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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使 韓範錫의 家世와 生平 KCI 등재

The Study of commandant Han Beomseok's Family and His Life

병사 한범석의 가세와 생평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279969
  • DOIhttps://doi.org/10.14381/NMH.2014.09.3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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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淸州韓氏는 高麗 중기 이후로 名公巨卿과 文人學者들이 대를 이어 배출되는 혁혁한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朝鮮朝에 들어와 더욱 번창하였고, 成宗 때 韓繼禧의 대에 이르러 번창함이 절정에 이르렀다.그 손자 韓承利가 晋州에 은거한 이후로는 中央官界와 관계를 맺을 기회가 줄어 자연히 高官大爵으로의 진출은 어렵게 되고, 중앙의 名閥家와의 聯婚이 어렵게 되자, 결국 진주를 중심으로 한 地域士族階級으로 변화하였다. 또 진주의 지역사족으로 변화한 이후로는 주로 武科를 통한 仕宦으로 家聲을 지속해 나갔다. 그런 인물 가운데 조선 肅宗 英祖 때 활약한 兵使 韓範錫과 그의 후손들이 대표적이다.그러나 韓範錫 家門의 무과 출신들은 단순히 武藝만 아는 무인이 아니고, 儒學的 素養을 겸비한 무인으로서 문무를 겸전했고, 江右地域의 儒所에도 참여하는 가문이 되었다.특히 韓範錫의 후손 가운데는 11명의 武科出身과 14명의 仕宦者, 3명의 문집 저자를 배출함으로써 강우지역의 명가의 위상을 유지해 나갔다. 한범석은 무과를 통해서 사환하여 50년 동안 仕籍에 있으면서 英祖의 특별한 知遇를 입어 6도 병사, 7개 고을원을 역임하며 치적을 쌓았다. 특히 국가 민족을 위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군사들을 어루만지는 使命感이 투철하였다. 兵使 등 軍職을 맡아서는 성을 쌓고 무기를 정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고을원을 맡아서는 백성들의 고통상을 이해하고 이를 제거하고 백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고, 흉년에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그는 무예에 정통한 무인이면서 아울러 모범적인 牧民官이었다.또 무인으로서는 드물게 中國과 日本의 使行에 참여하였고, 그 사행의 활동상과 노정을 狀啓와 日記로 남겼다는 것이 다른 무인에게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일이다. 한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자마자 곧바로 일본에 간 경우도 극히 드물어 그 일기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두 나라의 문화에 대한 감각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그는 전일에 많은 治績을 쌓은 高官이라 하여 鄕村에서 武斷을 일삼는 일은 전혀 없었고, 鄕村의 父老들과 동등한 친구로서 어울려 담소하는 소박한 생활을 했는데, 그 당시로서는 이런 지극히 평등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드물었다.

Since middle period of Golyeo dynasty, in Chungju Han family high offices and literary scholar have come out. Come to the Joseon Dynasty Han family have been more prosperous. During reign of king Seongjong, Han family reached a climax flourish. Hangyehee had figure out the best among many Han family.Hanseunglee, the grandson of Hangyehee, transferred from Seoul and lived in Jinju. From that time, his family were difficult to get the relationship with the important person in central government. So Hanseunglee's descendants have turned to renowned family in the Jinju area. Since then they were active in the armed officials. The most famous among them was General Hanbeomseok, he has been active at reign of king Sugjong. Many of his descendants also have become armed officials. They have been outgoing in literature also .Hanbeomseok while 50 years Has served as offices in Seoul and all over the province, and he has ware the favor of the king, he has completed a lot of work, and he has been hailed by the people. He was an exemplary public servants to understand the people and made tough work with people in his body. Japan, left a diary that fact. such case was very rare among armed officials.He have gained a lot of work as the senior officials before. Step away from high office, He did not show the haughtiness attitude at hometown and he did dot arbitrarily. He has spend time exchanging many stories with people and has enjoyed the simple life at home town. He already had the idea of equal. At that time, person having this thought was rare.

목차
Ⅰ. 序論
 Ⅱ. 淸州韓氏의 上系와 晋州 奠居
 Ⅲ. 韓兵使의 생애
  1. 編年的 고찰
  2. 爲人
 Ⅳ. 韓兵使의 후손
 Ⅳ. 결론
저자
  • 許捲洙(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및 경남문화연구원 남명학연구소 책임연구원) | Heo Kweon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