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먼저 2권의 주요 저서를 다루는데 한권은 R.F. 포스터의 예 이츠 전기이고 다른 한권은 데이비드 피어스의 우수한 저술로 학술적이고 미학적으로 아름답지만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책들의 목적이 무엇인가? 예이츠는 정말로 인생을 아니면 예술을 완성하고자한 것인가? 우리에게 지금 예이츠의 인생과/혹은 작 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자, 전기작가, 시인이 많다. 그중 가장 탁월 한 학자로서 리처드 엘만은 예이츠와 그의 작품 두 가지 다 들여다 볼 수 있을 뿐 아 니라 그이 작품을 느낄 수도 있는 전기작가이다. 사학자로서 R.F. 포스터의 시선은 예 이츠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는 지를 보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T.R. 헨의 방법은 시인 예이츠와 시를 멀리가지 않고 직접 다룬다. 다른 전기작가들과 학자들의 작품도 위의 저자들만큼 중요하다. 이 논문은 필요에 따라 자신의 글에 맞게 예이츠의 시를 편집하는 학자들도 다루는 데, 그들 중 일부는, 그러나, 자신의 목적에 맞춰서 예이츠 의 시들을 휘거나 자르기를 한다. 물론 그들은 이것이 예이츠와 그의 시에 얼마나 독 이 되는 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나는 이것을 지적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그 러나, 이러한 전기나 저술을 판단하기보다는 예이츠의 작품의 진면목을 되찾아주고 싶 은 것이다. 현대시인으로서의 예이츠를 오해하거나 현대시인으로의 예이츠를 “마지막 낭만주의자”(예이츠 자신이 만든 말)라고 칭하면서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