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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한국무용사에 있어 고대와 근대 사이를 잇는 고려시대 원구(圓丘)제천의례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의례에 연희되는 춤을 고찰 하고자 한다. 성종 2년 처음으로 시행된 원구제천의례는 제천(祭天)·기곡(祈穀)·우사(雨祀)의 성격을 지닌 농경제의로 고려의 가장 중요한 국가제사 중 하나이다. 정규적으로 1년에 2회 정도 정월과 맹하 (孟夏)에 거행되었으며 한발(旱魃)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임시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후 선종 때 다시 예제를 정비하면서 송의 예제와 함께 춤과 음악 등이 수용되었다. 원구제의 제례 진행시 추는 춤이 일무(佾舞)이다. 일무는 아악의 대표적인 무악이다. 고려에서 는 6열 6행으로 구성된 36인의 육일무로 문무는 약(籥)과 적(翟)을 들고, 무무는 간(干: 방패)과 과 (戈: 창)를 들고 춤을 추었다. 이후 의종 대에는 36인이 추는 육일무에서 48인이 추는 육일무로 변경되면서 문무를 인솔하는 무원(引文舞)의 무구(舞具)가 바뀌었다. 36인으로 구성된 육일무의 무구가 간(干)과 과(戈)라면 48인으로 구성된 육일무의 무구는 간(干)과 척(戚)으로 창을 대신하여 도끼(칼)를 들고 춤을 추었다. 일무에 사용되는 음악이 대성악(아악)과 우리의 전통궁중음악인 속 악(향악)이다. 일무에 사용되는 대성악은 송의 궁가를 헌가로 축소 편성한 아악이며 속악은 원래 송의 대성악이 수용되기 전 궁중의 제례악으로 사용되었다가 함께 교주하였다. 또한 일무는 회빈문 외곽에 설치된 원구단(圓丘壇)에서 연희되었다. 고려의 원구단은 중국의 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크기는 중국보다 1/6정도이며 층수도 중국은 4단인 반면 고려는 1단으로 되어있다. 이는 일무의 무원(舞員)수와 악기편성에 있어 송과 고려가 차이 있는 것과 관계있을 것 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고려의 원구제가 중국의 예제를 수용하였으나 선택적으로 재편하여 사용하였으며 의례와 함께 연희되는 춤 또한 국가의 규모에 맞게 구성하여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원 구제의 춤(일무)이 유교 외에도 우리 고유의 전통이 혼용된 것으로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니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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