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6년 봄에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가 그린 ≪병진년화첩(丙辰年 畵帖)≫(1796년, 리움미술관(구(舊)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은 그가 이전에 추구했던 정묘(精妙)한 화풍 및 호방(豪放)한 화풍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 화첩 속 그림들은 단순한 화면 구성, 시정(詩情)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 간략한 산수, 인 물, 동물 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화풍으로 그려졌다. 김홍도가 ≪병진년화첩≫ 에서 사용한 화풍은 간이(簡易), 간솔(簡率)함을 특징으로 하는 전형적인 문인화풍(文 人畵風)이다. 즉 김홍도는 평담(平淡)한 문인화풍을 사용해 산수, 인물, 풍속, 화조를 그렸다고 할 수 있다. ≪병진년화첩≫은 총 20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홍도는 충청 북도 단양(丹陽) 지역의 명승지들인 옥순봉(玉筍峯), 사인암(舍人巖)과 도담삼봉(島潭 三峯), 뱃놀이하는 사람들, 낚시꾼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노인, 숲속에 뜬 둥근달, 소를 타고 강물을 건너는 사람들, 쟁기질하는 농부, 오리, 백로, 까치, 꿩 등을 담담 (淡淡)한 필치로 그렸다. 이 그림들에는 풍속, 동물, 새, 꽃들이 산수 배경과 잘 어우 러진 풍경들이 나타나 있다. 김홍도는 이 화첩에서 단순한 구도, 정적(靜的)이며 서정 적인 분위기, 간략하고 부드러운 필묵법(筆墨法), 맑은 담채(淡彩)의 사용 등 그의 이 전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화풍(畵風)을 구사하였다. ≪병진년화첩≫은 직업화가에서 사대부적 취향을 지닌 문인적 화가로 변신하려 고 했던 김홍도의 의식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간솔, 평담천진(平淡天眞)한 화풍이 라는 그의 새로운 화풍을 선보인 작품이다. 결국 ≪병진년화첩≫은 김홍도의 화가로 서의 생애에 일대 ‘전환점’을 제공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화첩에서 주목 되는 것은 김홍도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사물이 지닌 가치를 발견하고 담담하게 기록했다는 점이다. 즉 이 화첩은 ‘일상의 발견과 기록’이라는 김홍도의 혁 신적인 작화(作畵) 태도를 보여준다. ‘일상의 발견과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김홍도의 새로운 회화적 실험은 명나라의 저명한 문인화가인 심주(沈周, 1427-1509)의 작화 태도와 매우 유사하다. 심주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동물, 식물, 사람들을 담박(淡泊)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기존의 문인화와는 달리 심주는 일상이 지닌 가치를 발견하고 소 경(小景), 즉 주변의 작은 경치와 풍경 및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생물들을 관조적인 자세로 충실히 기록하였다. 이러한 일상의 발견과 기록이라는 화가의 태도와 작화 방식에서 김홍도와 심주는 매우 닮았다. 김홍도와 심주가 그린 문인화 작품들은 문인 화론(文人畵論)의 미학적 핵심인 ‘평담천진’의 회화적으로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