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s claim regarding Treaty of Peace with Japan and its criticism
독도의 영유권에 관한 국제법적인 판단은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사실이 정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만약 그 사실 자체가 왜곡・날조되어 있다면, 그에 근거한 판단이 무의미함은 자명한 것이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조약에 관하여는 사실과 다르거나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주장이 적지 않다. 거의 전부가 일본측에 유리한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일본측 주장에 대한 비판을 통해 독도문제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 초안작성을 위한 영미협상 당시에 미국초안에 ‘독도는 일본땅’이었다 라든가, 1951년 4월 7일자 미국초안에 ‘독도는 일본땅’으로 되어 있다는 주장들은 어느 것이든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 주장이다. 1951년 4월에 작성된 미국초안이라는 것은 존재 자체를 하지 않는 허구의 조약초안이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1951년 4월 하순 경, 미국과 일본간의 교섭 과정에서, 미국이 ‘독도는 한국땅’으로 되어 있는 영국초안을 일본에 제시하고 일본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사실에 대해서도 왜곡되게 해석되고 있다. 미국이 '독도는 한국땅'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주장은, 당시 에 일본과 미국이 취한 조치를 고려해보면, 일본에 아주 편향된 비상식적인 해석이다. 일본 이 독도를 한국영토로 한 영국초안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사실은, 오히려 일본이 독도는 한국영토임을 묵인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샌프란시스코조약이 확정된 1951년 8월에 미국이 독도를 일본에 주려고 하였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당시 정황으로 보아도 미국 입장은 독도 노코멘트, 일본 입장은 사실상의 독도 영유권 주장 포기였다. 이는 샌프란시스코조약 비준 당시 일본 정부에서 국회로 제출 되어 부속지도로 쓰인 「일본영역참고도」와, 샌프란시스코조약 발효 직후에 마이니치(每日) 신문사에서 제작한 「일본영역도」에 의해서도 증명이 된다. 어느 지도이든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만약 당시에 미국이 독도를 일본에게 주려고 했고, 독도가 일본땅이 된다고 미국이 일본에 비밀리에 알려 주었다면, 이러한 「일본영역참고도」를 일본정부에서 스스로 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공신력 있는 신문사가 발간한 책자의 안 표지에 '독도를 한국땅으로 그린 지도'를 게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진위여부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일본측 자료를 무분별하게 인용하는 것도 독도 학계의 큰 문제점중의 하나이다. 국내학자들이, 일본인에게 한국인을 혐오하도록 선동하기 위해 쓴 책의 독도 부분을 인용하여서, 샌프란시스코조약에 비준한 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독도는 일본땅'을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주장의 타당성은 차치하고라도 독도학 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조약에 관한 전면적인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International legal judgment on the sovereignty of Dokdo presupposes that the historical facts on which the judgment is based are accurate. If the fact itself is distorted and fabricated, it is self-evident that the judgment based on it is meaningless. However, regarding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there are a number of claims that are not true or can not be confirmed. Almost all of them are favorable to the Japanese side. This essay is intended to reveal the historical truth about the Dokdo issue through criticism of these Japanese claim. In the United States draft dated April 7, 1951, the claim that "Dokdo is a Japanese land" is an unfounded claim. At the time of Anglo-American negotiations for drafting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in May 1951, the claim that "Dokdo was Japanese land" in the US draft is equally unfounded. The draft of the United States in April 1951 is a fictitious draft treaty that does not exist. It is a distortion of historical facts. In late April 1951, during the negotiation proces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the United States presented a draft of the English version of 'Dokdo is Korean land' to Japan and heard Japanese opinions, which is also interpreted in a distorted way. The claim that the United States did so to avoid "Dokdo is Korean land" is an unusual interpretation that is highly biased toward Japan, considering the actions taken by Japan and the United States at the time. The fact that Japan has not raised any objection to the draft British version of Dokdo as Korean territory would be interpreted as acquiescence of Dokdo as Korean territory. The claim that "the US tried to give Dokdo to Japan in August 1951, when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was finalized," is also unfounded. Even in the context of the time, the US position was "Dokdo No comment", and Japan's position was to abandon the de facto claim of Dokdo. This is also proved by the "Japanese Domain Reference Map", which was submitted to the National Assembly at the time of ratification of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and used as an attached map, and the "Japanese Domain Map" produced by the Mainichi Newspaper immediately after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took effect. Any map indicates Dokdo as Korean territory. If the United States secretly informed Japan that Dokdo was going to be Japanese territory and that the US was going to give Dokdo to Japan at the time, This Japanese Domain Reference Map would not have been made by the Japanese government itself. Japan's credible newspapers would not have published the 'Map of Dokdo in Korea' on the inside cover of the published booklet. It is one of the major problems of the Dokdo scholarship to cite the Japanese side argument indiscriminately without confirming its authenticity. Domestic scholars cited the Dokdo part of the book written to inspire the Japanese to abhor the Koreans, claimed that not only the nations that ratified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but also all countries except Korea recognized Dokdo as a Japanese land, which is not only nonsense, but also reveals the weakness of domestic Dokdo academia. It is at this point that a full-scale re-examination of the Treaty of Peace with Japan is nee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