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작가 박현기에 대한 ‘자생적이며 동양적인 비디오미학을 개척했다’는 그동안의 평가를 재고한다. 그에 대한 비평적 해석에 나타나는 왜곡된 오리엔탈리즘과 배타적이고 이분법적인 인식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가 ‘탈테크놀로지 미학’을 추구하며 현대미술의 문맥에서 새롭게 요청되었던 예술적 과제들을 탐색하는데 작품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해석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는 1978년 K스튜디오에서 첫 영상작업을 촬영한 이후 미디어의 근원적 특성과 매개논리를 탐색하였다. 1982년까지 수면(水面), 유리, 거울과 같은 자연물과 비인공적 사물을 활용한 영상작업, 비디오영상을 다양한 장소적 맥락에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영상의 개입으로 달라진 관람자의 지각방식에 대해 심도 깊게 고찰하였다. 특히 그는 설치, 행위, 영상을 접목하여 형식과 내용면에서 모두 이중적으로 구조화된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이러한 작품세계는 이질적 대상간의 융합을 추구한 것이라기보다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세계가 각자 본연의 모습을 지키며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구현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