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1년 비엔나에 정착한 모차르트는 음악가로서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1784년에 돌연 프리메 이슨 회원이 되었다. 그즈음은 프리메이슨 운동이 비엔나에서 아주 부흥하던 때라, 많은 사회 인사 들이 이 종교 철학적인 성향의 비밀결사모임에 몰려들던 때였다. 따라서 그것은 단지 자신의 음악 후원자들을 모으기 위한 처세술 중 하나였다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날이 세를 불려가는 이 운동에 요제프 2세가 급제동을 걸며 1785년에 칙령을 선포하자, 정치 사회적인 불이익 을 우려한 많은 사람들이 급물살을 타듯 이 단체를 빠져 나갈 때에도 모차르트는 여전히 프리메이 슨으로 머물렀고, 그렇게 그의 삶 마지막까지 지조를 지켰다. 오히려 그는 그의 대표적인 프리메이 슨 오페라 《마술피리》 외에도 적지 않은 프리메이슨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자신의 지부뿐만이 아 니라 다른 지부의 모임에까지 정기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열성이었고, 심지어 비록 불발로 그쳤지만 새로운 지부의 결성까지 계획할 정도로 이 운동에 대한 소신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모차르트에게서 프리메이슨이 갖는 주요 의미를 그의 시기 비엔나의 프리메이슨이 어떤 단체였고, 주창하는 사상은 무엇이었으며, 왜 가입하였는지, 어떤 정도에서 삶과 음악에 구심점이 되어주었는 지, 나아가 그의 음악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면서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