写诗呢?意思是,若想把千里的风光景物看够,那就要登上更高的一层城楼。那传统的解释是完美的吗?笔者则把结句解释成,“还剩下顶层能登上,要登上顶层”两种解法中哪个更富有想象力,值得我们思考。第二,王维的《送元二使安西》,又称《阳关三叠》,就“三叠”的演唱有许多说法:一、东坡说,唐朝时代除了起句以外,承句和结句分别唱二遍;二、明朝时代田艺蘅说,“一叠”,首句唱二遍,“二叠”承句唱二遍 ,“三叠”转句唱二遍;三、邱燮友说,结句(第四绝句)唱三遍;四、日本一位僧侣淸潭说,“一叠”承句唱二遍,“二叠”转句唱二遍,“三叠”结句唱二遍。如此,对《阳关三叠》演唱方法有多种说法。不能说哪个是对、哪个是错。与恋人分手心里酸酸,想让恋人继续留下来,唱三叠离别歌。舍不得分手唱诗歌,不用流于形式。按照不同的对象、不同的时间和空、不同的情韵和情绪,不同的惜别之恋程度,除了4个唱法外,应该有许多唱法。没有离别的痛苦,就没有相聚的欢乐,爱到分离才相遇,每颗心都期待着相遇的那天,唱三叠送别歌的古代文人的情诗蕴含着凄婉、雅致的情趣。然而,当代很难看到古代文人的风流韵事。如果送别恋人时相互演唱《渭城曲》或《送人》之类的离别歌,可以留下美好的回忆。文学之花“诗歌”超越时空,让心灵清澄。笔者认为,朗诵和鉴赏诗歌会让人生更加有滋有味。于是,我们要教汉诗。我希望,就王之涣的《登鸛雀樓》的解释和就《阳关三叠》“三叠”的演唱方法的深入探讨将为汉诗教育的发展提供良好平台。

저자
  • 金相洪(檀國大 碩座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