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예술연구 제19집 (p.373-399)

정섭(鄭燮)의 육분반서(六分半書)형성과정 고찰

A Study on the Formation Process of Jeong-sup`s Yuk Bunbanseo
키워드 :
정섭. 판교. 육분반서. 양주팔괴. 미추,Jeong Seop,Pan-Gyo,YukBun-banseo,Yang-Ju eight strange person,Beauty and ugliness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정섭의 육분반서 형성 배경
   1. 반유가적·탈중화적 심미의식
   2. 양주팔괴의 일격(逸格)
Ⅲ. 정섭의 육분반서 전개 양상
   1. 고법의 수용과 창신
   2. 육분반서의 특징
Ⅴ.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초록

본 논문은 청대 중기 양주팔괴(揚州팔괴)를 대표하며 시.서. 화 삼절로 유명한 판교 정섭(板橋鄭燮1693-1765) 서예의 핵 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육분반서의 형성과정을 고찰하려 하였 다. 명말 청초 진보적 사인(士人)을 중심으로 싹튼 반권위적 사 상운동의 시대적 배경하에서 정섭의 인생 행로는 한마디로 지 극히 불우하고 비참하였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유가적 중화 미를 중심사상으로 삼았으나 양주지역을 중심으로 양주팔괴라 일컬어지는 혁신적인 개성주의 예술가들이 출현한 시기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괴(怪)의 미학을 추숭 하였으며 그 중심에 정섭이 활동했다. 정섭은 세상의 명예나 출세에 초연하여 평생 군자의 인품을 상징하는 전통적 소재에 심취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초일(超逸) 한 심미경계의 진솔함이 육분반서를 탄생시킨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정섭의 학서과정은 유년시기 당시 풍미했던 관각체인 해서를 주로 연마하였고 30대는 첩학(帖學)은 물론 비학(碑學) 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행서에 예서 필의의 혼융을 시도하였 다. 40대 전후 회소. 안진경, 소식, 황정견, 고기패 등 명 서예가 들의 필적을 두루 연구하여 독창적인 육분반서를 창안하였다. 육분반서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전하는 바가 없고 후대인들의 다양한 해석만 있을 뿐이어서 의견 또한 분분하다. 그중 정섭 스스로 말한 한대(漢代)의 팔분서(八分書)에 해.행.초 를 결합하였다고 한 기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육분반 서는 팔분을 바탕으로 전.예.해.행초 등 각 서체를 두루 혼합하 였다는 뜻임과 동시에 하나의 상징적인 용어로 그 의미를 해석 하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높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정섭의 육분반서에 대한 평가는 청대 초기 의고주의(擬古主 義)와 대립하는 즉, 정감과 개성을 중시하는 `괴`의 발현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기괴 함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고전의 연마를 통해 변용 시킨 서풍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섭의 육분반서에 대한 연구 는 현대 서예 창작에 대한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This paper tried to examine the formation process of the six-bunbanseo, which is a key element of Pangyo Jeongseop (1693-1765), which represents the eight pillars of Yangju in the middle of the Qing Dynasty and is famous for poetry, calligraphy, and painting. In a word, Jung-seop's life path was extremely unfortunate and miserable under the background of the anti-authoritarian ideological movement that sprang up around the progressive cause of death in the late Ming Dynasty. His activities were based on Confucian Chinese rice as the central idea, but it was a time when innovative individualist artists called Yangju Palgo, which was called Yangju Palgo, emerged around the Yangju area. They admired their own unique and creative aesthetics of Goe, and Jeong Jeong-seop was active at the center of it. Jeong-seop stood aloof from the fame and success of the world and was immersed in traditional materials that symbolized the character of a gentleman for life, and his sincerity of the first-ever aesthetic boundary became the decisive background for the birth of the six-bunbanseo. Jeong Seop's academic curriculum mainly honed Haeseo, an observatory that was abundant at the time of childhood, and his 30s showed a lot of interest in bihak as well as Jeophak, and attempted to blend Yeoseoppil in Haengseo. a society in one's 40s He studied the handwriting of famous calligraphers such as Ahn Jin-kyung, Sosho, Hwang Jeong-gyeon, and Gogi-pae and created an original six-part book. Opinions are also divided because there is no clear record of the meaning of the six-part classification, and there are only various interpretations of future generations. Among them, it is worth paying attention to the record that Jeong Seop himself said that he combined Hae, Haeng, and Elementary School with the eight divisions of the Han Dynasty. This is based on the six-part classification of eight parts.The most reliable expression is to interpret the meaning of each typeface, such as Haengcho, in one symbolic term Jeong Seop's evaluation of the six-bunbanseo was viewed as the expression of a 'goer' that values affection and individuality in the early days of the Qing Dynasty. However, if you analyze his work, you can see that it is not only a simple bizarreness, but a west wind transformed through constant classical polishing. In particular, Jeong Seop's research on the six-bunbanseo suggests a direction for modern calligraphy cre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