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W. B. 예이츠가 만난 일본 문화와 그가 수용한 일본의 노와 선불교 사상의 관점에서 그의 후기 시를 분석하는 데 그 일차적 목적이 있다. 예이츠 는 일찍부터 신비주의적이고 심령적인 정신세계에 관심을 가졌었다. 가령, 그가 스웨 덴의 신비주의자 스베덴보리에 매료되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또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페넬로사와 파운드의 번역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이러한 체험은 그의 창작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예이츠가 추구하는 화합과 일 치, 선적 경지에 대한 섬밀한 묘사는 일본 문화에서 취합한 것이라는 것을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그가 매료되었던 일본의 노와 선불교는 예이츠가 추구했던 정 신세계의 구축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폴 멀둔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를 체험,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하였는가를 추적한다. W. B. 예이츠 와 셰이머스 히니는 시인으로서 폴 멀둔이 극복해야할 대상이었다. 멀둔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알레고리라는 방식으로 대처하였고,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시적 세계를 성취하였다.
셰이머스 히니가 그의 산문에서 밝히듯이 그의 시작(詩作)에 있어서 가장 큰 벽은 W.B.예이츠라는 아일랜드 시인이었다. 대부분의 시인이 그러하듯이 히니가 그의 창작을 시작할 무렵에도 아일랜드는 예이츠라는 작가에 의해서 표현, 대변되었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신화, 전설, 정치, 자연경관 등의 소재를 망라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고 거장 시인으로 인정되었다. 정치적, 종교적 배경은 예이츠와 달랐지만 아일랜드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히니가 시인으로서 가지는 부담은 심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히니는 북아일랜드를 소재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 예이츠의 시적 과정과 표현 방식에서 이탈하려고 하였고, 그것은 북아일랜드의 대지에 그의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의 작품은 초기 시에서부터 북아일랜드의 데리 농장의 유년기 체험을 소재로 하였다. 정치적인 소재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히니는 예이츠의 보수적인 성향에서 벗어나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을 북아일랜드의 시골정경과 혼효시켜서 낮은 어조로 아우르는 자세로 접근하였고 이는 대부분이 자신의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았다.
히이니의 초기 시편들은 산업화 이전의 농촌에서의 유년시절의 기억,북아일랜드 전통의 회고, 또 이러한 기억들이 상기하는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비롯된 분노와 불안, 그리고 식민통치가 남긴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유산에 대해서회고하는 작품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서들이 표출될 때, 대부분의 경우 여과되지 않은 거친 감정과 선동적인 외침의 분출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북아일랜드의 역사는 불안과 공포로 얼룩져있었고, 그 여파로 발생한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갈등은 북아일랜드 거주민들, 특히 종교적 소수자인 가톨릭들에 게 커다란 불안과 고통을 초래했었다. 그러나 히이니의 초기 시편들이 아일랜드 민족의 정치적, 종교적 세력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으면서도 잔잔한 감동과 미학적 울림을 주는 것은, 날선 감정으로 일방적 역성에 치중하지도 선동적이거나 지사적 언사를 동원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맹목적 패배주의나 허무주의로 함몰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연함과 숙연함만을 앞세워 애오라지 정도의 눈물이나 상심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면 문학으로서의 감동은 희미할 수밖에 없다. 히이니의 초기 시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