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의 시론집『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은 ‘여성성’과 ‘시작(詩作)’의 관계를 본격적이고 심층적으로 탐색한 저작이다. 여성성은 인간성의 반쪽이 아니라 근본적인 차원이다. 김혜순은 여성성을 부정하는 방식을 부정하면서, 여성성을 글쓰기의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차원에서 드러내고 또한 미학적인 원리로 내세운다 김혜순이 사유하는 여성성의 핵심적인 자질은 생성의 능력이라 하겠다. 시적 주체의 엔트로피와 운동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김혜순이 시쓰기에 ‘바리데기’를 호명했던 이유 또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리데기-되기’, ‘어머니-되기’는 은폐된 타자들을 해방시키고 활성화하는, 이를테면 타자들을 낳는 ‘자궁-되기’와 같은 것이었다. 김혜순에게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나와 타자, 주체와 세계는 안과 밖의 이원론적 구조가 아니라 표면과 심층의 일원론적 관계 속에서 개시된다. 이를 ‘외부의 내재성’, ‘초월의 내재성’ 같은 말로 표현해 볼 수 있다. 내가 내 바깥의 타자들을 포획하고 규정하는 방식의 동일시가 아니라, 어머니가 아이를 생산하듯이 내 안에서 타자들을 출산하고 폭발시키면서 ‘나’를 바꾸는 방식으로 ‘시-하기’는 이루어진다. 이러한 ‘시-하기’는 내 안에서 숨겨진 ‘어머니’를 찾는 것이면서 ‘어머니’를 거꾸로 출산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혜순은 자아 중심의 기존 시학을 부정하면서 타자성의 시학을 제출한다. 그녀에게 ‘시-하기’는 ‘자아 지우기’이며 고체의 몸을 유동적인 액체의 형질로 바꾸는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시론에서 떠오르는 것은 타자에 대한 시선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를 낳고 경험하는 몸의 사건, 즉 자아와 타자가 접촉하고 섞이는 사건이다. 시의 장르적 원리로 간주되어 왔던 ‘세계의 자아화’라는 정의에 대하여 김혜순이 강력하게 수정을 요구할 때, 아니 이러한 시론의 요구 이전에 이미 ‘시-하기’는 이 관습적인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세계와 자아가 함께 동참한 소용돌이’, 나와 타자의 접촉 속에서 자유를 실천해왔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