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의 문명 구제론
본 논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혜화되고, 퇴락해 가는 영국과 서구 유럽의 문명에 대하여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T. S. 엘리엇 이 그 문명 복구률 위하여 어떤 생각파 태도률 취했는지률 살펴본 것이다. 제l차 세계대전은 서구 유럽인들이 일찌기 경험환 적이 없는 대량 학살과 기독교의 전통적인 문화 유산올 파괴 • 황폐화시킨 대참사이었올 뿐만 아나라 정신적인 가치관에도 혼란올 가져온 위기의 근원이기도 했다. 대전이 끝난 1918년 이후, 유럽의 지성인들 은 유럽의 문명복구와 정신적 가치관의 회복에 대해서 다양한 방안들올 제시했다. 이러한 방안들 중 하나로 서구의 문화적 정체성올 탐구한 독일의 학자 쿠르티우스(Ernst Robert Curtius)는 독일의 문화 개념과 프랑스의 문명개념의 차이점 속에서 두 나라가 꽁유하는 보 편성올 찾는 노력율 보여주었다. 이 같은 쿠르티우스의 노력은 엘리 엇이나 다른 유럽의 지성인들에게도 상당한 자극을 주었다. 엘리엇은 쿠르티우스의 r프랑스 문명」이란 저서에서 독일과 프 랑스의 문화개념 속에 영국의 문화개념이 빼져있는 것올 지적하면 서 영국 문명의 근깐도 프랑스와 액율 함께 하는 고대 회랍과 로마 의 문명에 었다고 주장하였다. 아율러 유럽 문명의 정체성을 앨리엇 은 중세의 천 년에 걸쳐 유럽이 가톨릭 교회흘 중심으로 통합되었던 시대에서 찾으면서 전 후 서구 유럽의 문명 건셜올 위한 방안으 로 기독교 문명올 기초로 하는 유럽의 문화적 통합올 주창한다. 그 의 기독교의 문명부활 사상은 제l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국교회 당국이 시도하려고 했던 중세에 런던의 중심부에 건립된 교회의 파괴와 보수 작업에 대해 앨리엇이 어떤 태도률 취하였는가를 살펴봄 으로써 엿볼 수 있다. 영국의 교회 당국이 런던의 옛 교회들을 파괴하자고하는 결의에 반대하는 엘리엇의 이유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공공기관은 필요에 의해서 과거에 건립된 젓이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러 그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해서 파괴되어서는 안된다는 보수주 의적 전통주의 사상올 보여주기도 하지만,그가 영국국교로 개종하고,영국의 신민이 되기 훨씬 이전,중세에 건립된 교회훌 파괴를 하고자 하는 집단과 맞서 투쟁한 얼례는 영국의 문명이 서구의 다 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기독교에 그 바탱올 두고 있다는 역사인식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인식에 바탕옳 둔 엘리엇의 문명 복 구사상은 그로 하여금 영국의 문명복구는 오직 기독교의 사회 질서 훌 회복함으로써 가놓하고,서구 휴럽의 문명 회생도 기독교의 질서 만이 유일한 방안이라눈 기독교 유일흔옳 주장한다. 제l차 세계대전 이후 붕괴된 서구 유럽의 문명 북구훌 위하여 앨리엇이 제시한 기독교 문명사상윤 1930년대 초에 도우슨(Christopher Dawson)의 영향으로 강화되었지만,자신이 영국국교로 개종한 1927년 이전에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