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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후기 실학자의 일본인식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선행연구가 있지 만 조선통신사의 일본 왕래가 저조해진 19세기에 활약한 실학자에 대한 그것은 비교적 양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그 중에서 최한기 (崔漢綺)와 이규경 (李圭景)의 일본인식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았다. 최한기의 일본관은 세계 각국의 지리, 제도, 산물, 역사, 종교, 풍토, 문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구전요 (地毬典要)󰡕에 집중적으로 나 타나 있다. 그 저본은 세계지리서인 『해국도지 (海國圖志)』와 『영환지략 (瀛環志略)』이지만 두 책의 일본 기술이 미비한 부분을 신유한 (申維翰) 의 『해유록 (海游錄)󰡕에 의거해서 보충했기 때문에 그의 일본에 관한 지 식・이해는 신유한에 의거하고 있다. 최한기는 일본의 세습제도에 대해 “어찌 인간의 재능에 한계가 있겠 는가? 실로 정교 (政敎)의 구속에 의한 것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냉정하고 공평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의 일본 정보・지식은 상대적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기학 (氣學)’이라는 새로운 사상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전통적 유교의 화의사상이나 역사적인 적개심, 멸시관도 극복할 수 있었다. 한편 이규경은 규장각검서관 (奎章閣檢書官)이자 『청령국지 (蜻蛉國 志)󰡕라는 일본에 관한 저술도 있는 실학자 이덕무 (李德懋)가 할아버지 였으므로 일본에 대해서는 최한기보다 풍부한 문헌과 지식・정보와 접 할 수 있었다. 그는 실제로 그것을 활용해서 일본의 신화, 역사부터 생활 문화와 속신 (俗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을 그의 저서 󰡔오주연문 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속에서 기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규경은 일본인을 가리켜 ‘도이 (島夷)’, ‘왜이 (倭夷)’, ‘흑치 녹정 (黑齒綠頂)’ 등의 멸칭을 거리낌 없이 쓰고 그 방대한 지식을 가지 고도 일본이나 일본인에의 멸시관, 차별의식을 고치고 극복하기에 이르 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나 사고전서 (四庫全書)에도 수록된 일본의 유학 자 야먀노이 테이 (山井鼎)의 『칠경맹자고문 (七經孟子考文)』의 고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듯이 이규경은 그러한 차별의식을 옆에 두고 일본의 문물이나 학술의 좋은 것을 평가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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