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인도의 시아귀회(施餓鬼會)를 수용한 중국의 수륙재(水陸齋)가 독자 적인 내용과 목적으로 변용된 양상과 함께, 그것이 고려에 전래되어 조선전기 수륙재 설행의 유행에 문화적 기반이 된 추이를 개괄한다. 또한 조선전기에 이 르러 전사회적으로 크게 유행하게 된 수륙재의 설행양상을 그 대상과 목적을 중심으로 살피어, 조선전기에 국가주도적으로 거행된 수륙재가 조상 등 특정 영 가의 천도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식 상제례(喪祭禮)로 수렴되어 간 면모를 밝힌 다. 마지막으로 무차대회(無遮大會)의 개념적 차별성을 주목하여 조선전기에 일 반적으로 인식되었던 수륙재와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것이 조선 중기 이후 ‘여 제(厲祭)’라는 유교식 국가제사로 대치되거나 민간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독자적 방향으로 변모해 간 흔적을 조망한다.
조선전기 수륙재는 특정 또는 불특정 망자에 대한 불교적 구제를 목적으로 설행되었다. 그 각각을 대표하는 것이 왕실의 조상(祖上)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 식 상제례로서의 수륙재와 고려 왕씨를 위한 추천(追薦) 수륙재이다. 그 중에서 도 전자가 더 중요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불교식 상제례의 경우 국가의 강력 한 개입 하에 칠칠재, 백일재, 소상재, 대상재, 그리고 대상 이후의 기신재가 모 두 수륙재로 합설되었으며, 이는 수륙재가 불교식 상제례의 의례적 형식을 이루 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특정 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불교식 상제례로서의 수륙재 이든 불특정 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추천 수륙재이든, 그 모두가 국가의 강력한 주도 하에 제도화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단에 대한 국가권력의 강력한 개입은 전통시대 동아시아 3국의 공통적인 특징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불교에 강하게 보이는 특징이라는 평가가 최근 학계에서 힘을 얻는 추세이다. 조선전기 수륙재의 제도화와 정비 과정에서 보이는 국가권력의 막강한 관여 역 시 그 같은 평가에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무차대회란 수륙재의 내용을 이루는 한 축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개념적으로 무차대회와 수륙재는 분리될 필요가 있다. 조선전기의 수륙재가 특정 망자 특히 조상의 천도를 주된 목적으로 하여 변용될 때, 무주고혼을 포함하여 저승과 이 승의 모든 존재들을 평등하게 풀어먹이는 데 목적을 둔 무차대회는 그와 차별 적인 모습을 띠며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조선전기의 수륙재가 어느 순 간 주자가례(朱子家禮)와 여제(厲祭)라는 막강한 유교적 의례질서로 빠른 속도 로 대체되고 국가주도적 수륙재 설행의 전통이 단절된 이후, 무차대회는 다시 불교식 상제례의 양상과 함께 수륙재의 성격 일부로 흡수되어 민간의 불교신행 을 중심으로 하여 전사회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