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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법제사적 의미검토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와 1905년 일본 각의결정의 비교검토- KCI 등재

Rethinking the Imperial Law No. 41 of the Korean Empire in terms of Modern Legislation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4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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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구 (The Journal of Dokdo)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Dokdo Research Institute)
초록

대한제국의 칙령은 입법체계상 법률의 위임에 의하여 제정되는 내각결정이나 명령, 훈령, 고시 등과 달리 대외적 구속력을 갖는 상위의 법규범이며 입법절차에서 법률보다 존중 되는 법규범이었다. 대한제국의 입법체계는 당시 일본의 법제와 대체로 동일하였다. 대한제국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대한제국의 영토관할권에 독도(석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국가의 대외적 의사표시를 하는 공식문서로서 관보를 통해 공포하였다. 대한제국의 입법체계와 절차를 규정한 법률로서 ‘공문식’에 따른 입법절차를 거쳐 제정되어 관보에 공포된 대한제국의 칙령 제41호는 법체계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불과하며 국가적 의사 표시를 위한 공식문서인 관보에도 게시되지 않은 1905년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보다 상위의 법체계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칙령 제41호는 독도를 새로이 대한제국의 영토로 편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울도군의 관할에 포함되는 독도(석도)에 대하여 별도의 지리적 위치 등에 대한 설명 없이 법률로 명시하였다. 칙령 제41호에 따른 관할권의 행사는 울도군 절목이라는 후속적 하위법령의 제정을 통해 세금의 징수라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칙령 제41호는 대한제국이 일본보다 먼저 서구적 근대법의 형식으로 독도에 대한 직접적 주권을 행사한 1차 증거로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의 근거로서 그 무게와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Korean Empire had systematic modern legislation with the Imperial Law No. 1 on Official Document and Act. According to the Imperial Law No. 1, status of Imperial Law, which was enacted by the order of King, was respected more than general Act in the procedure of enactment as well as higher than any other legal norms such as the decision of government cabinet, enforcement decree of ministry, directive of ministry and notification. This was almost same as Japan because legislation of Korean Empire was very similar to that of Japanese Empire. So, Japanese government could not challenge the fact that Korean Empire Imperial Law No. 41 of 1900 was the modern legislation which proclaimed the sovereign territoriality over the Seokdo(Dokdo).
Imperial Law No. 41 of Korean Empire(1900) not only had higher legal position compare to the decision of Japanese Government Cabinet(1905) which incorporated Takeshima into Japan but also enacted earlier than the Decision of Japanese Government Cabinet and its entailing legislative measure. Furthermore, Korean Empire Government published the Imperial Law in the Gwanbo(an official gazette) but Japanese Government did not any such legal publication. It means Korean Empire took higher legal action and proclaimed its sovereign territoriality over the Dokdo more publicly than Japanese Empire.
As a modern law, Imperial Law No. 41 has the meaning of the first evidence that Korean Empire exercised direct legislative sovereignty over the Dokdo at that time in accordance with the modern international law. So, the importance of Imperial Law No. 41 as a legal title on the Dokdo must be emphasized more than any other historical evidences which recorded the fact that Korea exercised territorial jurisdiction through the Korean history.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죽도문제 100문100답』과 칙령 제41호
 3. 근대법제로서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4. 일본의 근대법제 형성과 1905년 『각의결정』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최철영(대구대학교 법학부 교수) | Cheolyoung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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