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한중일 반월형석도를 상호 비교하여 서로 간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먼저 한반도 농경문화의 형성과 관련하여 미사리유형의 석도를 보면, 형태상의 특징으로 평면 장방형에 양인을 이루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북한지역의 두만강유역과 압록강 상류 출토품에서도 관찰되는데, 중국 동북지역 중 雙砣子 2ㆍ3기 병행 단계에 장방형이 상대적으로 다수 확인되는 곳은 馬城子文化로 대표 되는 遼東山地가 유일하다. 그러나 한반도 출토품이 대부분 양인을 이루는 것에 반해, 遼東山地에서 양인 석도는 단 1점뿐이다. 따라서 반월형석도의 한반도 도입 초기에 장방형이라는 평면형은 받아들이면서 날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달리하는 문화 수용자 측의 선택이 존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송국리문화의 기원과 관련하여 산둥지역 商周時期의 반월형석도를 살펴보았다. 다수를 차지 하는 것은 즐형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시기가 석도의 소멸 단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즉, 논농사의 본격적인 전개로 늦은 시기에 삼각형이라는 개량형 석도가 새롭게 등장하는 한반도 남부지역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송국리유형의 석도가 이미 전기부터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도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수용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석도의 형식상 유사성이 관찰되지 않는다고 하여 양자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어렵다. 마지막으로 일본열도의 북부 규슈지역에서는 야요이 조기~전기 전반에 찰절천공석도와 일반적인 2공 석도가 모두 등장한다. 평면형은 대부분 주형이며 날은 양인을 이루는 것이 특징인데, 삼각형이 전혀 확인되지 않아 송국리유형의 이른 시기에 논농사와 관련된 문화가 한반도로부터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당 시기 한반도의 석도는 대부분 편인으로 날의 형태만 달라진 셈인데, 이는 상기한 馬城子文化와 미사 리유형의 관계에서도 확인된 현상이다. 초기 농경 도입 시 다목적 사용에 적합한 형태인 양인이 채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