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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글은 조선 숙종 · 경종대에 무신으로 활약한 운암 장한상의 官歷과 주요 행적을 조사 · 검토한 것이다. 장한상은 21세 때인 1676년에 무과에 급제한 후 1678 년에 宣傳官에 임명됨으로써 비로소 관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장한상은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 과정에서 그는 능력 있는 무신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장한상도 숙종 · 경종대의 換局政治 하에서 품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정치적 의미가 있는 고위 관직에 진출하면서는 자신의 정치적 · 사회적 지위 보전과 상승을 위해 시기마다의 집권세력과 일정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 1689년 기사환국 이후에는 집권세력인 남인 측과 관계를 맺었고, 1694년 갑술환국 이후에는 정치권력을 장악한 노론 세력과 일정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집권세력이 바뀌면 후임정권 세력에 의한 비판을 벗어날 수가 없어 자주 臺諫의 탄핵을 받았다. 이때마다 숙종과 경종은 장한상을 위해 변명 내지 옹호를 해주거나 처벌 수위를 낮추어 주었다. 또 停啟를 지시하기도 하였다. 이는 숙종과 경종이 무신으로서 장한상의 자질과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사실 장한상은 당시에 조정 안팎에서 유능한 무신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었다. 이러한 장한상의 주요 행적으로는 우선 1694년에 삼척첨사로 임명되어 울릉도를 수토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 장한상의 울릉도 수토는 조선후기에 울릉도 수토제가 제도적으로 채택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그가 수토 중에 독도를 조망하 였다는 사실은 한 · 일간의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한국 사람들이 일찍부터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주는 귀중한 기록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장한상은 1682년에 일본 통신사 軍官으로 差定되어 일본에 갔다 왔고, 1711년에는 북한산성 축성에 都廳으로 참여하여 공사를 감독하였다. 또 1712년에 는 백두산 남쪽 지역을 직접 조사함으로써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국경선을 정하는 데에 사전 지식을 제공하였다. 이외에도 장한상은 北兵使로 있을 때 士卒 조련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였고 또 무기의 성능 개량에도 관심을 가졌다. 아울러 飢民의 진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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