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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포드 스틸의 현대적 원시주의

Clyfford Still’s a modern and Primitivism Art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42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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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문화비평 (Art History, Culture, Critique)
미술사문화비평학회 (Association of Art History, Culture & Critique)
초록

클리포드 스틸은 1904년 노스다코타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을 알바타, 케나다, 스포켄, 위싱턴의 거친 사막과 높은 산맥, 황량한 대초원과 오래 된 메사 지역에서 보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한 그의 초기 작품은 지역주의 관점에서 태곳적부터 이어온 성장, 투쟁, 소멸을 포함하는 날씨와 땅의 자연적 순환을 정확하 게 직접 다룬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자연과 문화, 환경과 자아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즉 그의 미학은 이러한 원시적인 최초의 감동에서 저 절로 진화한 것이었다. 이로써 스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도래하고서야 본격적으로 신화적 주제에 의존하게 된 뉴욕의 도시적인 추상 표현주의자들보다 먼저 경험을 바 탕으로 예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 스틸은 1943년 후반부터 1945년 초반 버지니아의 리치먼드 교사 시절, 그곳에 서 그는 처음으로 지금 우리가 추상표현주의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1946)과 베티 파슨스 갤러리(1947, 1950)와 같은 뉴욕에서의 세 번의 개인전 전시는 스틸을 가장 독창적이고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인 추상표 현주의의 계통의 초기 예술가이자 세계 최고의 살아 있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급부상 시켰다. 그러나 스틸은 문화 기관에 대해 가장 의심이 많았고 비평가, 딜러, 수집가, 박물 관에 대한 그의 불신은 전설적이었다. 특히 스틸은 자신의 작품 이해를 위한 미술사 를 거부하고 미술계 관계자들의 중재 노력에 적대적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추상표 현주의와 같이 그의 예술에 있어서 일반적인 비판 또는 해석적 범주에 맞추려는 시 도조차 거부함으로써 연구의 어려움을 가져왔다.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달리, 스틸의 예술적 업적은 실제로 그들과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출판되는 카탈로그 연대 기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뉴욕화단에서 벗어난 자발적인 그의 은둔은 학문적 성과 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본 논문은 스틸의 위상을 재고하고자 하는 의의가 있다.

Clyfford Still was bone in 1904 in North Dakota to a family of farmers. He spent his childhood in Alberta, Canada, and Spokane, Washington, in lands of bare desert and high mountains, lonely prairies and ageless mesas. Through this Experience he’s early works, at an American Regionalism, grappled at firsthand with precisely those natural cycles of the weather and of the land, involving growth, strife, and dissolution that since time immemorial have always been grist to the mill of fable. For him, therefore, the divide between nature and culture, environment and self, was bound to be a fine one. Thus his aesthetic evolved of its own accord from these raw first stirrings. This gave him a head start when it came to shaping art from experience-over those urbane Abstract Expressionists in New York whose recourse to mythic subject matter happened in earnest only with World War II’s advent. In contrast, Still had tackled his own world-historical crises some years beforehand. Clyfford Still had a period of great creativity and advancement while on a teaching stint in Richmond, Virginia, between late 1943 and early 1945, where he made works that we now would consider Abstract Expressionist. And his first three one-person exhibitions in New York, at Peggy Guggenheim’s Art of This Century gallery(1946) and Betty Parsons Gallery(1947, 1950), established him as one of the most original and highly regarded artists associated with the earliest strains of Abstract Expressionism and one of the world’s foremost living painters. But still was undoubtedly the most suspicious of cultural institutions, and his mistrust of critics, dealers, collectors, and museums was legendary. He rejected as a foundation for the understanding of his work. Likewise, he rejected attempts to fit his art into general critical or interpretive categories, even those widely associated with Abstract Expressionism - a label he disliked and refused to adopt - stoutly denying that he belonged to any artistic tradition. Unlike other the Abstract Expressionist, Still’s artistic corpus was not subject to the purview and publication of a catalogue raisonne, at once actually and virtually to be included. This exile had ramifications for scholarship too. Therefore, this paper is meaningful to reconsider his status.

목차
Ⅰ. 들어가며
Ⅱ. 추상표현주의의 등장과 ‘미국형’ 회화
Ⅲ. 스틸의 생애와 실존적 자화상
Ⅳ. 현대적 원시주의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저자
  • 김미선(전북대학교) | Kim, Mi-seon (Jeonbuk National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