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이라는 용어는 읍치(관아)가 위치한 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고려시대까지는 사용되지 않다가 조선시대 초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려시대에는 행정이나 군사 중심의 치소성 (治所城)이었으나, 고려시대 말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동남해안 중심으로 새롭게 방어용 성 을 쌓으면서 기존의 치소성과 구별하기 위해 읍성(邑城)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경주읍성에 대한 연구는 기존에 문헌과 고지도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발굴조 사는 비교적 근래인 2012년부터 동성벽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자료가 일부 축적되었으나 이를 토대로 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본 고에서는 경주읍성의 범위 중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5구간 발굴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경주읍성의 동성벽과 북성벽 일부에 대한 축조과정과 시기에 대하여 간략하게 검 토를 해보았다. 그 결과, 경주읍성의 동성벽은 토성에서 석성으로의 개축 양상이 명확히 확인되었으며, 북성벽은 처음부터 석성으로 쌓았음이 확인되어 토성과 개축된 석성의 범위가 서로 달랐음 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벽 형태, 토층 등을 통한 개축과 수축부의 구분, 소량이지만 해당시기 를 판단해볼 수 있는 유물 등을 통해 경주읍성은 고려시대 전기에 토성 축성 이후, 고려시대 말 석성으로 개축되었으며, 석성의 1차 수축은 조선시대 전기, 2차 수축은 조선시대 중기 또 는 임진왜란 이후에 대대적으로 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문헌과도 대체로 유사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경주가 고려 개국과 함께 지방도시로 전락하면서 현종(顯宗) 대 에 토성으로 축성되고 우왕(禑王) 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으며, 조선 세종(世宗) 대와 문종 (文宗) 대에 규식에 맞도록 수·개축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