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상징주의는 프랑스 상징주의만큼 중요하다. 프랑스 시인 비에 르는 선구적 시인인데, 특히 메터링크에 큰 영향을 준다. 예이츠 역시 자신에게 미친 상징주의자로 비에르를 인정한다. 그러나 비에르는 예이츠가 유일하거나 최초의 상징주의 시인은 아니다. 1890년대에 프랑스 문학계를 잘 몰랐던 예이츠는 메터링크와 동시에 아니면 메터링크가 자신의 세대에 속하지만 메터링크를 만난 직후에 만난다. 그러나, 예이츠는 비에르의 영향은 인정하지만, 자신을 메터링크와 연결 짓는 평론가를 미묘하게 들춰낸다.
무너지는 탑, 깊은 샘이나 분수, 넘을 수 없는 분지방의 상징은 메터링 크에게 만큼 예이츠에 해당되며, 사실 전세대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논문은 예이츠와 메터링크의 상징의 동일성이나 차별성에 주목하는데, 상징의 구상과 사용을 보려고 한 다. 이들은 자신들의 글에서 비슷한 개념을 설명한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상징적이다. 그들은 상징과 알레고리를 구별하는데, 상징은 단순한 추상적 개념의 이미지는 아니 며, 상징은 이성 너머에 뿌리가 있고, 신성한 본질이 있다. 예이츠의 바일의 스트랜드에서와 메터링크의 탱토질의 죽음과의 비교는 19세기 말의 개념들에서 나타나는 “극적 상징주의”의 특별한 형태를 노출시킬 것이다. 메터링크는 작가란 신성한 상징을 피동적으로 받는 사람이라고까지 믿었던데 반해서 예이츠는 작가의 창조적 힘을 믿었 다. 이점이 두 작가가 다른 기법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