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크와 피치니의 ≪토리드의 이피제니≫는 “글루크파와 피치니파의 논쟁”의 최종 판정을 끌어낸 작품들이었다. 이 두 작곡가 중 누가 더 우월하냐는 것을 놓고 오랫동안 벌어졌던 논쟁의 결론이 이들의 ≪토리드의 이피제니≫로 인해 마침내 글루크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정의 기준 또한 혼란스럽다. 일반적으로 글루크파들이 내세우는 기준이 대본의 극적 우수성을 잘 살린 음악에 있었던 반면, 피치니를 옹호했던 사람들은 “주기적 노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주장을 펼쳤다. 비록 글루크와 피치니 두 작곡가 모두 “프랑스어 대본에 이탈리아식 음악”을 붙인 오페라를 만든다는 목표는 공유했지만, 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하느냐는데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 다. 이러한 차이는 글루크와 그의 대본작가 기야르가 그리스 비극을 본보기로 삼았던 반면 피치니와 그의 대본작가 뒤브뢰유는 새로운 드라마를 본보기로 삼았다는데 기인한다. 이 논쟁이 벌 어질 무렵에는 이미 드라마가 비극을 대치하는 과정 중에 있었기 때문에, 글루크와 피치니의 ≪토리드의 이피제니≫는 이 두 장르의 교차점에 있었던 작품들로 특징지을 수 있다.
Iphigénie en Taurides of Gluck and Piccinni are the focal points of the Querelle des Gluckistes et des Piccinnistes. Although the comparative merit of the two composers has been disputed extensively, their Iphigénie en Taurides settled the debate in favor of Gluck. The criteria for such decision, however, are also contradictory. In general, the criterion of the Gluckists is the dramatic quality of the libretto and its musical realization. The argument for Piccinni, on the other hand, is based on the concept of “chant périodique.” Although the final goal of both Gluck and Piccinni was the creation of the opera based on the French libretto with Italianated music, there is discrepancy in terms of how to accomplish this common object. The difference is due to their respective models: Guillard and Gluck retain the elements of Greek tragedy while Dubreuil and Piccinni took the modern drama as its dramatic model. Since the drama was in the process of replacing court-based tragedy during the time of this quarrel, Iphigénie en Taurides of Gluck and Piccinni could be characterized as the intersection of the two gen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